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원 인천 효성고 교사

그림책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지혜로운 인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에듀인뉴스] 토론수업이 수업 혁신의 주요 방안으로 등장했지만, 선뜻 시도하기는 어렵다. 이런 토론수업을 쉽게 하는 방안으로 최근 그림책 토론이 인기다. 현장의 그림책 토론을 주도하는 ‘그림책사랑교사모임’ 교사들은 그림책을 읽으며 웃고, 울고, 추억을 떠올리며, 현재 삶의 모습을 직면하는 가 하면 밝은 미래를 꿈꾸고, 삶과 죽음·사랑·우정 등 기본적 가치를 고민하며 지혜를 얻었다고 한다. <에듀인뉴스>는 ‘쉽고 재미있게 생각을 나누는 그림책 토론’을 집필한 그림책사랑교사모임 회원들과 그림책이 주는 마법의 비밀을 공유하고자 한다.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표지(권정민 글·그림, 보림, 2016)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표지(권정민 글·그림, 보림, 2016)

[에듀인뉴스]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는 도시 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은 멧돼지 가족이 도시로 내려와 새로운 삶의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좌충우돌하며 지혜롭게 도시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무엇보다 환경, 가족, 인권 등 다양한 주제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책은 2017년 어린이 환경책으로 선정될 정도로 ‘개발과 보존’이라는 환경 문제가 잘 드러나 있다.

도시 개발로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도시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멧돼지 가족, 새 보금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위험한 행보를 이어가는 이들을 통해 현 사회의 환경 문제를 다시금 고민하게 된다.

또 도시로 내려온 멧돼지가 한 마리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설정을 통해 위기에 처한 현대 사회의 가족 문제를 돌아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보도록 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멧돼지들의 삶을 통해 학생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게 해보고 싶었다.

이 땅에서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도시로 밀려 내려와 제대로 쉴 곳도 배불리 먹을 것도 없고, 초상권도 지켜지지 못하는 멧돼지들의 삶처럼 학생들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들에게 필요한 인권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림책 토론 활동을 통해 이러한 물음과 문제에 대해 학생들 스스로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내 마음의 한 컷!

학생들과 책을 읽은 후 생각 열기 활동으로 마음에 드는 장면을 직접 그리게 했다. 직접 그림을 그리다 보면 좀 더 세밀하게 그림을 관찰하게 되고, 집중하는 효과도 있다.

또 선정한 이유와 그림을 보면 학생들이 현재 어떤 마음인지, 어떤 상태인지를 알 수도 있어서 학생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멧돼지가 트럭에 매달려 가는 장면을 선정한 이유가 ‘지금 내가 너무 힘이 드는데 ‘힘들면 쉬어 갈 것’이라는 문구가 나에게 해주는 말 같아서’이다. 공부에 지친 학생들이 ‘쉬어 가라’는 말에 위로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N+1 모둠 토론으로 인권 분류하기

다음은 N+1 모둠 토론으로 개인 활동과 모둠 활동이 결합된 형태의 토론으로, 개인의 역량과 모둠원 전체의 집단지성을 결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한 칸은 빈칸으로 남겨두어 학생들 스스로 필요한 권리를 창의적으로 생각해보고 적을 수 있게 했다.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의 텍스트들을 현대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새롭게 등장한 인권인 ‘환경권, 주거권, 안전권’ 등으로 분류해보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를 적게 했다.

오늘날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면서 환경 문제, 주거 부족 문제, 범죄 등 각종 사고의 위험이 증가하며 새롭게 등장하는 인권이 환경권, 주거권, 안전권이다.

학생들이 ‘주거권’으로 가장 많이 분류한 텍스트는 ‘하루아침에 집이 없어져도 당황하지 말고 새 집을 찾아 나설 것, 추운 계절이 오기 전에 반드시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조용하고 살기 좋은 곳을 찾아낼 것’이었다. 그 이유는 주로 주거와 관련된 얘기를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안전권’과 관련해서는 ‘힘들면 쉬어 갈 것, 이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아닌 것에 감사할 것, 너무 무리하지는 말 것, 수상한 녀석들이 나타나면 일단 피할 것’ 등을 꼽았다. 그 이유로는 안전과 건강이 연결되기 때문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주변의 안전한 환경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환경권’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의식주 모두가 환경권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주로 하고 있었다.

그밖에 학생들이 창의적으로 생각한 권리는 ‘생각권, 꿈꿀권’ 등이었는데 이런 것들을 권리로 생각하는 것이 재밌었다.

 

카드 뉴스 제작하기 – ‘지혜로운 학생이 되기 위한 인권 지침서’

이런 활동 후에 학생들과 ‘UN 아동 권리 협약’을 참고하여 ‘지혜로운 학생이 되기 위한 인권 지침서’를 카드 뉴스 형태로 제작하게 하고, 반 전체의 카드를 모아 ‘우리 반의 학생 인권 지침서’를 만들어 보았다.

요즘 공교롭게 도심 곳곳에 멧돼지들이 출몰해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는 기사를 자주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 책에서 작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느 날 저녁, 텔레비전 뉴스 속 멧돼지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앵커의 목소리 대신 멧돼지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의 고민을 듣다 보니 그를 응원하고 싶어졌습니다. 되도록이면 살아남아 이왕이면 행복해지고 싶은 이 땅의 모든 종족에게 유용한 지침서가 되기를!”

작가의 이런 생각을 나는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교실에서 학생들과 생활하며 그들의 눈빛 속에서, 작은 행동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을 응원하고 싶어졌습니다. 당당히 살아남아 이왕이면 매일매일 행복하기를!”

백지원 인천 효성고 교사
백지원 인천 효성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