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소 프랑스 유학생

프랑스, 나의 음악 인생 터닝 포인트가 되다

[에듀인뉴스] "저희는 프랑스 파리에 사는 행정가, 건축가, 예술가, 보건전문가, 경영전문가, 평범한 직장인과 유학생입니다. 언젠가 자신의 전공과 삶을 이야기하다 한국의 많은 분과 함께 나누는 매개체가 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서로 다른 다양한 전공과 각자의 철학과 시선으로 느끼고 바라본 프랑스의 이야기에서 시사점을 얻어가길 바라며 프랑스의 한국인 이야기를 관심 갖고 지켜봐주십시오."

한미소 프랑스 유학생. Conservatoire à Rayonnement Regional de Rueil-Malmaison, Conservatoire à Rayonnement departemental de Bourg-la-reine 반주자
한미소 프랑스 유학생. Conservatoire à Rayonnement Regional de Rueil-Malmaison, Conservatoire à Rayonnement departemental de Bourg-la-reine 반주자

[에듀인뉴스] "졸업하면 뭐 할 거니?"

"그래서 유학은 언제 갈 거야?"

음악을 전공한 학생들이 대학 졸업을 앞두고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무렵의 나는 이런 얘기는 나와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대학에서 교직 이수를 하고, 임용 고시를 쳐서 '음악 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음대를 갔던 나였기에.

그렇지만 음대 안에서 여러 연주와 공연들을 경험하고, 적성에 맞는 '반주'라는 분야를 발견하면서 '하기로 한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갈등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그 무렵, 마스터 클래스에서 어떤 피아니스트를 만났다. 그는 미국 출생으로 독일과 프랑스에서 피아노와 오페라 지휘를 공부했으며, 이탈리아에 거주하고 있었다.

한 자리에서 무려 4개 국어를 동시에 하는 사람이라니! '대구'라는 도시를 벗어나 본적이 없는 내게는 너무 큰 충격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당시 나의 고민을 그 피아니스트에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내 말을 들은 후, 그는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다.

"사람은 부모로부터 한 번 세상에 태어나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함으로써 두 번째 탄생을 경험한다."

이 짧은 한 마디는 나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고, 나는 그 때까지 계획해왔던 삶을 180도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2016년 2월 피아노 한미소, 플롯 미쉘 모라게스의 서울 예술의 전당 공연.(사진=한미소 유학생)
2016년 2월 피아노 한미소, 플롯 미쉘 모라게스의 서울 예술의 전당 공연.(사진=한미소 유학생)

시간이 흘러, 나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오페라 코치'라는 조금은 생소한 분야를 전공하게 되었고, 오페라 피아니스트 및 전문 연주자로 활동했다.

하지만 프로로서 일을 하고 있는 중에도 '유학'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원래 클래식 음악의 출발점이 유럽인 것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나의 위치를 더욱 높이기 위해서는 외국의 '디플롬(졸업장)'이 있어야 여러모로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 한계에 부딪쳐 힘들어하면서도, 이미 서른이 넘어버린 시점에 쉽사리 유학을 결심하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날들을 보내던 가운데 2015년, 프랑스 연주자들을 만나 그들의 음악 캠프에서 일을 하고 같이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분야가 달라서-대부분 악기 연주자들이었고, 당시 나는 주로 성악가들과 일을 하고 있었다-걱정되는 점과 함께, 프랑스에서 유명 교수이면서 연주자로 활동하는 사람들과 공연을 한다는 기대감에 차 있었다. 그리고 그전까지 프랑스 연주자들을 만나본 적이 없어서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유려하고 섬세한 선율과 유리알처럼 투명한 소리, 깃털과 같은 분위기에 온 마음을 뺏겨버렸다. 그리고 그들의 연주는 내가 갖고 있는지도 몰랐던 내 안의 섬세함과 투명함을 끌어올리고 나로 하여금 그것을 발견하게 만들었다.

맙소사! 내가 왜 지금에서야 이 경험을 하는 거지?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조금만 더 일찍 경험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무엇보다 나를 더 놀라게 했던 것은 그들의 음악에 대한 자세와 생각 그리고 태도였다. 내 예상보다도 그들은 음악에 있어 상당히 탄탄한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라는 나라를 떠올렸을 때 항상 '자유분방함'을 먼저 떠올렸었기 때문에 그들의 음악에 대한 논리적 대화를 들으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음악의 자유로움 안에서 질서를 추구하며, 그리고 그것을 적절히 융화시켜 발전해 나가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처음 만난 동양인 피아노 반주자에게도 음악인으로서의 대우를 잊지 않았다. 사실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한 관계이기에 그냥 무미건조한 예의상의 인사를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겠지만, 그들은 진심으로 나에게 조언해주고, 그저 '입바른 칭찬'이 아닌 내가 음악인으로서 잘해오고 있음을 언제나 인정해 주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무시를 받고 있는 듯한, 혹은 부당한 입장에 처해 있는 상황을 보았을 때, 그들은 내가 그런 일을 당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해 주었다. 적어도 그들에게 내가 한 사람의 '음악인'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 깊이 감사했다.

사실 프랑스는 내 유학 선택 목록 안에 존재하지 않는 나라였다. '오페라'라는 분야의 특성상 이탈리아와 독일을 놓고 고민하던 중, 나는 갑자기 방향을 바꿔 프랑스 유학을 결정했다. 서른 둘, 유학을 가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나이, 그리고 한국에서 이뤄놓은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떠나는 것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프랑스 연주자들을 통해 받은 아름답고도 신비한 '음악적 대화'를 다시 경험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언제나 해왔던 음악들이 아닌 신비로운 '프랑스 음악'을 제대로 경험하고 싶다는 열망이 피어올랐다.

'모험'과 '안정', 그 어느 사이에서 나는 늘 방황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선택은 언제나 '모험'이었다. 내가 원하는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살고 싶은 삶을 살기 위해서 감수해야 하는 리스크가 물론 존재하지만, 그 리스크를 견디고 살아냈을 때, 분명 나는 그 어느 것 보다도 값진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프랑스에서의 모험을 시작한 지 어느덧 4년째, 나는 학업을 마치고 내 전공분야를 살려 현재 음악원에서 일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듯이 앞으로 더 많은 음악들, 더 많은 음악인들과 마주하게 될 '모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늘 벅차다.

한미소. Conservatoire à Rayonnement Regional de Rueil-Malmaison, Conservatoire à Rayonnement departemental de Bourg-la-reine 반주자. 경북대학교 피아노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전문사 오페라과 코치 전공 졸업 후, 오페라 코치 및 전문 반주자로 활동하던 중 프랑스 유학을 결심, CRR Rueil-Malmaison에서 L'Accompagnement au Piano를 전공, DEM(Diplôme d'Etudes Musicales) 과정과 Perfectionnement 과정을 만장일치 수석으로 졸업했다. 

"덴마크의 위대한 동화작가 안데르센이 말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아니하는 곳에서 통하는 것이 음악이다.' 

한국에 있을 때 여러 나라 연주자들을 만났고, 그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 가운데 음악으로 대화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렇듯 음악은 국가와 환경, 인종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아름다운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가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만큼, 음악에 대한 그들의 사랑과 열정 또한 가득합니다. 제가 프랑스에서 경험한 음악, 그들이 삶속에 녹아들어 있는 음악 교육, 그리고 삶의 연주들을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