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유 경기대학교 초빙교수

(사진=픽사베이)

[에듀인뉴스] 아브라함 H 매슬로는 자기실현의 교육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실현의 참다운 가치는 근원적인 어떤 원인이나 결과보다는 그 결핍을 메꾸고자 하는 건강한 삶의 과정에 있다”고 역설했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우리 교육의 결함은 아이들로 하여금 극단적인 성적경쟁을 결핍동기(deficiency of motive)로 작용하게 한다. 구조적인 문제다.

나쁜 구조가 교육을 망치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의 일이나 나쁜 구조는  나쁜학생(?)을 만들고 좋은학생을 무력하게 한다. 나쁜 제도 못지않게 약자를 절망하게 만드는 영역은 관습이다. 교단은 층층시하다. 평교사로부터 부장과 수석교사, 교감, 교장, 장학사, 장학관 그리고 그 위에 군림하는 행정관에 이르기까지 교단을 지배하는 구조는 피라미드처럼 견고하다.

학생들은 어떨까? 사이코같은 중학생들이 무서워서 명퇴 신청이 줄을 잇는다는 교사의 애환시대라고 하지만 학생들은 아직 교사에 비하면 을이다. 교단에서 학생들이 겪는 을의 고달픔을 꼽아보면 끝이 없다. 실제 사례들을 나열해보자. 

첫째, 아이들은 시간을 지배당한다. 교사는 몇시에 출퇴근하든 8시간 노동을 보장받지만 학생은 교장이나 담임교사가 오라는 시간이 등교시간이고 가라는 시간이 하교시간이다. 입시교육을 빙자하여 오전 7시 30분부터 등교시키는 고등학교 교장들이 수두룩하고, 심지어 중학교조차 벌칙 등 이런저런 이유로 새벽등교를 강요하는 담임교사가 한둘이 아니다.

학생 입장에서는 항의하면 싸가지 없는 아이가 되고 부모나 교장도 묵인한다. 학교장은 교사의 행정업무를 제왕처럼 통제하는 대신 교사가 똑같이 학생을 통제하는 것을 당연시여기는 관습이 있다. 엄격하게 따지자면 학생의 일과는 1교시 타종과 함께 시작하고 마지막 교시 타종과 함께 끝나야 한다. 그런데 담임마다 그 일과시간을 고무줄처럼 당기고 늘린다. 학생이 담임선생에 따라 시간을 지배당하는 것은 교단의 오랜 악습이다.

둘째, 청소로 인간성을 평가받는다. 지금은 학생들에게 교사 화장실이나 학생들의 화장실을 청소하지 않도록 하는 학교가 훨씬 많지만 여전히 교실이나 특별구역의 청소를 학생이 맡는다. 사실상 학교 전체를 학생들이 쓸고 닦아야 한다. 자신이 배정받은 구역을 깨끗이 하지 못하면 담임교사는 교감에게 질책을 받고 학생은 담임선생에게 꾸중을 듣는다. 청소는 학생의 인간성을 판단하게 하는 주요한 기준이다.

교사는 학생의 청소 능력여하에 따라 인간성을 평가한다. 현재의 청소는 인건비를 아끼자는 것이지 결코 교육은 아니다. 교육이 아닌 부당 노동행위로 인간성을 평가하고 평가받는 악습은 좀처럼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셋째, 무상급식을 먹지 않으면 부적응아 취급을 받는다. 급식이 유상이냐 무상이냐 하는 문제는 실제로 학생 당사자에게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더 큰 고민은 식사 선택권이 없다는 것이다. 학생이 급식을 선택하지 않고 도시락을 갖고 오거나 매점을 이용하는 것은 담임교사나 학교장에게 골치 아픈 문제다.

무상급식의 수요를 예측하는데 번거롭고, 너무 많은 아이들이 급식을 먹지 않으면 식재료 예산이나 인건비 산정에 큰 타격이 온다. 그러한 이유로 매점을 아예 없애버린 학교도 많고,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매점에서 식사를 대체할 수 있는 음식물을 판매하지 못하게 한다. 

넷째, 기말고사 이후의 시간을 강제등교로 소일해야 한다. 주5일제수업 이후 연간수업일수가 220일에서 195일로 줄었지만 170일 정도 하는 서구OECD 국가들에 비하면 한국의 수업일수는 살인적으로 많다.

그러니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방학을 하는 그 나라 아이들에 비하면 우리 아이들은 기말고사 이후에도 긴 시간을 등교해야 하고, 중등의 3학년은 2개월 가까이 아무 할 일없이 교실에서 죽치고 앉아 수다를 떨어야 한다. 체험학습도 일주일로 제한하여 외국여행이나 긴 국내의 특별 프로그램을 차단한다. 무조건 학교에 나와서 소일하라는 뜻이다.

교육부는 이것이 악습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수업일수를 줄이려들지 않는다. 적반하장으로 그 시간에 공부만 시키라고 교사들을 닦달하고 단축수업을 못하도록 학교장들에게 엄포를 놓는다. 규제도 이만저만한 규제가 아니다. 교장들과 교사는 물론이고 학생들은 죽을 맛이지만 도무지 개선될 것 같지 않은 악습으로 보인다.

다섯째, 도무지 교과서를 구할 수가 없다. 학기초에 받은 교과서를 학기중에 분실하면 어디서든 교과서를 구하기가 힘들다. 무상으로 교과서를 지급하는 초·중학교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교과서 회사들은 교육청과 학교가 엄격히 관리하는 교과서 수급체계를 따라 일제히 공급한 후 남은 것을 회수하여 철수하면 그 뒤로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간다.

분실이나 전학의 이유로 소수의 학생들이 학기 중에 주문하는 그저 몇권의 교과서를 위해 추가로 책을 찍어대고 트럭에 실어서 갖다 주는 일은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교과서가 유상일 때는 학교 앞 서점에 가면 언제든 교과서를 구입할 수 있었다.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학교 근처의 서점에 교과서 공급권을 주고 학생들이 소액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구입하게 하고, 추가 구입은 유상으로 구입하게 하면 학생도 분실의 공포심을 잊을 수 있고 동네 책방도 학생들이 몰려오니까 경기를 되살릴 수 있다. 무상 교과서 정책 이후 벌어지는 혼란에 대하여 아무도 수습하려들지 않고 학생들은 힘이 없다. 참 나쁜 관습 때문에 입는 학생의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이들을 억울하게 만드는 교단의 악습들은 이밖에도 수없이 많다. 오래 전부터 하나 둘씩 만들어지기 시작한 악습은 이제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교육개혁과 교육혁신을 할 때마다 악습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위에 개혁과 혁신을 덧붙여서 쓰레기 산을 만든다.

시간이 가도 그 어느 것 하나 없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데, 학생과 교사들은 악습의 피해자인줄도 자각하지 못한 채 오히려 을끼리의 무한경쟁에 젖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악습들을 을끼리 전가하는 아비규환의 교단에서 교사와 학생은 하루하루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갈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악습인지 분간하기 힘든 세월이다. 다만 12월 연말에 다시 한번 교단의 악습을 되돌아보며 그들을 연민한다.  

김대유 경기대학교 초빙교수
김대유 경기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