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주 프랑스 유학생/ 예술가

체류증 발급 위해 새벽부터 시청 옆 줄 서는 프랑스 외지인
프랑스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기나긴 줄..."모두가 춥지 않고 안 힘든 사회는 어디에?"

[에듀인뉴스] "저희는 프랑스 파리에 사는 행정가, 건축가, 예술가, 보건전문가, 경영전문가 평범한 직장인과 유학생입니다. 언젠가 자신의 전공과 삶을 이야기하다 한국의 많은 분과 함께 나누는 매개체가 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서로 다른 다양한 전공과 각자의 철학과 시선으로 느끼고 바라본 프랑스의 이야기에서 시사점을 얻어가길 바라며 프랑스의 한국인 5명의 이야기를 관심 갖고 지켜봐주십시오."

프랑스에 살며 느낀 이야기를 국내에 소개하는 (왼쪽부터)옥승철, 전우휘, 이재현, 홍성주 유무종님.
프랑스에 살며 느낀 이야기를 국내에 소개하는 (왼쪽부터)옥승철, 전우휘, 이재현, 홍성주 유무종님.

10월 5일 9시 10분.

시청에서 사전예약 없이 9시에 오라고 했다. 9시 10분에 시청에 도착했다. 이렇게나 사람이 많다니!! 충격이었다. 시청에는 9시 40분에 들어갔고, P3115번을 받았다. 그건 내 앞에 114명의 대기자가 있다는 소리다. 왜냐하면 ‘외국인 전용’ 번호는 P3000번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수업 때문에 학교에 갔다가 오후 1시에 시청에 돌아왔는데, 아직도 P3048번이었다.

10월 13일 6시 10분.

6시 10분에 왔다. 짠, 이미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줄에서 맨 앞 사람에게 언제 왔냐고 묻자, 새벽 3시에 왔다고 했다. 3시라고!? 진짜 추웠고, 나는 작은 접이식 의자를 집에서 갖고 왔다. 3시간 동안 추위 속에서 떨며 기다렸지만, 그래도 앉아서 기다릴 수 있어 다른 사람보다는 나았다. 어제 시청 직원이 체류증을 연장하려면 가져오라고 했던 ‘충분한’ 금액이 들어 있는 은행 계좌 사본을 준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급박한 기다림의 줄 속에서 매일매일을 살아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내 체류증의 만료일까지.

프랑스 Cergy 시청 건물 주변에 줄을 서고 있는 프랑스의 외국인(사진=ooo)
프랑스 Cergy 시청 건물 주변에 줄을 서고 있는 프랑스의 외국인(사진=홍성주)

2015년 10월 한 달 동안 새벽부터 아침 9시까지 Cergy 시청에서 줄을 서며 쓴 일기 들이다.

사람들이 깜깜한 새벽 하늘 아래 시청 건물을 빙 둘러 서서 몇 시간씩 기다리는 것이 충격이었다.

서너 시간 이상을 추운 날씨에서 기다리는 것은 무척 힘들어서 그런지, 내가 이미 프랑스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나라에 발을 디디지 못한 경계선 바깥의 사람인 것 같았다.

매일 새벽, 시청을 둘러싼 이 경계선은 보이지 않는다. 체류증을 만들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집에서 잘 시간에 나머지 외국인들은 줄을 서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출근과 등교할 시간에 이 대기 줄은 시청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직접 줄 서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만, 대부분 프랑스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기나긴 줄이다.

이것이 외국인에 대한 차별인지, 소외 계층을 고립시키는 사회 시스템인지, 개선 의지가 없는 게으름인지,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건지 그 원인은 명확하지 않고, 이것저것 섞여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오랫동안 바라보고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나는 매일 줄을 서 보기로 했다.

어느 날은 아프리카 Bénin에서 온 일흔 살 건축가 할아버지가 내 앞에 서셨는데, 자신은 집이 멀고 다리가 불편해서 근처 호텔에서 자고 나왔다고 하셨다. 다리가 아파서 내게 자리를 맡아달라고 하시고는 두 시간 후에 돌아오셨다.

그 후 나는 긴 의자를 만들고 싶어졌다. 사람들이 앉아서 줄을 설 수 있도록 100미터 정도 되는 벤치를 만들고 싶었다. 매일 새벽 두껍고 튼튼한 상자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10미터 정도 만들었을 때, 내가 이 길이와 무게를 혼자 감당하는 게 불가능한 것을 깨닫고 도중에 그만두었다.

어느 날은 내 뒤에 선 이탈리아에서 온 아저씨에게 이 벤치 이야기를 했더니, 그러지 말고 대기 줄 환경 개선을 위한 영상을 찍어 시청과 이야기해보라고 하셨다.

다음날 새벽 4시에 나와 줄 서려고 온 70명 정도의 사람들에게 영상을 찍어도 되는지 물어봤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아주 멀리서 대기 줄의 뒷모습을 찍는 것은 허락해주었다. 체류증을 만들 때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보였기에 이해가 갔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그런 중 시청과 이메일도 주고받았다. 다음은 내가 시청에게 이 경험을 설명하며 보낸 메일의 일부이다.

“… 어쩌면 당신들은 이런 경험을 외국인들이 매일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1년에 두 세번 해야 하는 것이라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경험은 제게 최근의 한 이슈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떤 오페라 공연 무대 위에 10분 동안 살아있는 소를 유리로 된 우리 안에 두는 것에 대하여 시민들이 동물 학대라고 분노해 시민 운동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10분이 아니라 3시간도 넘게 서 있습니다.(새벽 6시 쯤에는 이미 30명정도가 기다리고 있고, 7시 쯤엔 60여 명, 그리고 8시 쯤엔 거의 100명까지 서 있기도 합니다.)

여기는 굉장히 춥고, 앉아있을 곳도 없습니다. 오래 서 있기가 힘든 할아버지도 있고, 두세 살짜리 아이들과 함께 오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당신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이 상황은 이미 아시겠죠.

저는 이 대기줄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제 시간을 쓸 수 있고, 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대기실을 만든다든지, 아니면 고정된 의자들을 설치 한다든지, 아침 9시까지만 공중화장실을 설치 한다든지(그렇게 일찍 문을 여는 가게가 하나도 없어 화장실의 부재는 큰 문제입니다.), 아니면 시청의 시스템을 바꾼다든지 말이에요.

당신들이 제 이메일을 좋은 마음으로 읽으시기를 바라고,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3일 후에 시청으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아래는 답변의 일부이다.

“… 시청은 오전 9시에 업무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외국인 이용객은 당일 접수를 확신할 수 없는 두려움에 불편을 감수하고 업무 시작 서너 시간 전부터 대기합니다. 이에 귀하께서는 이용객들의 편의를 위한 의자 설치를 권유하셨으나, 시청의 외부공간은 시청 소유가 아닙니다. 따라서 저희는 건물 외부에 고정된 의자를 설치할 권한이 없습니다. 같은 이유로 공중화장실 역시 설치가 불가합니다.

저희 역시 시민들의 불편을 통감하는 바이며,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선착순으로 대기 번호를 받는 대기 줄 시스템이 최적의 방법이라 사료 됩니다. 추가적인 대응책으로 직원에게 요청 시 임산부 혹은 노약자는 우선적으로 출입하도록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랜 시간 대기한 이용객들의 불만을 초래할 수 있으나, 시청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시스템이라 사료 됩니다. 동절기에는 예외적인 방법이 동원될 수 있으나, 현재 실행 계획에 없습니다….”

결국, 나를 포함한 일부 유학생들과 많은 이민자와 난민이 경험하는 춥고 긴 기다림의 시간은 이방인에 대한 무관심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닐까.

모든 시청에서 줄을 서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수도권 도시인 Cergy는 주민 대부분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온 이민자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대기 줄이 길다. 그래서 이방인에 대한 무관심이 더 뚜렷하게 대기 줄로, 경계선으로, 보이되 보이지 않게 존재한다.

이 경계선 속에는 경계선 바깥과 동일하게 사람들이 대화하고, 웃고, 다투기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다만 이것이 경계선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신기하였고,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고, 또 살아보았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Cergy 시청 바깥에는 의자도, 대기실도, 화장실도 없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사람들이 많다.

모두가 춥지 않고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홍성주.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다니는 도중 예술을 하는 것에 반하여 중퇴한 후 프랑스로 갔다. 엑상프로방스 시립 순수미술학교에 입학, 남부의 따듯한 햇살과 함께 자유로운 미술공부를 시작 했으며 다시 다른 맑은 에너지를 찾아 세르지 국립 고등미술학교에 편입하여 깊은 경험들을 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자신에게 정직해야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학교 다니는 동안 모로코의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을 통해 타인을 내 속안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바라보기도 했고, 또 독일 학생들과 40년된 1톤짜리 오프셋 인쇄기를 사서 트레일러에 싣고 두 나라를 가로지르며 여러 메세지를 인쇄하는 여행을 1년간 추진하다가 실패해 보았습니다."

"환대의 형태와 멜로디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하면서요.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랑한다면, 그것을 살아보는 수밖에 없잖아요. 찾아가는 길목에서의 작은 만남들을 언어로, 목소리로, 노래로, 가끔은 선과 색깔로 남기면서 느릿 느릿 가 보는 중입니다. 타지 사는 외국인으로서 여러 상황이 생기다 보니, 보이지 않는 것, 보지 않으려 하는 것,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늘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프랑스 순수미술 학교를 다니며 살아본 몇 가지 소중한 순간들과의 만남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