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종 홍익대 건축도시 대학원(프랑스 유학생)

30대에 다시 유학 길에 나서다

[에듀인뉴스] "저희는 프랑스 파리에 사는 행정가, 건축가, 예술가, 보건전문가, 경영전문가 평범한 직장인과 유학생입니다. 언젠가 자신의 전공과 삶을 이야기하다 한국의 많은 분과 함께 나누는 매개체가 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서로 다른 다양한 전공과 각자의 철학과 시선으로 느끼고 바라본 프랑스의 이야기에서 시사점을 얻어가길 바라며 프랑스의 한국인 5명의 이야기를 관심 갖고 지켜봐주십시오."

프랑스에 살며 느낀 이야기를 국내에 소개하는 (왼쪽부터)옥승철, 전우휘, 이재현, 홍성주 유무종님.
프랑스에 살며 느낀 이야기를 국내에 소개하는 (왼쪽부터)옥승철, 전우휘, 이재현, 홍성주, 유무종님.

우연히 잡은 프랑스 유학 기회..."자유로움을 누리며 한 수 배우고 오겠다?"

[에듀인뉴스]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였다. 당시 대학원에는 프랑스에 있는 설계사무실에서 인턴십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고 지원했던 동기들 중 운 좋게 뽑혀 일 년간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출국을 앞둔 나는 근대건축의 시작이 이루어진 유럽에서, 그것도 예술과 과학의 도시, 프랑스 파리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대감에 싸여 있었고 다른 동기들은 누리지 못하는 호사라 여겨 묘한 우월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고백하거니와 답답한 한국을 떠나 숙소도 회사에서 지원해주고 적지만 한 달 용돈 정도의 월급도 나와 풍요롭지는 않지만, 곧 얻게 될 일 년간 자유로운 삶의 보장에 적잖이 흥분했다.

‘자유로움을 누리며 한 수 배우고 오겠다’는 꿈을 품고 비행기에 몸을 싣고 파리로 떠났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일에 익숙해지니 자연스럽게 건축보다는 음식 종류나 거리마다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더 관심이 갔다. 별다른 특별함도 기대감도 없이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어느덧 계약의 끝자락이 다가오자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에 앞서 그간의 삶을 돌아보니 지극히 평범했다. 중·고등학교를 거쳐 수능을 보고 대학교에 가는 등 흔한 10대·20대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의무들을 마치는 데 집중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그나마 고등학교 때까지 가지고 있던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다는 꿈도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도중에 접었고 마찬가지의 이유로 건축을 전공하신 아버지의 적당히 그림도 그릴 수 있으며 밥벌이도 할 수 있다는 권유로 건축을 택하게 되었다.

지금은 건축을 천직으로 생각하지만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대학에 들어가서 전공 수업을 시작하며 가지게 된 흥미와 하면 할수록 더 알아가고 싶은 욕구가 생겨 스스로 책도 보고 밤늦게까지 스케치 연습도 하는 과정이 있어서였다.

건축작업은 자기 생각을 약속된 선과 기호를 사용하여 도면으로 그리는 행위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설계 수업은 자기 생각을 주장하기 위해 수많은 객관적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여 사람들의 필요를 채움과 동시에 작가적 욕망도 실현하는 과정의 반복이다.

이 과정에서 참신하고 좋은 생각을 가지기 위해 책도 읽고 전시회도 다니며,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알기 위해 신문도 보고 여행도 다니게 됐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순전히 더 잘하고 싶고, 알고 싶은 마음에, 필요를 채우고 싶다는 마음에 자발적으로 하게 되었다.

나는 왜 OO대학으로 진학한 것인가

인턴을 마칠 즈음 당시 직원들과 친해져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고 되지도 않는 영어로 대화를 간신히 주고받던 중 프랑스에서 유학해보면 어떻겠냐는 얘기가 나와서 서로의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름 한국에서 건축으로 알아준다는 학교에 다니는 자부심이 있던 터라 실컷 학교 자랑을 하고 난 후 자연스레 프랑스의 건축학교 중에서는 어디가 유명하냐고 슬쩍 물었다.

그랬더니 대뜸 자신이 나온 학교가 제일 좋다는 말을 들었다. 프랑스의 일반대학은 고등학교 졸업시험인 바칼로레아 이후에 원하는 과에 들어가면 되지만 그랑제콜은 다른 트랙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그러한 과정을 거친 건축대학 학생들의 자부심도 상당했다.

그러나 당시 그들의 대답은 내가 원하던 답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등급과 점수로 나뉜 대학서열에 익숙한 나는 한국식 잣대로 프랑스에서 좋은 건축학교를 묻고 있었다.

이런 나의 우문에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본인들이 다니고 있는, 혹은 다녔던 학교가 제일 좋다고. 그러면서 되묻기를 어떤 건축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왜냐면 그에 따라 학교가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들의 말을 듣고 받은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건축학교마다 서로 다른 특색이 있어 교육방침도 다르고 건축 스타일도 다르다는 부분과 학교 명성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건축을 하고 싶은지에 따라 학교가 달라진다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애초에 대학 간판에 기대어 졸업을 목적으로 학위만 따면 사회에선 그럭저럭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전공에 대한 별다른 고민도 없이 대학에 간 나에게 어떤 건축이 하고 싶은지는 상당히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이었다.

오히려 대학에 가서야 전공에 대해 깨닫게 되었으니 순간 부끄럽기까지 했다.

30대, 다시 유학을 떠나다

질문을 던졌다. 과연 나는 앞으로 어떤 건축을 해나갈 것이며 어떤 건축가가 되기를 원하는가. 그리고 나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학교는 어디가 될 것인가. 이러한 질문과 대답의 필요성을 느낀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원을 마친 30대에 유학을 떠나기로 했다.

프랑스의 경우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비슷한 점수의 학생들이 몰리는 경우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다름 아닌 동기서다. 지원하는 전공에 대해 무엇을 배우고 그를 토대로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프랑스 대학교육의 시작이다.

우리는 왜 공부를 하는가.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하고 싶은가. 그를 위해 필요한 학교는 어디인가. 학교는 그를 위해 어떤 교수진을 포진하고 있는가.

맹목적 대학 입시를 위한 공부에 앞서 자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그를 위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명확하게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대학교는 목적이 아니라 필요를 위한 수단이니까.

유무종 프랑스 유학생

유무종 프랑스 유학생 홍익대학교 건축도시 대학원 재학중 프랑스 파리에서 해외 인턴쉽을 마쳤다. 이후 그르노블 Université Grenoble Alpes에서 도시설계학 석사를 마쳤고 파리의 Ecole spéciale d’architecture (그랑제꼴)에서 만장일치 합격과 félicitation으로 건축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We shape our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우리가 건물을 만들지만 그 건물은 다시 우리를 만든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좋은 건축에서 살아야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다는 환경결정론적 해석이 아닌 건물에 담겨진 이야기를 중점으로 칼럼을 쓰고자 한다.

건축은 오래전부터 우리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봐도 그렇다. 이 집에 오기까지 가지고 있는 각자의 사연, 집에서 살면서 늘어가는 저마다의 이야기들, 우리의 삶은 내가 살고 있는 공간과 함께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또 하나의 건물을 중심으로 그 건물과 지역을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이 우리의 삶 주변에 감추어있다. 그래서 건축을 하는 사람들은 건물은 부동산적 소유재산 이전에 우리의 삶을 반영하고 담는 그릇이라 여긴다. 따라서 건물을 살펴봄으로 우리는 각 사람의 삶의 형태와 가치관을 어느정도 유추할 수 있다.

앞으로의 글에서는 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살펴본 여러 공간(건물)과 그에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의 정서와 문화를 다루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