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대리기사: 가슴 속 불덩어리들2

밤11시40분. 강남 도산사거리

‘완’은 서판교동에서 20여분을 지체하다 콜을 잡고 강동구 길동사거리로 들어왔다. 그러나 길동사거리에서 콜을 잡기가 힘들겠다는 판단이 서자, 사거리 근처에 있는 한국관나이트 앞에서 대리기사들을 모아 곧바로 강남구 도산사거리로 나왔다. 대리기사들이 사거리 길목마다 진을 치고 있었다. 이곳은 늦은 시간에도 다른 곳에 비해 콜이 많이 뜨고 요금도 괜찮은 편이어서 외부에 나간 대리기사들이 택시나 대리기사 전용셔틀버스를 이용해 들어오는 곳이기도 했다.

도착 10여분쯤이 지나자 ‘완’의 로징 프로그램에 김포 장기동이 올라왔다. 3만5천원이었다. ‘완’은 즉시 잡았다. ‘장기동’ 말은 들어봤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그는 손님과 통화 후 바로 장기동으로 이동했다. 도착해 보니 아파트 단지 건물 몇 개만 보일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삭막한 느낌이었다. 어디가 어딘지를 알 수가 없었다. 공간 감각이 거의 제로였다.

“아! 이거 잘못 들어왔구나.”

순간적인 느낌이 ‘완’의 몸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괜히 들어왔구나 하는 마음에 후회스런 생각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김포 지역에는 고촌이나 사우동에 두어 번 온 것 빼고는 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김포는 매우 낯설은 지역이었다. 때마침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오는 택시가 있었다. ‘완’은 이곳을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에서 무조건 택시를 잡아탔다.

“기사님 이쪽에 대리운전 해서 왔는데, 어디가 어딘 줄 모르겠네요. 일단 여기서 가장 가까운 번화가로 좀 가주시겠습니까.”

“네. 그럼 이마트로 가시죠. 아이고 그런데 이런데를 뭐하러 들어왔어요. 들어오면 나가기도 힘든 동네인데.”

“아 그런가요.”

“그럼요. 대리 한지 얼마 안됐죠? 대리 시작한지 얼마 안된 사람들이 뭣 모르고 이런데 들어 온 분들 꽤 있어요.”

택시기사는 ‘완’을 김포 이마트로 데려다 주었다. 그곳 역시 시간 때가 새벽인 만큼 모든 것이 조용했다. 운이 좋았던걸까? 내리자 마자 콜이 바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김포 하성면사무소. 2만5천원.

‘완’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일단 콜을 잡고 봤다. 어차피 이곳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주저앉자니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대리운전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터라,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갈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어딘지를 아직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완’은 시간이 시간인 만큼 이런 곳에서는 콜이 올라올 가능성이 희박했으므로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완’은 그저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손님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게 어찌된 일인지 손님이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다.

“제발 좀 받아라.”

이러다간 여기서 꼼짝없이 아침까지 묶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완’의 마음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완’은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댔다. 여러 차례 시도 끝에 통화가 연결됐다.

“여...보.....세~~....요~....”

술에 만취한 남자의 혀꼬부라진 소리가 휴대폰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 진상일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완’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서울 이었다면 당장에 전화를 끊었을 법도 하지만 지금 이곳은 모든 것이 잠잠한 횡한 시골이었다. 몇 개 안되는 가로등 불빛만 시골 상가거리를 밝히고 있을 뿐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네, 사장님 대리기사입니다. 전화 연결이 잘 안되네요. 계시는 곳 위치가 어떻게 되십니까?”

“아~~....자....아엄이.....드.....러......셔어.........”

그는 술이 취하기도 했지만, 잠결에 일어나 전화를 받는 상황때문이어서인지 더욱 정신이 혼미한 상태인 듯했다.

“아~네. 위치가 어떻게 되세요?”

통화를 하는 ‘완’의 마음이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치를 파악하는 대화가 여러차례 오가고 있던 중 힘겹게 손님의 위치가 확인되었다.

“사장님 바로 근처이신 것 같은데 비상등 좀 켜 주세요.”

“아~~.....네에에에.........”

‘완’은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손님의 차량은 ‘완’의 바로 맞은편 30여 미터 거리에 있었다. 누룩누룩한 먼지를 뒤집어 쓴 파란색 1톤 포터 차량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완’은 숨이 턱 막히고 말았다.

차량 내부가 온갖 잡동사니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바닥에는 음료수 캔과 과자 비닐 봉지가 함께 뒤섞여 굴러다니고 시커먼 때가 여기저기 눌어 있었다. 좌석 뒤편의 좁은 공간에는 온갖 공구들이 서로 뒤엉켜 산만한 느낌이었다. 문 열리는 소리를 듣던 손님이 동공이 풀린 히멀건 눈으로 ‘완’을 바라봤다. 정신이 조금 돌아와 있는 듯 보였다.

“스...틱....인데 괜찮......하겄소?”

차주가 혀꼬부라지는 소리를 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인데 더풀더풀한 머리에 검고 거친 피부의 얼굴에는 수염이 덮수룩하게 턱 선과 코밑을 덮고 있었다.

“아, 네에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스틱은 자주 바꾸어야 하기 때문에 대리기사들에게는 오토보다는 기피되는 대상이었으며, 차주가 어떻게 길들여 놓는가에 따라 작동 시키는 것이 편하거나 불편하기도 했다.

차량에 올라탄 '완'이 안전벨트를 매기 위해 손을 가져갔다. 시커먼 때가 낀 벨트에서 축축하고 끈적한 느낌이 ‘완’의 손에 전달 됐다. 운전대도 마찬가지였다.

‘완’은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 시켰다. 다른 차량에 비해 노후 된데다 스틱이 굉장히 뻑뻑했다. 빨리 감을 잡고 스틱에 적응해야만 했다. 운전을 하는데 있어 모든 것이 최악의 조건인 것처럼 느껴졌다.

술에 만취한 손님, 어딘지 알 수 없는 목적지, 노후된 차량, 스틱, 차량 내부의 불결한 환경. 모든 것이 불편한 사실이었다.

“이거 애좀 먹겠구만”

‘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완’이 차량을 몰아가며 기어를 변속하기 시작했다. 2차선 국도에 커브가 많고 길이 좋지 않았다. 기어 변속을 자주 할 수 밖에 없었다. 기어 변속에 적응이 덜 된 관계로 차가 몇 차례 덜컹거렸다. 차주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한마디 뱉었다.

“으~메 좀 서투요~. 스틱 안해봤소?”

“아니요. 할 줄 아는데 좀 뻑뻑하네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금방 적응 할 겁니다.”

“대리운전 한 지 얼마나 됐소.”

“예. 4개월 됐습니다.”

“얼마 안됐소이~. 앞으로 많~이 해야겄소. 대리운전 한 사람들 보믄 사연들이 많습디다만, 우리 기사 양반은 가만히 본께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닌 것 같은디 무담시 이런 일을 하시요?”

“먹고사는 일에 귀천이 따로 있나요. 다 저마다 벌어먹고 사는 방법이 다른 것 뿐이죠.”

“아니 그라긴 그래도 꼭 그것이 맞는 것은 아니잖소. 예외도 있다~ 이말이요.”

‘완’이 차량에 어느 정도 적응하면서부터 트럭이 매끄럽게 나가기 시작했다.

차주는 자신이 전라도에서 올라 온지 20년이 넘었다면서 한 많은 인생사를 주저리주저리 털어놓기 시작했다. 처음 느낌에는 상당히 골치 아프게 만들 손님처럼 보였는데, 가는 내내 얘기를 나눠보니 오히려 인정 많은 사람이었다. 한참을 지나가는데 철책선 같은 것이 나오더니 그 너머로 초소 같은 것이 보였다.

“사장님 여기가 어딘가요?”

“아, 해병대 철책선 아니요오~.”

“예!”

‘완’은 순간 느낌이 이상했다. 왠지 더 외진 곳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음마, 여기 모르요오~?”

“네. 여기는 처음 와본데라서....”

“어써 오셨소?”

“마포에서 왔습니다.”

“그라믄 여기 기사가 아니요?”

“네.”

“허~ 참. 아 이쪽으로 가믄 더 구석으로 간디 어떻게 나갈라고 그라요.”

“나가는 방법이 없나요?”

“아니 이 시간에 차도 없고, 우리 동네는 택시 같은 것도 잘 안다녀서 낼 아침에나 나갈 수 있을텐디. 하성면사무소에서도 더 들어가야 되는디.”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안되겄소, 좀 더 가다가 내가 세우라고 하믄 세우시오.”

“예.”

차주가 다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느 새 동네 하나를 지나치고 있었다.

“저 앞에 택시 보이지라.”

“네.”

“저 택시 지나쳐서 한 이백미터 더 가가꼬 그 앞에서 세우시오. 여기서 가끔 음주단속 하는디 여기 지나믄 괜찮한께, 나 저기다 내려주고 여기 택시 두 대 있는거 보이지라.”

“네.”

“택시한테 가서 마송사거리로 가자고 하시오. 택시비 한 6천원돈 나올 것이요.”

“마송사거리요?”

“예. 여기서는 그리 가는 것이 제일 좋으요. 거기 가믄 그래도 여기서 제일 번화간께 거그 가서 어떻게 해보시오. 운 좋으면 콜도 잡을 수 있겄소.”

그는 ‘완’에게 요금 외에 택시비 하라며 별도로 만원을 더 챙겨 주었다.

‘완’은 그의 말대로 택시를 이용해 마송사거리로 나왔다. 시골이었지만 제법 번화가 분위기가 풍겼다. 영업을 하는 가게들이 제법 눈에 들어왔다. ‘완’은 그곳에서 번화가를 구석구석 걸어서 확인하고 다녔다. 대리기사 두 세명이 보였다. 그들도 아마 밖으로 나가기 위해 간절한 마음인 것 같았다. 새벽에 부는 가을바람은 차가웠다. 새벽 3시가 조금 넘었다. 콜은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완’이 대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늘어 선 상가를 걷고 있는데 술에 취한 20대 중반 가량의 남녀가 보였다. 그들에게서 대리 불러서 가자는 얘기가 들려왔다. ‘완’은 바로 그들에게 접근했다.

“대리 필요하세요?”

그들이 ‘완’을 쳐다봤다.

“네.”

“어디 가시는데요?”

“작전역 얼마예요?”

“얼마에 다니셨는데요?”

“2만원요”

‘완’은 거리감각이 없었다. 작전역까지 거리가 얼마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렇지만 작전역이면 지하철역이 있고, 버스도 탈 수 있다는 생각에 일단 나가야겠다는 생각부터 했다.

“좋습니다. 가시죠.”

‘완’은 처음으로 길빵에 성공했다.

길빵이란 대리기사들 사이에서 콜 센타에서 오더를 받아 운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리기사 스스로가 먹자골목이나 번화가에서 콜을 기다려도 잡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할 경우, 손님을 직접 찾아 나서서 운행을 시도하는 경우였다. 그럴 경우는 콜 센타에 수수료 20~30%를 떼이지 않기 때문에 수입에 도움이 되었다.

대리기사들 사이에는 콜 센타의 수수료가 너무 비싸다는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러나 길빵의 경우 콜 센타를 통해 내려오는 오더가 아니기 때문에 만약 사고가 나면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 문제점도 있었다. 그래서 대리기사들은 자신이 속한 사무실에 연락해서 길빵 했으니 콜 좀 올려달라는 식으로 전화해서 운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경우 대리기사들은 자사 사무실에서 콜을 올려주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수수료를 떼이지 않고 운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차에 올라 네비게이션을 찍어보니 30km가 훌쩍 넘는 거리에 비해 요금이 낮았다. 김포 지리에 어두워 손님이 제시한 가격을 그대로 받은 것이 문제였다. 그러나 여기서 지금 나가지 않으면 내일 아침 해가 활짝 뜨는 것을 보면서 집에 들어가야 할 판이었다.

‘완’은 작전역에 도착해 손님과 헤어진 후 주변에 버스 정류장부터 찾았다. 아직 첫차가 나오기 까지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는 버스가 올 동안 작전역 주변을 배회했다.

“아~ 서울 콜 하나만 떠 준다면 정말 금상첨화겠구만.”

서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더니, 이제 ‘완’은 복귀 콜로 서울로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까지 빌고 있었다. 오늘은 외진 곳을 많이 찾아다닌 하루였다. 잡은 콜마다 도착지가 좋은 콜이 아닌데도 신기하게 연이어 연결된 덕에 한 곳에 고립되지 않고 수입도 괜찮은 편이어서 ‘완’은 기분이 홀가분했다. 정말 운 좋은 하루였다. 다른 때 같았으면 외진 곳으로 잘못 들어가면 그곳에서 빠져나오느라 시간을 허비하거나, 아니면 날이 밝아 첫차를 타고 나와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어느덧 11월 중순에 들어서자 제법 쌀쌀한 바람결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느껴지는 기온 차는 사람들의 옷차림새에 변화를 주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달리 일찍 일을 마치고 5시에 복귀한 ‘완’은 윗 층의 남녀가 새벽부터 다투는 싸움소리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들의 싸움소리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이 어느새 6시 30분, 이번에는 옆방, 건너편 방, 위층 다른 방에서 회사에 출근하려는 사람들의 출근 준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알람소리, 쿵쿵 걷는 소리, 화장실 문 여닫는 소리, 물 내리는 소리 등이 복합적으로 들려대기 시작했다.

7시가 넘어가자 이번에는 밖에서 자가용을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의 자동차 소리, 집 앞 도로로 걸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리, ‘완’과 함께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구두굽을 또각거리며 계단 내려가는 소리가 귀청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잠들다 깨다를 반복하다 8시가 넘어서야 지친 채 잠이 들었다. 한 참을 잠든 것 같았다.

얼마나 잤을까? 시계를 보니 10시가 조금 넘은 상태였다. ‘완’은 더 이상 잠드는 것이 틀렸다고 판단했는지 이내 일어나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자료실 4층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변선배도 여느 때처럼 테이블 반대편에 자리한 컴퓨터 사용공간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었다.

‘완’은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선잠 때문에 몸이 피로함을 느꼈다. 눈이 뻑뻑하고, 정신은 지끈거리는 기분이었다.

30여분쯤 지났을까 변선배가 ‘완’의 책상을 살포시 두드리더니 나직하게 한 마디 했다.

“조매만 더하다 밥 묵으러 가자이~.”

변선배는 다시 신문 진열대로 가더니 경제신문을 비롯해 서너개의 종합일간지를 챙겨들고서 ‘완’의 대각선 건너편 자리에 앉았다.

주변 사람들의 신문과 책 넘기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바스락 거리며 들려왔다.

12시가 넘어서자 변선배가 ‘완’에게 밥 먹자는 신호를 보냈다. ‘완’이 나지막한 음성으로 알았다는 말을 건넸다. 둘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 매점으로 내려가 주문을 끝내고 순서를 기다렸다. 식사가 나올 동안 ‘완’은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오고 변선배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챙겨 자리에 앉았다.

“와! 피곤하나?”

‘완’의 피곤해 하는 기색이 보였던지 변선배가 물었다.

“잠을 좀 설쳤습니다.”

“새벽에 들어왔으면 피곤할낀데 잠을 못잤으믄 저녁에 일할 때 힘들지 않겠나? 너 같이 운전하는 사람들은 잠을 푹 자야 되는긴데.”

피곤한 기색을 보이던 ‘완’의 잠을 설쳤다는 말에 변선배는 염려스럽고, 한편으로는 그런 ‘완’의 모습이 짠해 보였던지 안스런 표정을 지어보였다.

“집에 들어왔는데 바로 위층에서 젊은 남녀가 막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소리가 건물 안으로 쩌렁쩌렁 울려대는데 잠을 잘 수가 있어야죠. 아마 건물에 세 들어 사는 다른 사람들도 제대로 못 잤을 겁니다. 언제부터 다퉜는지, 들어가니까 한 참 싸우고 있더라고요. 싸움이 끝나니까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이 출근준비 하느라 시끄럽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데, 이거 정말 물 내리는 소리, 계단 오르락내리락 하는 구두굽 소리,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사람들 지나가는 소리에, 제대로 잘 수 가 있어야죠. 자야 하는데 잠을 못자니까 그것도 참~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선잠 자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바로 나왔습니다. 오후에 쪽잠이라도 자야할 것 같네요.”

‘완’의 푸념 섞인 한탄조에 변선배가 비시시 웃었다. 그 웃음에는 너 정말 잠도 못자고 고생 좀 했겠구나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음. 그래라. 오후에 잠깐씩 눈 붙이는 게 피로회복에 굉장히 도움이 된다.”

'띵동!!'

주문한 식사가 나왔다는 벨이 울렸다. 오늘의 주문은 떡만두국.

둘은 떡만두국이 담긴 그릇과 식판을 테이블 앞에 놓았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과 떡만두국의 냄새가 식욕을 자극 시켰다.

"자, 얼른 묵자. 마이 무라."

"네. 맛있게 드세요.“

변선배는 말을 끝내자마자 국물 한 수푼을 목구멍에 넘기더니 이내 만두 하나를 입에다 넣었다. 우적우적 씹어대는 그의 강한 턱선과 입 속에서 씹히는 만두 소리가 그의 건강함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변선배의 식욕은 젊은 사람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왕성했고, 음식을 먹는 모습은 단단하면서도 강하게 보였다.

둘은 식사를 마치고 여느 때처럼 한 잔의 커피와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4층 자료열람실로 들어갔다.

바깥과는 달리 푸근한 공기가 흐르는 자료열람실 안에는 책상에 앉아서 개인 업무를 보는 사람들과 자리를 찾아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로 조용하지만 생동감이 있었다.

갑자기 한 쪽에서 조용한 다툼의 소리가 들렸다.

‘인터넷 검색 10분 코너’였다. 그곳은 필요한 정보를 잠깐씩 검색하기 위해 마련된 간소한 자리였다. 3대의 컴퓨터가 비치돼 있는 곳인데 한 줄로 서서 기다렸다가, 빈 자리가 나오면 기다리고 있던 줄의 맨 앞에 있는 사람이 이용하는 식이었다.

“왜 보고 그래요.”

“내가 언제요. 안봤어요.”

조용하던 공간에 순간 물결이 일렁거렸다. 일순간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모아졌다.

“방금 봤잖아요.”

“그쪽이 본지 안본지 어떻게 알아요.”

“아니! 아저씨. 저 쪽에 선 그어진 곳에서 기다리다가 자리가 생기면 와서 하면 되잖아요. 왜 내 바로 뒤에 서서 자꾸 고개를 기웃거리는 거예요.”

문제의 사단은 40대 초반의 남성이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었는데 30대 초반의 한 남성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대기 장소를 벗어나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는 그의 뒤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는 일면도 없는 사람이 자신의 바로 뒤에서 고개를 기웃거리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한 마디를 던진 후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뒤에서 계속 얼쩡거리는 모습이 ‘완’의 눈에 들어왔다.

3분 정도 지났을까 이내 신경이 쓰였던지 40대 초반의 사내가 다시 한 마디 내뱉었다.

“아니! 저쪽에서 줄서서 기다리지 왜 자꾸 뒤에서 힐끔거리냔 말이에요.”

“내가 언제요. 안본다니까요.”

30대 초반의 남성이 양손을 뒷짐 진 채 허공을 바라보며 딴 짓을 피웠다. 빈정거리는 말투와 딴청을 부리는 그의 모습에 화가난 40대 초반의 남성이 급기야 화를 터트리고 말았다.

“아이 씨팔! 왜 보냐고오~.”

그의 화난 목소리가 자료열람실 내의 평온한 공기를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 순간 ‘10분 코너 검색’대로 모아졌다. 당황한 듯 보이던 30대 초반의 남성도 지지 않고 고성으로 맞섰다.

“내가 언제 봤다고 그래!”

‘완’의 옆 테이블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던 변선배는 그 광경을 안경너머로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감정이 격해진 둘은 이제 반말 섞인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40대 초반의 사내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사내를 밖으로 나오라면서 앞장섰다.

“야! 너 나와. 이 개새끼야.”

“뭐야 개새끼! 어따대고 개새끼야. 이 새끼야~,”

“야! 빨리 나와 이 새끼야.”

“그래 가, 가자고. 씨팔색꺄”

문제의 두 사람은 씩씩거리며 자료열람실의 문을 밀치고 복도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 마자 문 너머로 거친 언성이 오가기 시작했다.

“야 이 새끼야, 그렇게 할 일이 없냐~. 왜 남 뒤에서 기웃거리면서 지랄이야. 염탐이라도 하는거냐. 응...응~”

“니가 내가 본지 안본지 어떻게 알어 이 새끼야.~.”

두 사람의 거친 언성이 주거니 받거니 식으로 진행되자, 주변에서 말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 왜들 이러세요. 그만하세요.”

“그래요. 좀 조용히 좀 합시다. 여기가 무슨 도떼기 시장도 아니고 도서관에서 뭐하시는 겁니까?”

“무슨 일이세요? 도서관에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주변 사람들의 만류와 핀잔, 도서관 관리가 1층에서 올라와 두 사람에게 주의를 주면서 상황은 일단락 됐다.

자료열람실 안에 있던 사람들 중 일부는 그들이 보고 있던 자료에 시선이 멈춰 있고, 일부는 언성이 넘어오는 문을 향해 시선이 모아져 있었다. 상황이 정리되자 하나 같이 굳어져 있던 그들의 표정이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미스터 박, 커피 한 잔 하까?”

“네. 그러시죠.”

변선배가 신문을 넘기다 말고 ‘완’을 불렀다.

오후 4시였다. 변선배와 완은 4층 로비로 나갔다. 날씨가 쌀쌀해진 탓에 1층 야외 벤치보다는 4층 로비가 대화를 나누기에 더 좋은 공간이었다. 복도는 절전 차원에서 몇 개의 전구에만 불이 들어와 약간은 어두운 분위기였다.

후르르륵

변선배는 커피를 들이키면서 물끄러미 유리창 너머에 있는 통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스터 박! 니 아까 봤제. 그~ 싸우지 않드나. 전부 다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기라. 그게 전부 다 가슴 속에다가 화산 하나씩을 갖고 다니는기라. 마, 속이 부글부글한데 거기다 누가 한 번 불만 댕기믄 이기 마~악 용암을 분출하는기란 말이다. 어디 가서 풀 데가 없으니끼 꼭꼭 재여 놓았다가 한 순간에 기냥 마 토해내는 기다.

여기 그럴 사람 많다이~. 내도 자네도 그럴 가능성이 있는기라. 그래서 마! 잔소리를 까야 하는기라. 혼자 있으믄 저렇게 되는기란 말이다. 혼자 꿍하니 멍하니 있지 말고 대화를 해야 하는기라. 그래도 저것은 초기 증상이라 아직까지는 정상이다. 시간 좀 지나봐라 저게 쌓이믄 인쟈, 그때는 지가 묻고 지가 대답하는기라. 지가 지하고 웃고 싸우고 그라는기다말이다. 그라다가 마음에 안든 놈 눈에 하나 띄믄 갔다가 막 확 싸질러부는그라. 그때는 막 지 정신이 지 것이 아닌기라. 지 자신도 모르는 누가 조정하는 데로 움직이는기라. 그게 뭐겠노. 그동안 지 가슴 속에 꼭꼭 재여 놓은 것들이란 말이다.”

변선배의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였다. 도서관에는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이 왔었지만 정신적으로 불안정해 보이는 사람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그들은 한 눈에 봐도 정신적으로 불안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대화를 나누던 도중 변선배가 그리스 사태에 관한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변선배는 요즘 유렵 경제위기 문제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아까 신문보니까네 이탈리아 대학교 총장이 지 아들한테 2년 전에 이탈리아를 떠나라고 했다드라. 사회지도층에 속한 사람이 이탈리아가 가능성이 없으니까 지 자슥 한테 나라를 떠나라고 하는거 봐라. 이건말이다 서울대 총장이 지그 아들한테 한국 가능성이 없으니까 빨리 외국으로 떠나라고 말하는기랑 똑같다 아이가. 정치하는 사람들 정말 정치 잘해야 한데이. 지금처럼 개판으로 하믄 우리도 저런 꼴 난다이.”

2011~2012년 겨울 관통하면서 유럽은 경제사정이 악화돼 국가비상사태나 다름없었다.

“그리스 저놈들 봐라. 나라가 저지경이 됐어도 정신 못차리고 있지 않나. 그놈들 정말 폭삭 망해야 한다. 그놈들 1800년대부터 나라 부도를 5번이나 냈다고 안하나. 완전 상습범이다. 정치인들도 국민들도 감각이 없는기라. 아르헨티나라면 괜찮아. 땅 너룹제, 자원 많제, 먹을 것 많제, 소 많아서 지들끼리 교배해서 새끼 낳아대제. 배고프믄 소 잡아 묵으믄 되거든. 그란데 그리스는 뭐꼬, 우리나라도 먹을 것 없기는 마찬가지다. 부지런히 벌어들여야 한다. 그란데도 복지 노래를 불러쌌는거 봐라이. 그라다 잘몬하믄 나라 거덜난다이. 묵을 것도 없는 나라에서 마냥 가 퍼다주믄 쌀독 비는거 시간문젠기라.”

이런 생각은 변선배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었다. 노년 층 사이에는 이런 식의 인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고연령층 어르신들이 나누는 대화나 대리운전을 하면서 만난 나이 지긋한 고령층의 사람들은 복지에 대해서 일종의 쓸데없는 낭비라는 시각을 갖고 있는 경향이 있었다. 산업화시대에 허리띠를 졸라 매며 일했던 그들의 입장에서 복지라는 개념은, 옛날에 비하면 훨씬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인데 뭘 더 퍼주냐는 식이었다.

그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보수층이 남발하는 포퓰리즘이라는 단어와 정치권에서 과거에 대북정책을 두고서 퍼주기라는 논쟁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쓰였던 용어의 이미지가 복지라는 분야에 그대로 오버랩 되면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복지는 서민들의 삶의 질에 대한 고민보다는 안보문제와 관련한 좌우를 연상시키는 이미지와 결합되어 노령층에게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방향으로 흐르는 분위기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튼 ‘퍼준다’는 용어가 고령층에게 상당히 거부감 있게 다가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퍼준다’는 용어 자체가 고령층 사이에서는 부정적 의미로 광범위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변선배의 경우도 그의 말에 따르면, 젊은 시절 사업을 하면서 크게 성공도 했지만,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해서인지 노력이라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냉정한 면이 있었다. 다시 말해 그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주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면서 자기 노력으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얘기였던 것이다.

(다음 9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