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학 보건교육포럼 공동대표/ 경기 시흥 은행중 보건교사

[에듀인뉴스-보건교육포럼 공동기획] 2007년 학교보건법 개정으로 학교 현장에서 보건 교육이 의무화됐다. 이후 13년, 학교 현장에서는 하브루타, PBL, 거꾸로수업 등 다양한 교수법이 도입되었다. 특히 2015 개정교육과정은 역량 계발을 교육의 중심에 둠으로써 교과마다 수업 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에듀인뉴스>는 (사)보건교육포럼과 함께 변화한 보건 교육의 내용과 방식을 자세히 알아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김지학 보건교육포럼 공동대표/ 경기 시흥 은행중 보건교사
김지학 보건교육포럼 공동대표/ 경기 시흥 은행중 보건교사

[에듀인뉴스] 교육은 사회의 가치를 담는 그릇이면서 동시에 사회를 견인하는 뼈대가 되기도 한다. 2007년 학교보건법이 개정되면서 헌정 사상 최초로 법률에 의해 보건 과목이 탄생할 때까지만 해도 보건교육의 큰 관심은 여전히 학생들의 건강증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위험사회의 도래, 역량중심사회의 핵심 근거로서 건강과 생명의 중요성 부각, 학생의 행복과 역량 확대를 위한 교육과정의 변화 등을 겪으면서 보건교육의 철학적 지향점도 변모하기 시작했다.

보건교육이 건강증진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진로탐색의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나아가서는 역량증진을 위해 삶의 기술을 배우는 교육으로까지 심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 작년까지 근무했던 고교에서는 보건 수업뿐만 아니라 동아리 활동, 주문형 강좌 등을 통해 보건교육을 실시했고, 올해부터는 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를 활용해 주제선택, 예술체육활동을 통해 보건교육을 심화·확대하고 있다.

사회적 현안에 대한 관심을 높여라 '동아리 활동'

고교에서 창의적체험활동 내 건강증진 동아리는 학기 초에 학생들과 토론을 통해 연간 계획을 세웠다. 특히 2018년에는 헌법 개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했지만, 정작 건강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족했고, 더구나 청소년의 건강권은 열외처럼 다루어져 ‘청소년 건강권’을 주요 활동 내용의 한 부분으로 선정했다.

보건 교과서의 건강권 단원을 근거로 입법, 행정의 차원에서 우리 지역의 건강권에 대한 현황을 탐색해보는 활동이었다.

입법 차원에서는 우리 지역의 시의회를 방문하여 청소년 건강권 관련 조례 제정 실태를 파악하고 학생들이 직접 의견을 제안하기로 했다.

행정 차원에서는 보건소와 성문화센터를 방문하여 법령에 따른 건강권 행정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직접 탐색해보기로 했다.

활동 전 카드뉴스를 통해 건강권의 개념, 입법·행정·사법을 통해 구현되는 건강권의 의미에 대해 배우고 브레인 스토밍으로 각 기관별로 질의하고 싶은 내용을 공통 질의로 뽑아냈다. 학생들이 정리한 내용을 견학 전에 미리 각 기관 담당자에게 보냈다.

학원가 음주 시설 제한 조례 제정에 대한 P시 보건소의 회신 내용.(자료=김지학 교사)
학원가 음주 시설 제한 조례 제정에 대한 P시 보건소의 회신 내용.(자료=김지학 교사)

특히 시의회를 방문하면서 학교의 환경위생정화구역 내에는 음주 시설을 설치할 수 없으나 학생들이 방과 후에 활동하는 학원가에는 정작 음주 시설에 제한이 없다는 점을 제기하면서 관련 조례 제정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와 관련해 시의회 및 관계 기관은 직접 회신을 보내왔다.

이를 계기로 학생들은 스스로 의견을 모아 입법 요청을 할 수 있으며, 실제 법령 개정을 통해 건강권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확 늘어난 수업 시수 '주문형 강좌'..."찬반토론, 실습, 발표 등 수업 몰입도 높여"

주문형 강좌는 학생들의 수요를 파악해 교과를 개설해 방과 후 운영하는 고교 교육과정으로 인근 S여고에서 연간 68시간 보건 과목을 개설했고, 1년 동안 매주 수요일마다 강사로 파견되어 보건교육을 담당했다.

수강 인원은 최대 13명으로 보건의료계열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주축이 되었다. 보건 과목은 교양교과로 P/F로 평가되는데도 학생들의 수업 집중도나 열의가 대단했다.

2015 교육과정에서 고교 보건과목은 5단위(85시간)를 기준으로 3단위 내에서 가감(2~8단위)하여 개설할 수 있는데, 도입 첫 해에는 34시간을 개설했다가 이후 68시간으로 확대했다.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할 경우 보통 17시간(1단위)의 보건 수업이 주어져 최소한의 내용만 다루기에도 급급했다.

건강의사결정능력 수업. 학생이 직접 학교의 건강 문제를 파악하고, 실천 계획을 세운 후 발표하는 모습.(사진=김지학 교사)
건강의사결정능력 수업. 학생이 직접 학교의 건강 문제를 파악하고, 실천 계획을 세운 후 발표하는 모습.(사진=김지학 교사)

그러나 정식으로 보건 과목을 개설해 68시간(4단위)의 수업 시간이 확보되자, 보통 다루기 힘들었던 건강 의사결정, 건강권, 건강 윤리, 보건의료제도, 건강 문화까지 다양한 보건교육 내용을 학습할 수 있었다. 찬반 토론, 실습, 발표 등을 통해 학생들의 수업 참여를 높일 수 있었다.

자유학기제를 활용한 중학교 보건 수업

중학교의 자유학기 활동은 주제선택, 예술체육, 동아리, 진로탐색 활동으로 구성되며 다양한 체험 중심의 활동이 권장된다.

올해 전근오면서 1학기에는 중1 학생을 대상으로 주제선택 활동 일환으로 보건교육을 실시했다. 2학기에는 주제선택 활동뿐만 아니라 예술체육활동에 ‘성’과 ‘정신건강증진’을 중심으로 활동을 구성해달라는 요청이 있어 보건 수업 시간이 2배로 확대되었다.

특이한 점은 주제선택 활동으로 1학기에 보건 수업을 신청한 학생들이 2학기에 성과 정신건강증진 수업을 재신청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주제선택 활동으로 시행되는 보건 수업은 건강의 개념과 건강결정요인, 성장과 신체상, 응급처치와 심폐소생술, 흡연과 음주 예방, 성교육, 스트레스 관리 등으로 구성되었다.

예술체육 활동으로 시행되는 성과 정신건강증진 교육은 보건교육의 내용 영역 중에서 성교육과 정신건강증진 교육을 심화한 교육활동으로 사랑의 의미, 남녀의 신체발달과 성심리, 임신과 피임, 성평등과 성문화, 스쿨미투와 그루밍:성폭력 예방, 분노조절과 스트레스 관리, 감정의 수용과 이해, 죽음의 이해 등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

학생들은 매 시간 수업이 끝나면 자기 성찰 보고서 작성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점, 질문 사항, 반성 및 계획 등을 적어 제출하고 있으며, 이는 모든 활동이 끝난 후에 평가의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왼쪽부터)이미지 프리즘을 활용한 사랑의 정의 내리기와 역할극을 활용한 음주 거절하기 활동 모습.(사진=김지학 교사)
(왼쪽부터)이미지 프리즘을 활용한 사랑의 정의 내리기와 역할극을 활용한 음주 거절하기 활동 모습.(사진=김지학 교사)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습관 바꾸고, 진로 바꾸고 그래서 행복하다면...

지난 주 보건 수업을 받은 A 학생이 찾아 왔다. 보건 수업 시간 중에 욕설을 하는 것은 감정 뇌의 발달을 저해하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게 하며 이로써 학습 능력까지 떨어지게 한다는 것, 생체주기와 성장의 비밀, 식습관의 중요성, 스마트폰 과몰입 문제 등을 배우면서 내년 학생회 임원으로 선출되었으니 학생회 친구들과 함께 학생들이 공동으로 지킬 건강 수칙을 만들어 보겠다는 포부(?)를 밝히러 온 것이다.

때로는 학교에서 법률과 고시로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정해진 최소한의 보건 수업을 확보하는 것조차 어려울 때가 있다. 보건교사 1인이 응급처치와 보건 수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상상 외로 버겁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건강 생활 습관이 바뀌고, 진로의 방향이 바뀌며, 나아가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위한 역량을 기를 수만 있다면?

보건교육은 보건교사들의 아주 단순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어 이제는 건강하고 행복할 권리가 있는 아이들과 함께 변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