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주 영산대 교수/ 서울시교육청 2020 총선 모의선거 프로젝트 학습 추진단장

장은주 영산대 교수/ 서울시교육청 2020 총선 모의선거 프로젝트 학습 추진단장

[에듀인뉴스] 우역곡절 끝에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 개정안은 주로 이른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때문에 심각한 정치적 갈등의 대상이 되었고 또 그 점에서 세간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선거권 연령 하향 조정’이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안을 포함하고 있다. 각 정당들의 이런 저런 이권 줄다리기 때문에 거의 누더기가 되었다는 평가가 나올 지경이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보다는 어쩌면 선거권 연령 하향 조정이 앞으로 우리 민주주의를 위해 더 큰 의미를 가지질 지도 모르겠다. 

당장 다가 올 4.15 총선 때 부터 18세 이상 국민 모두가 선거권을 가지게 됨으로써 상당수의 고3 학생들과 탈학교 청소년들도 투표에 참가하게 된다. 

단순히 유권자의 수가 확대된다는 차원을 넘어 우리 민주주의를 위해 획기적 의미를 가진다고 해야 한다. 이제 각 정당들은 선거에서 득표 경쟁을 하면서 젊은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좀 더 젊고 참신한 후보를 내세우는 건 물론 좀 더 합리적으로 정책 정당화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 정책의 방향도 대학 입시나 군입대 문제 같이 청년의 삶의 현실과 미래에 좀 더 밀착된 사안들에 초점을 두게 될 것이다. 기대컨대 지역주의도 크게 완화되지 싶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다. 18세에 이른 모든 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건 OECD 국가들 중에서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예외였을 정도로 보편적 추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 동안 18세든 19세든 새롭게 유권자가 되는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정치교육 또는 민주시민교육을 해 오지 않았다. 

미래 세대가 주권자가 될 준비를 제대로 도와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19세 새내기 유권자들은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이나 대학생활을 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와 정치를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기회라도 갖는다고 볼 수는 있다(물론 그래도 대부분은 갑작스럽게 유권자가 되는 경험을 피할 수 없지만 말이다). 

주로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생활하며 입시공부에만 몰두하도록 강요받으며 살아 왔던 많은 고등학생 유권자들은 그야말로 완전한 무방비 상태에서 유권자가 될 지도 모른다. 탈학교 청소년들은 더 더욱 그럴 터다. 이래서는 선거권 연령 하향의 의미가 제대로 살 수 없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정치적 진공 상태' 만들라는 의미 아냐

사회 일반에서도 그렇지만, 그동안 한국의 학교에서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명분으로 더 더욱, 모종의 ‘정치 혐오’가 지배적이었다. 정치는 학교에서 무관심을 넘어 아예 기피해야 할 대상이었다. 물론 교육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대의를 쉽게 부정할 수는 없다. 맞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우리의 헌법적 가치다. 

그러나 그 원칙은, 일차적으로 교육이 정치권력에 의해 수단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당위를 표현한다고 해야지(우리 헌법의 문언도 정확히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고 되어 있다), 학교와 교육을 무슨 ‘정치적 진공 상태’로 만들어야 마땅하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식의 이해는 민주공화국의 공교육은 올바른 자질을 가진 미래의 민주시민을 양성해야 한다는 교육의 근본 목적에 정면으로 배치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학생들에게 정치와 민주주의를 제대로 교육함 없이 그들을 책임 있고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길러내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치교육 또는 민주시민교육을 하되, 그것도 될 수 있으면 충분히 하되, 교육 현장의 정치적 중립성은 다른 방식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학교에서 정치 교육을 꺼리는 이유는 학생들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갖는다고 이해(오해)되는 교사들이 정치적으로 편향적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당한 우려이긴 하다. 그러나 교사들 보고 아무런 정치적 견해도 갖지 말라고 강요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런 건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무엇보다도 반인권적이다. 

교사도 시민인 만큼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형성하고 필요하다면 그것을 학생들에게 표현할 수도 있게 하는 게 더 교육적일 수도 있다. 

선거교육, 중립성과 공정성 가장 선명하게 확보할 수 있는 정치교육

확실히 교사가 학생들에게 특정한 견해를 주입하거나 강제하는 일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교사가 오류 가능성과 수정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사회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견해들을 공정하게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학생들과 함께 올바른 입장을 탐구하는 방식의 교육은 장려되어야 마땅하다. 

교육에서 요구되는 정치적 중립성은 바로 이런 차원에서 더 의미 있게 확보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런 교육의 요점은 학생들이 스스로 비판적 사유를 통해 독립적인 정치적 판단을 형성하도록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오해 많은 ‘정치적 중립성’보다는 ‘정치적 공정성’을 원칙으로 삼자고 제안한 바 있다. 

선거교육은 이런 중립성 내지 공정성을 가장 선명하고 또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정치교육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다원적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선거를 통해 다양한 정치적 지향과 정책적 해법을 제시하는 다양한 정당들이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데, 바로 이를 교실에서 일정한 방식으로 재현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정당들과 그 후보자들이 학생들 앞에서 자신들의 정견을 피력하고 학생들이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토론한 뒤 일정한 선택을 해 보게 하는 이런 교육에서는 우리 정치 사회의 다원적 지형을 비교적 공정하게 드러나게 할 수 있다. 

여기서 교사가 자신의 정치적 편향성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거나 강제하는 일은 원천적으로 봉쇄될 수밖에 없다고 해야 한다. 이런 교육에서 교사는 기본적으로 중립적인 사회자나 진행자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거 교육 때문에 학교가 정치판이 되리라는 우려는 정치혐오 의식에 바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기우가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상황이 더 문제적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거의 억지춘향 격으로 학교를 정치적 진공 공간으로 만들려고 노력해 왔지만, 그렇다고 학생들이 정치와 아예 담을 쌓고 살 수는 없다. 매일 매일 부모를 통해, 뉴스를 통해, 하다못해 거리에 내 걸린 플래카드를 보면서, 늘 정치적 견해와 갈등을 접하면서 살아간다. 선거 때는 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만약 학생들에게 제일 중요한 삶의 공간인 학교에서 정치를 금기시하거나, 기껏해야 공식적인 교육과정에 따른 입시를 위한 교과서 지식 위주의 정치 공부만 하게 하면, 학생들은 결국 SNS, 특히 이른바 ‘단톡방’ 같은 공간을 통해 정치적 견해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런 공간은 숱한 ‘가짜 뉴스’로 도배된 지 오래고 민주주의 사회가 감당하기 힘든 극단적이고 왜곡된 정치적 견해들이 지배하기 일쑤다. 이래서는 우리 미래의 주권자들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꾸려갈 수 있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다. 

말하자면 학교 안으로 정치를 가지고 들어와야 한다. 첨예하게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민감한 정치적 사안이라도, 아니 그런 사안일수록 더욱 더, 학생들이 교사의 지도 아래 일정한 절차와 방식을 따라 토론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은 민주주의 사회가 감당하고 용납할 수 있는 틀 안에서, 단순한 편견이나 독단 또는 무지에서가 아니라, 토론과 이성적 숙고를 거쳐 다양한 합리적 견해들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학교이기 때문에 정치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외려 다름 아닌 학교이기 때문에 온갖 이해 다툼과 갈등으로 가득 찬 사회보다 더 순수하고 더 이성적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실험할 수 있다고 해야 한다. 

학교에서 본격적 정치교육, 민주시민교육 수행해야

이제 우리 사회는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정치교육 또는 민주시민교육을 수행해야 한다. 물론 지금 당장 우리 교육의 인식틀과 관행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그와 같은 민주시민교육을 체계적으로 시행하는 건 무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변화를 위한 준비와 노력을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당장 이번 총선부터 많은 청소년들이 유권자가 된다. 모의선거교육부터 제대로 시작하자. 사실은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우려가 가장 적은 정치교육이 이런 선거교육이다. 

이런 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단순히 우리 민주주의의 제도나 정당 정치의 메커니즘 정도를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좀 더 근본적인 수준에서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한 ‘공동선’이 무엇인지 숙고하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당당한 주권자로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시민으로서 자신의 견해가 반영되고 존중받는 정치적 효능감을 확인하면서 서열화된 성적 위주의 교육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시민적 자존감’도 기를 수 있게 된다. 이런 교육의 가치를 성공적으로 확인한 후, 좀 더 체계적인 민주시민교육 활성화도 시도해 보자. 이를 통해 우리 민주주의도 더 성숙해 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교육도 최소한의 건강함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