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유 경기대학교 초빙교수

11월 11일 오전 광주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
(사진=성평등교육과 배이상헌을 지키는 시민모임)

[에듀인뉴스] 잊히지 말아야 할 것이 잊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억압받는 다수’를 보여 주었다는 이유로 조사가 시작된 배이상헌 교사의 스쿨미투 혐의는 언론을 달구고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조국 가족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배이상헌의 이름은 점차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멀어져가는 듯하다. 그러나 광주의 현장은 아직 뜨겁다. 

11월 13일 프랑스 중등교원노조(SNES-FSU)가 배이상헌 교사의 혐의를 취소하라는 성명서를 냈고, 여러 시민단체가 지지성명과 연대를 가속화하고 있다. 미투 운동의 주역인 아하 청소년문화센터의 이명화 소장도 함께가는 성평등 사회를 위해 힘을 보태겠다며 연대를 표명했다. 전국도덕교사모임의 진영효 교사도 동참했고, 학생생활운동의 현장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조원배 선생도 합류했다. 

배이상헌은 전교조 초기부터 학생생활연구와 학생인권운동에 매진했던 전력을 갖고 있다. 참교육연구소장을 지낸 김경욱 선생과 함께 몇 되지 않는 소수의 학생인권 활동가 교사들을 격려하고 수범하는 견인차였다. 전교조 조직 활동가들이 교육위원이나 교육감 선거에 뛰어들 때도 그는 고집스럽게 학생생활운동에 전념하였다.

물론 이러한 참교육운동의 전력이 스쿨미투 혐의를 벗기는데 중요한 요소는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성평등과 상담, 학생생활과 학생인권 분야의 최고 현장 전문가이다.

그런 전문가가 학생생활과 거의 무관한 비전문가집단인 행정 관료들에 의해 순식간에 기계적으로 성추행 혐의로 낙인이 찍힌 과정은 놀라운 일이며, 이 과정은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의문의 시선을 갖게 했다. 

과거 그의 가장 가까운 동료 중 한 사람이었던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은 자신의 결정을 모두 하급 관료들에게 맡겼고, 관료들은 오류와 문제투성이로 가득 찬 교육부 매뉴얼을 빙자하여 순식간에 배이상헌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삼국지에서 읍참마속을 단행한 제갈공명은 신뢰하던 자신의 조카를 부하들 손에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조사해 유죄를 밝히고 참수를 명했다. 

장교육감은 배이상헌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정말 그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누구보다 그를 잘 아는 장교육감이 직접 조사의 책임자가 되어 지휘하고 당사자로부터 해명도 듣고 최선을 다해 진실을 규명했어야 옳았다. 

교육감은 신이 아니다. 자신을 선출한 학부모와 시민들의 교육적 목마름을 풀어주어야 할 책무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전문가인 배이상헌을 비전문가인 관료들에게 전적으로 맡겨서는 안될 일이었다. 관료는 교육감을 돕는 행정직이지 결정을 내리는 책임자가 아니다. 

모든 사건을 교육감이 다 직접 조사할 수는 없지만 이 사건은 직접 조사를 지휘해야 할 당위성이 너무 많았다. 그런 그가 아바타처럼 아랫 관료들의 ‘교육감 다루기 매뉴얼’대로 움직인 것은 의아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과분하게도 임기 2년의 국가인권위원회 사회권전문위원회 위원(2015.9~2019.9)을 두 번이나 연임했다. 법리와 정책을 자문하고 심의하는 사회권전문위원회의 하나뿐인 교육담당 위원을 역임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었지만 갈등을 느낀 두 가지 과제가 있었다. 

전교조 합법화 안건과 스쿨미투 인터뷰 건이었다. 위원회에서 임기 시작의 처음부터 말미까지 전교조 합법화 의제를 유일하게 제안했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시점에서는 인권정책국 관료들의 반응도 호의적이어서 전교조 합법화 안건이 힘을 받겠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다음 회기에서는 내가 제안한 안건이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다시 언급을 했지만 유야무야되었고 그제야 더 높은 곳(?)의 의중이 실린 탓이 아닌가 하는 실망감이 엄습했다. 

두 번째는 경찰 수사도 각하되고 사법적 절차도 없이 억울하게 파면된 구지가 수업의 스쿨미투 혐의를 받는 이성진 교사의 사건에 대해 옹호하는 인터뷰가 일간지 기사에 실렸다고 인권위 아동청소년 관련과 과장에게 엄중한 지적을 받은 일이다. 

인터뷰는 기자가 내 확인이나 허락도 없이 제3자가 제공한 학교내부 문건에서 발췌하여 기사를 게재한 것이라서 내가 책임질 일은 없었다. 해당 과장은 해명을 듣고는 “인권위 김대유 위원의 발언은 인권위 입장과 다르다는 반론 보도자료를 내겠다”고 통보했다. 

인터뷰 내용이 옳은지 그른지는 한마디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이성진 교사의 인권위 조사도 성실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과장에게 반문했다. “당신들은 해당 관료로서 교육정책 권고 등을 결정할 때 우리 위원들의 전문적 심의를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럼 나도 그러한 당신들의 관료주의에 대해 언론에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반론 보도자료는 나오지 않았고 그 일은 묻혔다. 국가인권위 활동을 통해 개인적으로 많은 보람을 느꼈지만 인권위의 관료들 역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방향에 대해 매우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전교조 합법화를 회피하고 여성주의적 미투운동에 강력한 지지를 보냈던 대통령의 입장이 관료들의 손에 쥐어질 때 얼마나 어떻게 변질되는지를 겪으면서 나라와 백성의 진짜 주인이 관료들임을 실감했다. 윤석열 감찰총장의 먼지털이식 수사, 검찰과 법원의 짜맞추기식 스쿨미투 기소 및 판결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법관료들의 행정편리주의를 경험했다.

새삼 ‘다시 배이상헌을 생각한다’를 쓰는 이유가 있다. 그의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해결의 과정은 우리나라 학생 성평등 교육에 중대한 시사점을 주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도 지대한 관심사다.

돌려서 말할 생각은 없다. 광주시민들에게 많은 신뢰를 얻고 있는 장휘국 교육감이 이 문제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라. 비전문가인 하위 관료들에게 맡기지 말고 배이상헌의 유죄를 주장하는 단체도 만나고 무죄를 주장하는 전문가들과 지지자들도 만나시라. 

당신은 교육감이기 전에 이미 교사였고, 학생을 뜨겁게 사랑하던 현장의 스승이었으며, 누구보다 배이상헌의 진정한 동료였다. 배이상헌을 만나시라. 만나서 그가 학생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은 죄가 있다면 읍참마속을 하고 그렇지 않다면 만난을 무릅쓰고 그의 손을 들어주라. 그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이야말로 ‘시민 교육감의 자리’다.

김대유 경기대학교 초빙교수
김대유 경기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