초보 대리기사: 홍대 사람들➀

“뭔~ 생각을 그리 깊게 하노.”

상체를 앞으로 숙인 채 작년 지방선거 생각에 잠겨있던 ‘완’의 앞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왔다. 변선배의 목소리였다. ‘완’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자 변선배가 웃음 띤 얼굴로 물끄러미 ‘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완’의 모습이 재밌게 보였는지 한참 동안 그 모습을 앞에서 지켜봤었던 모양이었다.

“아! 나오셨어요.”

“너무 깊이 잠겨 있어서 온지도 모르고 있구만. 커피 벌써 했나. 여 있어라 한 잔 뽑아 올꺼구마. 니도 한 잔 더 할래?”

“아니요. 아직 남아 있습니다.”

자판기를 찾아 1층 로비로 들어갔던 변선배가 커피를 뽑아들고서는 ‘완’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점심은 어떻게 하셨어요?”

점심시간이 지나 어중간한 때에 나타난 변선배에게 ‘완’이 물었다.

“음. 어디 다른데 일보고 오느라 못했다. 니는?”

“저는 아까 전에 했습니다.”

“그래. 나는 조금 쉬었다 먹어야겠다.”

‘후르륵’

커피 한모금을 들이키던 변선배가 땅바닥을 지그시 눌러보더니 잠깐 무슨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그는 고개를 ‘완’에게 돌리더니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미스터 박, 니 이번 정전사태 봤제?”

“네”

‘완’은 변선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9월15일 오후 대한민국 전체가 정전사태 위기에 빠질 뻔 한 대형 사고였다. 날씨가 더워지자 전기사용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매스컴은 사상초유의 사고라면서 대대적인 보도를 해대고 있었다. 이 사고로 수많은 시민들이 피해를 봤다고 아우성이었으며, 뉴스에서는 피해 규모액이 엄청나다면서 연일 보도를 쏟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정부는 전기사용량이 늘어나는 시간대는 가급적 필요치 않은 전기는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정전사태를 말하는 변선배의 태도를 볼 때, 평상시 세상사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가 무엇인가 한마디 할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번 정전사태 보면서 무섭드라. 봐라, 정전 일어나니까 사회가 난리가 나지않드나. 나는 문뜩 이런 생각이 들드라.”

변선배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만약에 말이다이~, 이북에서 서울에 있는 방송, 통신이랑 주요시설에다가 폭격만 해도 완전히 마비가 되는기라. 그놈들도 이런 것을 다 계산하고 있을기란 말이다.”

변선배는 뭔가를 응시하는 것처럼 눈에 힘을 주어가며 자신의 검지 손가락을 좌에서 우로 일직선상으로 그어가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봐라, 정전되니까 모든 것이 먹통이 되지 않드나. 방송, 통신만 먹통이 돼봐라. 이북에서 공격을 해도 시민들이 알 수 있겠나. 어디서 뻥~뻥~ 소리는 나는데 그게 뭣때매 나고 있는지도 모르는기라. 다들 완전히 눈뜬 장님이 되는기라.”

그는 곧이어 작년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저번에 연평도 포격 났을 때 말이다이~, 뉴스에서 북한이 연평도 포격했다고 자막이 뜨길래 저놈들 또 한방 날렸는갑다 했는데 나중에 방송을 보니까네 이거 완전히 난리가 났드란말이다. 나 같이 나이 먹고 6.25 겪은 사람들은 전쟁이 무섭다는 것을 아니까, 북한이 그라믄 굉장히 민감하거든.

그란데 자막이 떴을 때만 해도 시원찮게 생각했는데 막상 티브이 화면에 나타나는 모습을 보니까네 그기 아닌기라. 방송을 통해서 눈으로 보기 전까지 전쟁을 겪은 나도 둔감하게 받아들였는데, 지금 젊은이들은 얼매나 둔감했겠노.

아마도 진짜 인민군이 쳐내려와가, 마! 여기저기 총질 해대고, 옆에서 사람들이 쓰러지고 피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실제로 봐야, 아! 전쟁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구나 할끼다. 마~ 서울 한 복판에서 차 한 대만 히딱 뒤비져봐라, 주변 교통 전체가 마비가 안되드나. 한 대만 뒤비져도 그란데, 여기저기 포 쏴대서 도로시설 엉망으로 만들어봐라 차 타고 피신도 몬한다. 아주 필요한 물건만 챙기고 전부 봇짐싸고 양다리로 달려야 할끼다.

그란데 그놈아들 거 휴전선에 방사포 있다아이가 그거 서울에다 갔다가 쏟아 부어삘믄 서울! 마~ 이거이거 순식간에 완전히 아수라장 될끼다. 아무튼 한전 이놈의 자슥들 정신나간 놈들이다. 민영화 돼봐라 당장 모가지지 그걸 그냥 놔두겠나. 연봉도 쎄든데 아~덜이 하는 일이 그 모양이니 에이 짜~식들 문제다 문제.”

변선배는 정전사태 주인공인 한전에 대해 상당히 불만이 심한 듯했다. 그는 정전사태로 한참 동안 열변을 토했다. ‘완’은 변선배가 말했던 전쟁을 겪은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들 간의 상황을 인식하는 태도에 충분히 그 만큼의 차이가 있을 법하다고 생각했다. 둘은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더니 다시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려고 일어섰다. 점심을 먹지 못한 변선배가 시장기를 느꼈는지 ‘완’에게 먼저 들어가라며 말을 건넸다.

“먼저 올라가그라 내는 지하식당에 가가 밥 좀 묵고 갈게. 시간을 넘깄드니 조매 시장타이~.”

“네, 천천히 드시고 오세요”

변선배는 지하식당으로 내려가고 ‘완’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4층으로 향했다.

추석을 뒤로 보낸 보름달은 이제 완전히 기울어 있었다. 10월을 눈앞에 둔 저녁 바람도 제법 선선해졌다. 무더운 여름 더위와, 예년에 비해 너무나 자주, 그리고 많이 내리던 비 때문에 고생했던 것에 비하면 한결 일하기 편해진 날씨였다. 홍대사거리에 나서자 신호등 건너편 sc제일은행 계단에 박선배, 남선배와 콧털사장, 주선배, 왕눈이 사장, 변태사장이 걸터앉아 있었다. 몇몇은 한 손에 커피를 다른 한 손에는 대리운전 프로그램이 깔린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몇몇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홍대사거리에 위치한 sc제일은행은 대리운전을 하면서 서로 알게 된 사람들이 박선배를 비롯해 여러 해 동안 매일 이곳에서 모여 일을 시작하는 장소였다. 그런 연유로 그들에게는 소위 멤버 아닌 멤버 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완’은 신호가 바뀌자 서둘러 건너갔다.

“안녕하세요.”

“응. 어서와라.”

모두가 ‘완’의 인사에 고개를 들었다. 박선배와 주선배는 ‘완’과 함께 커피를 마시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같이 마시긴 했으나 셋은 거의 매일 함께 마시고 각자 콜을 잡고 출발하는 날이 많았다. 다른 동료들의 경우 나오는대로 같이 모여서 먹는 경우가 많았지만 셋은 함께 모일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었다.

“야, 막내. 형님들은 다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왜 이제 오냐. 늦었으니까 니가 사라.”

“잔소리!! 시끄럽구마. 후딱 가입시다.”

주선배가 박선배의 얘기를 끊으면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씨유편의점으로 향했다.

“영감쟁이가 막내 커피 사주지는 몬할망정 코묻은 돈 빼사 무~을라 하나. 영감쟁이가 머~ 그리 욕심이 많노.”

편의점 안으로 들어선 주선배가 커피를 집어 들며, 박선배를 향해 능청스런 타박을 주기 시작했다.

“야~ 씨, 어제도 내가 샀다이~. 나는 뭐 하늘에서 돈이 떨어진줄 아냐.”

“그람 영감쟁이 돈은 땅에서 솟아나나.”

주선배가 허공을 쳐다보며 동문서답 하듯 딴소리를 툭툭 던졌다.

“아~ 이놈은 입이라도 얌전히 있으면 좋은데, 한 마디를 안지구만. 콱 그냥~”

“앗따야 한 대 치것다이~. 전직이 의심스러분데, 전에 쫌 놀아는갑다이~”

박선배가 주선배의 얼굴 앞에 주먹을 쥐어보이자 주선배가 웃음기 스며든 눈을 흘기며 박선배를 계속 빈정거렸다. 박선배도 주선배에게 지기는 싫었던지 커피에 물을 타 휘휘 저어대면서까지 주선배를 향해 계속 입을 나불거리고 있었다.

커피를 사들고 오니 그새 왕형님이 와 있었다. 왕형님은 멤버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70대 후반의 곧 여든을 바라보는 분으로 대리운전 경력 7년을 다 채워가는 중이었다. 왕형님과 눈이 마주친 박선배가 인사를 건넸다.

“오메! 형님 어쩌까. 우리 먼저 커피를 돌렸버렸는데.....”

“음 어서들 마시고 있으슈, 나도 한 잔 타올게.”

잠시 후 왕형님이 커피를 들고 오더니 계단에 걸터앉았다.

“아이고 이제 날씨도 더운기가 싹~가시구 일 할만 하겠네. 그랴.”

“그러게 말예유 올여름에는 뭔놈의 비가 그렇게 많이 왔는지 모르겠어유.”

왕형님이 올여름은 더위와 비 때문에 다른 해보다 더 힘들었다며 날씨 얘기를 꺼내자 옆에 앉아있던 왕눈이 사장이 답을 넘겨줬다.

모두가 커피를 홀짝거리는 와중에 박선배와 ‘완’은 ATM기가 설치되어 있는 은행 안으로 들어갔다. 냉난방기에서는 아직 시원한 바람이 나오고 있었다. 둘은 냉난방기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완’은 박선배의 손에 박힌 굳은살에 시선이 멈췄다. 전부터 봐왔지만 박선배의 주먹은 예사롭지 않게 보여었다. 검지와 중지 정권이 상당한 수준의 단련을 시켰는지 단단한 굳은살로 박혀 있었다. 그것은 굳은살이 단순하게 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주먹을 덮은 하나의 막으로 둘러싸인 듯한 층이 형성돼 있었던 것이다.

‘완’은 박선배의 손을 들어 올리면서 찬찬히 살폈다.

“선배님 전에 무슨 운동하셨어요?”

“아이 그냥 이것저것 살살했어.”

“아~ 이 정도면 살살한 정도가 아니신데요.”

“어허허허”

박선배가 은근슬쩍 웃음으로 대답을 넘기는가 싶더니 예전에 미국에 있을 때 한국 출신의 알아주는 주먹한테 운동 좀 배웠다고 했다.

박선배는 전에 ‘완’에게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미국에서 오랫동안 지냈고 나스닥 상장사의 부사장으로도 활동했다고 했다. 그는 현재는 연희동에 살고 있는데 국내에 들어와 사업을 하다가 크게 실패해서 대리운전을 시작한지가 벌써 4년이 됐다고 했다.

박선배는 사업 실패 후 집에 쌀 한 톨 없는 신세가 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을 하면서 2년 동안 햇빛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면서, 저녁이 되면 일어나 밥 먹고 일하러 나가고, 날이 밝아오면 들어가 밥 먹고 자는 생활을 반복했었다고 했다. 그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생활하는 모습을 바라보니 자신이 너무 무식하고 미련하게 일만 하고 있는게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사업 시작하기 전에는 위만 쳐다보고 가다가, 사업에 크게 실패한 후 한동안 많이 울적한 마음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고 했다. 그 후 종교를 가지면서 많은 위안을 받았고, 생활도 어느 정도 정상적인 생활로 회복해서 이제는 오후에는 일찍 일어나 햇빛도 쬐어주고 있다며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았었다. 그는 다행히 아내가 작년부터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를 시작해 생계문제가 한결 나아졌다고도 했다.

또 원래 성격이 매우 불같은 데가 있는데 많이 차분해졌다면서, 이제는 매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박선배는 장난도 좋아하지만 상당히 성정이 급한 데가 있었다. 그는 올해 58세로 다른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나이에 비해 상당히 날렵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고 에너지가 넘쳐흘러 보였다. 평상시 먹는 음식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편이었으며, 나름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처럼 보였다.

주선배는 인천 계산동에 살고 있었다. 그는 올해 52살의 나이로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이혼 후 연로하신 노모를 모시면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과거 몇 가지 사업에 손을 대다가 별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중국에서 시계를 들여와 국내에 유통판매하는 사업을 하다가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주선배는 다방면에 대해 예리한 눈썰미가 있었다. 주선배는 사업 실패 후 대리운전을 시작해 벌써 8년을 넘기고 있었다.

그는 사업실패의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해서인지 얼굴의 한 구석에는 약간의 그늘진 아픔이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주선배는 배가 남산만한 크기를 이루고 있었는데 박선배의 말에 의하면 지금은 정말 많이 좋아진 거라며 옛날에는 몸이 완전히 도라무통 저리가라였다는 것이다. 그의 얼굴과 목선이 거의 살로 덮여져 있을 정도였다고 했다.

주선배는 담배를 굉장히 즐기는 편에 비해 술은 잘 마시지 않는 편이었으며, 주마다 광명에 위치한 경륜장에 가는 버릇이 있었다. 결과는 갈 때마다 거의 잃고 오는 수준이었고, 연신내에 사는 자신의 초등학교 동창인 대리운전 경력 10년 차인 정선배와 종종 함께 가곤했다. 박선배는 주선배가 경륜으로 돈을 잃고 올 때마다 이제 그만 가라면서 타박을 주곤 했다.

그래서인지 주선배는 언제부턴가 경륜장에 다녀오면 박선배에게는 경륜장 얘기를 일절하지 않았다. 대신 ‘완’에게 어제 돈을 땄다는 둥 잃었다는 둥의 얘기를 늘어놓곤 했다. 이곳에 모이는 멤버들 중 상당 수가 경마, 경륜, 경정, 복권, 인터넷 게임 등을 즐겨하는 편이었다. 둘은 아무튼 대단한 입심의 보유자들이었다.

유리창 너머에 있는 주선배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잡았나본데.”

“그런 것 같은데요.”

주선배는 통화를 마치더니 문을 열어 은행 안에 있는 박선배와 ‘완’에게 먼저 나간다고 했다.

“어디가는데?”

“르네상스사거리 2만 갑니다.”

“가격 적당하네. 알았어 많이해”

“네. 많이들 하이소, 이따 연락하입시다.”

“요금도 적당하고, 착지도 좋은데. 야~ 오늘 ‘주’ 괜찮게 할 것 같은데.”

박선배는 주선배가 나가자 괜찮은 출발이라며 계속해서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주선배를 시작으로 하나 둘 콜을 잡고 나가기 시작했다. 20여분 후 ‘완’도 콜을 잡았다.

“선배님 저 잡았네요.”

“엉! 어딘데?”

“서판교 3만인데요.”

“어, 그래 어서가. 지금 가면 서울 올라오는 콜 있겠다. 너무 고르지 말고 서울 오는거면 일단 잡고 나와.”

“네. 먼저 나갑니다. 많이 하십시오.”

‘완’은 손님과 통화 후 은행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