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시흥 연성중 김기정 교사

[에듀인뉴스] 학급운영, 생활교육의 핵심은 대화를 통한 학생과의 관계 형성이다. 관계 형성을 위해 우선 학생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그림책이 학생들의 얼어있는 마음의 문을 열어준다. 마치 마법처럼. <에듀인뉴스>는 ‘그림책 학급운영’을 집필한 그림책사랑교사모임 회원들과 그림책이 주는 마법의 비밀을 공유하고자 한다.

[에듀인뉴스] 수업을 들어갈 때 무언가로 꽉 채운 보조 가방을 늘 가지고 다닌다. 수업 종이 울리고 복도를 지나갈 때 이런 나를 보시고 선생님들께서는 “뭐가 그리 많아?”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생각해보니 늘 교과서와 활동지 외에 그림책을 몇 권씩 들고 다닌다. 그림책이 너무 좋아 특별히 시간을 내서 보는 게 아니라 틈만 나면 봤던 것 같다. 수업이 연이어질 때 다른 교실로 이동하는 시간이 10분 정도 되는데 교무실에 들르지 않고 교실에서 그림책을 보다 이동할 때가 많다.

왜 이리 그림책에 빠진 걸까 생각해보니 그림책은 참 부담이 없다. 그림과 색깔은 학생들의 갖가지 요구에 늘 응해야 하는 고된 일상을 어루만져주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 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위로를 받으니 학교에서 만나는 동료 교사와 학생들에게도 그 마음이 전달되는 것 같다.

그림책 '돼지꿈' 표지.(김성미, 북극곰, 2017)
그림책 '돼지꿈' 표지.(김성미, 북극곰, 2017)

여러 번 봐도 이해가 안 되는 장면이 있어서 계속 들고 다닌 그림책이 있었다. 김성미 작가의 '돼지꿈'이 그랬다. 수업이 끝나고 정리를 하고 있는데 남학생 한 명이 오더니 그림책을 봐도 되냐고 물었다. 평소 말이 없고 조용했던 학생인지라 물어본 것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다 읽은 것 같아 그림 장면 하나를 물어봤다.

“이 장면 말이야. 이 아이는 돼지가 되는 소원을 이뤘는데, 왜 달라진 건 없었다고 하는 걸까? 잘 이해가 안 돼서.”

남학생은 주저 없이 “돼지가 되어도 놀지를 못하네요. 나랑 같네”라고 가볍게 얘기를 했다. 순간 ‘아!’ 하는 감탄사가 나오고 하던 일을 멈췄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을 이 학생은 쉽게 글과 그림에서 공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툭 던진 말에서 풀리지 않던 그림책 숙제를 해결했다. 그림책을 놓고 몇 번 대화가 오고 가면서 정말 잘 알지 못했던 학생이었는데 아주 짧은 시간에 그 학생에 대해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교사와 학생 간에 라포르를 형성하기 위한 매개체로서 그림책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교탁 위에 그림책이 펼쳐져 있으면 관심을 보이는 학생이 상당히 많다. 전공 서적이나 활동지였다면, 학생들이 그렇게 많은 관심을 보였을까? 이것이 그림책이 주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책은 32페이지 내외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짧다. 그림과 다양한 색깔은 직관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당긴다. 그리고 대부분 어린 시절 그림책을 보고 좋았던 경험이 있다. 이런 것들이 그림책을 부담 없이 편하게 볼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학급은 30명 내외 구성원이 함께 생활하며 공동체의 삶을 익히는 곳이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삶을 축약해서 표현한다. 그 부분을 학생들과 함께 찾고 실천에 옮기며 학급을 운영하면 좋다.

책 '그림책 학급운영' 표지(그림책사랑교사모임, 교육과실천, 2019)
책 '그림책 학급운영' 표지(그림책사랑교사모임, 교육과실천, 2019)

그림책으로 학급을 운영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그림책의 글과 그림은 사람을 위로한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숨은 메시지가 많다. 그냥 보아도 좋지만 앞표지부터 시작해 표지를 펼쳐도 보고, 표지 다음에 오는 면지의 색과 느낌, 서체, 문장들, 그리고 그림책을 덮을 때까지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이 마음을 톡톡 건드린다.

잊고 있었던 삶의 진실과 추억을 생각나게 하고 짧은 문장이 읽는 이의 마음에 따뜻함과 용기와 위로를 건넨다.

둘째, 서로를 공감하게 한다.

학급운영에 필요한 것은 논리적 사고력과 판단력보다는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공감이다. 그림책은 상대방의 감정을 공감하고 위로와 아픔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교사의 말로는 한계가 있고 학생들의 집중을 끌어내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림책은 구체적 상황과 감정이 드러나기 때문에 몰입하게 되고 공개적이지만 간접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다치지 않고 표현할 수 있다.

하임 기너트는 "학습에 유익한 감성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은 항상 교사의 몫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림책은 감성적인 분위기 조성으로 서로 공감하게 해야 하는 교사의 역할을 덜어준다.

셋째, 공동체 역량이 성장한다.

학급운영 활동 방법에는 모둠활동이나 협력학습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많다. 그림책을 활용할 때는 모둠활동이 기본이 된다. 왜냐하면 그림책을 다 함께 읽고 느낌을 나누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림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 똑같은 글과 그림에 대한 느낌과 생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여기에서 학생들은 다름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쉽게 협력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넷째, 순수함을 되찾게 해준다.

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각종 미디어에 노출되어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자극적인 영상이나 글을 봐야 재미있어하고 관심을 보인다.

그림책은 그림과 언어가 아름답고 순수하며 교육적이다. 그런데 시시하지 않다. 인간의 삶에서 아름다운 부분을 콕 집어 꺼내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 학생들은 이 부분에 저절로 빨려 들어간다. 잠시 잊고 있었던 순수한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다섯째, 학생들의 변화가 내면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다.

학급운영이 교사 주도로 이루어질 경우 그해에는 잘 조직되고 효율적으로 운영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교사 주도로 이루어진 교육은 단기적인 효과에 불과할 뿐 장기적으로 학생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림책은 스스로 보고 생각하고 느껴야 하는 능동적인 학습 매체이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스스로 글과 그림을 해석해야 하고 자기만의 생각을 정립하는 배움을 기본으로 한다.

그림책으로 학급을 운영할 경우 학생 주도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는 학급운영의 효과가 장기적으로 이어지길 원한다. 그림책의 스토리와 그림 장면은 정말 오래 기억된다. 특히 자신에게 의미가 있다면, 아마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림책으로 활동 후 한동안은 복도를 지나갈 때 학생들이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그림책 인물을 부르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 학생은 그림책 덕분에 본인의 진로가 바뀌었다고 말한 적도 있다. 대단한 효과가 아닐까.

그림책이 글과 그림이 어우러져 이야기를 전달해주듯이 그림책 학급운영은 학생과 교사가 어우러져 특별한 학급 이야기를 마음 속 깊이 전달해준다.

김기정 경기 시흥 연성중 교사
김기정 경기 시흥 연성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