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교 광동고 교사 18일까지 서울 효자동 갤러리 '우물'서 개인전

김원교 경기 광동고 교사는 "30년 교직을 마무리하는 이번 전시회로 제자들에게 희망과 힘들고 지친 마음에 위로를 주고 싶었다"고 한다.(사진=지성배 기자)
김원교 경기 광동고 교사는 "30년 교직을 마무리하는 이번 전시회로 제자들에게 희망과 힘들고 지친 마음에 위로를 주고 싶었다"고 한다.(사진=지성배 기자)

[에듀인뉴스=지성배 기자] 30년 미술교사이자 꾸준히 작품 전시회까지 이어 온 작가가 교직 경력 마무리 전시회를 열어 눈길이 간다.

경기 광동고 미술교사이자 중견 예술인 김원교 작가는 올 2월 교단생활을 마무리하고 작가로서 제2의 인생을 출발하는 것을 기념해 지난 3일부터 서울 효자동 갤러리 우물에서 개인전 ‘작은 위로’를 18일까지 개최한다.

“2016년 창령사를 방문했을 때 나한상을 보고 발걸음을 뗄 수 없어 보고 또 봤다. 불상으로서 위엄이 아니라 보통사람의 얼굴과 표정이 내 마음속에서 잔잔한 감동을 일으켰다.”

이렇게 나한상으로부터 받은 잔잔한 감동을 늘 마음에 품고 있던 지난해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특별전이 서울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다. 김원교 작가는 전시회를 수차례 방문, 결국 나한상을 자기 작품으로 만들어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이번 개인전을 준비했다.

특히 이번 개인전은 30년 교직생활을 마무리하는 것이라 더욱 뜻 깊다.

“가족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한 정든 학교와 제자 동료들을 보지 못함이 섭섭하지만 ‘회자정리’라고 후배들에게도 자리를 내어 줄 때가 됨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교단을 떠나는 김 작가는 마흔이 넘은 제자들이 가끔씩 전화를 해 “(학교)엄마 보고 싶다”고 할 때 가슴이 벅차오르는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교단을 떠나는 그는 점점 입지가 좁아지는 순수미술을 걱정하며 “아이들이 미술수업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도록 능동적 수업 연구를 계속해 달라”고 후배 교사들에게 당부했다.

“여러분은 아주 소중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더불어 행복한 수업을 하고 개인 작품 활동의 손도 놓지 않길 바란다”는 김원교 교사, 아니 이제는 작가의 길을 걸어 갈 그의 제2의 인생을 응원해 본다.

아래는 김원교 작가와의 일문일답.

김원교 교사가 나한상의 은은한 미소의 매력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지성배 기자)
김원교 교사가 나한상의 은은한 미소의 매력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지성배 기자)

■ 미술 교사로서 다섯 번째 전시회 ‘작은 위로’를 열었다. 전시회 개최 소감이 어떤가.

저는 전업 작가가 아니라 작품 경향이 바뀔 때마다 개인전을 하지는 못합니다. 이번 전시는 30년 교직 생활의 아름다운 마무리 겸 새로운 출발의 의미로 준비하여 감회가 남다릅니다.

교직을 마무리하면서 제자들에게도 선생님이 무언가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로 인해 그들에게도 나도 열심히 하면 이다음에 ‘선생님처럼 될 수 있겠구나’하는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힘들고 지친 마음에 위로를 주고 싶었어요.

■ 8점의 창령사 터 나한상들을 작품으로 승화했다. 나한상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나한상을 작품으로 선보인 이유가 있다면.

3년 전 춘천으로 아이들과 소풍을 갔을 때 춘천 박물관에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영월 창령사터 오백 나한상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순간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고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설치 작가와 협업하여 오백 나한 전시를 하게 됐습니다. 저는 좋은 전시는 3, 4번 이상을 찾아가서 관람을 합니다. 볼 때마다 지난번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작품을 보다 보니 꼭 제 작품으로 그리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한은 누구나 깨달음을 얻으면 평범한 사람들도 나한 즉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나한은 불상처럼 거룩한 모습이 아니고 우리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평범하고 친근한 이웃의 모습이라 더 마음이 끌리고 위안을 받아 작품의 주제로 그리게 되었습니다. 

■ 매년 전시회를 열다 2004년 잠시 붓을 놓은 적이 있다.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붓을 들게 된 계기가 있다면.

2004년 3회 개인전 이후 스스로가 부족한 부분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저를 오랫동안 지켜보시던 동양화단의 대가이신 소산 박대성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경주로 10년간 공부를 다녔습니다. 

그 동안 해왔던 모든 단체전과 전시를 모두 그만 두고 공부에만 집중했습니다. 2주마다 금요일 퇴근 후 경주 남산 스승님의 작업실로 가서 동양화의 기본이 되는 서예, 붓글씨를 6년간 공부하고 붓의 필에 힘을 연마 한 후 개인전 준비를 서서히 해왔습니다.

1년에도 수시로 강산이 변하는 세상인데,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옛말이 나는 좋았고 나의 걸음과 맞다고 생각하여 충분히 공부하고 작품이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이 들었을 때 전시를 다시 하게 되었지요.

■ 교직 경력 30년을 마무리한다고 밝혔다. 지난 교단에서의 삶을 회상한다면.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정해져 있는 정년이 아니라 스스로가 정한 시점에 퇴직하고자 했습니다. 가족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한 정든 학교와 제자 동료들을 보지 못함이 섭섭하지만 ‘회자정리’라고 후배들에게도 자리를 내어 주려 했습니다. 

교직 첫해 만나 담임을 했던 제자들이 첫정이라 제일 기억에 남고 사회 곳곳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하고 있어서 자랑스럽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결혼도 하지 않은 담임인데 나는 학교 엄마라고 했고, 아직도 마흔이 넘은 제자 아이들이 가끔씩 “엄마”라며 보고 싶다고 전화를 해 오는 것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이럴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 교단을 떠난 후의 계획은.

체력이 많이 저하되어 건강을 살피며 자유롭게 여행도 다니려 합니다. 사람들에게 편하게 다가 갈 수 있는 그림 작품 작업을 여유를 갖고 하고 싶습니다.

■ 한국 미술 교육 및 교육자에게 한 마디 남긴다면.

순수미술의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깊이 있는 미술공부를 하려면 기본기가 충실해야 합니다. 미술은 폭넓게 여러 분야로 확장할 수 있으므로, 교사는 아이들이 미술수업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도록 능동적인 수업 연구가 지속해서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 후배 미술 교사들에게 바람을 전한다면.

미적 감수성을 키워 주는 것은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전공을 하던 마음에 쉼과 여유를 주는 소중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주 소중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더불어 행복한 수업을 하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또 힘은 들지만 방과 후 수업도 열심히 해주길 바랍니다. 아이들이 비싼 학원 수강료를 내지 않고 미술을 배울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줘야 합니다. 내 자식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지도해 주세요. 교사의 보람은 제자가 잘 되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