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교과서 국정화 역전(歷戰)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일부 보수 신문에서조차 '사실의 문제’가 '사관의 문제’로 비화되지 않기는 바란다는 논조의 글을 실어 사태의 본질이 흐려질까 걱정이다. 국정화는 그 본질이 자질구레한 사실이나 사건의 나열이 아닌 사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단어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조선’이고 하나는 '코리아’다. 조선에 방점이 찍힐 경우 민족이 최고 가치가 된다. 조선시대에서부터 이어져 온 지속되는 역사로 이 경우 최상의 덕목은 통일이 된다. 코리아로 정체성을 설명할 경우 조선시대, 일제시대와는 확연하게 단절되는 나라가 된다.

대한민국은 1948년에 태어난 새로운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 새로운 나라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기반으로 세워졌다. 조선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다. 이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게 되면 많은 부분이 달라진다.

그러나 '조선’으로 설명하면 미래의 역사는 북한을 정통성이 있는 나라로 해석할 것이다. 남한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졸지에 일시적으로 존재했던 '곁가지’가 된다. 세계사적으로 보아 '동맹’은 나라의 정체성을 정의하는데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그리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토대로 운영되는 국가인 것이다.

둘째는 현실의 해석이다. 주자학과 명분론은 여전히 우리사회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주자학의 세계는 wright와 wrong으로 나눠지는 흑백 세상이다. 이 경우 5.16 혁명은 wrong이다. 쿠데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박정희의 설 자리는 없어진다. 명분론의 세계관은 전근대적 세계관이다.

반대로 근대적 세계관은 good과 bad로 가치를 판단한다. 내게 좋았으면 그게 좋은 것이고 옳은 것이다. 실용주의적, 공리주의적 관점이다. 박정희의 5.16은 한반도에 제대로 된 철기시대를 열었고 중공업의 나라를 탄생시켰다. 근대적 세계관인 good과 bad로 보면 5.16은 좋은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역시 역사 서술의 많은 부분이 달라진다.

셋째는 역사 교과서와 역사 연구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는 사실이다. 공동체를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본 경험이 우리에게는 없다. 하여 그 지키는 과정과 지킨 후의 기쁨을 알지 못한다. 공동체가 스스로를 수호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 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서구 유럽의 나라들은 중세를 관통하면서 수없이 피비린내 나는 혈전을 치렀다. 프랑스 국가의 가사를 보면 '들판의 소리가 들리는가. 저 흉폭한 적군들이 고래고래 고함치는 것이. 그들이 우리의 코앞까지 온다. 우리의 아들들과 우리의 아내들의 목을 베기 위해. 무장하라, 시민 동지들이여 대열을 갖추라. 행군하라, 행군하라. (저들의) 더러운 피가 우리의 밭고랑을 적시도록’ 같은 끔찍한 가사가 태연하게 나온다. 이것이 역사 교과서의 본질이다. 부끄러운 역사를 가르치고 애국심을 기대할 수는 없다. 역사 교과서는 선전과 선동과 철저한 공동체 이기주의로 만들어져야 한다. 역사 연구는 그 이후의 일이다.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