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의 고장 정선서 성찰과 치유의 숲으로 두번째 인생 도전
로미와 지안 부부 이야기, 아름다운 자연에 담은 로미지안 가든

앞만 바라보며 지독하게 살아왔다는 손진익 회장이 그의 인생 마지막을 로미지안 가든에 쏟고 있다.(사진=지성배 기자)

[에듀인뉴스=서혜정 기자] 2020년. 어떤 계획을 세우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미래가 두렵고, 현재가 불안한 많은 이들은 자신의 길을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한다. 새해 토정비결이나 올해의 운세를 한 번이라도 보게되는 심리는 이런 것이 아닐까.

이렇게 인간이 흔들리는 이유를 자신에 대해 제대로 성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스스로,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비우는 시간을 갖지 않는 삶을 살아 온 결과라는 것이다.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성찰과 치유의 숲 ‘로미지안가든' 대표 손진익 회장. 그의 첫 마디는 "모든 순간이 인생이다. 스스로 부딪치지 않으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삶의 바닥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존재는 아주 드물지만 네가 좋아하는 일이면 시작해보고 끝까지 가라"였다.

그의 첫 일성(一聲)처럼 손진익 회장은 그렇게 앞만 바라보며 지독하게 살아온 인물이다.  

지난 19일 일요일 오전 10시. 서울에서 정선까지 3시간가량을 달려 도착한 곳은 정선 카페 아리미스. 아침 햇살이 일찍 비치기로 이름난 어도원길에 자리한 스위스 샬레 풍의 넓고 아늑한 쉼터에서 손진익 회장은 진한 에스프레소 같은 인생 스토리를 하나하나 풀어냈다.

손 회장은 50여년간 자신이 창업한 회사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낸 경영자로 지금은 경영 일선에서 손을 떼고 성찰과 명상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는 로미지안가든에 몰입해 있다.

80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건강하고 활기차며, 온화한 인상의 그는 "청년들이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아끼지 말고 위험한 상황에 과감히 내던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패를 생각하지 말고 과감히 도전하고, 목표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지독하게 덤벼들면 언젠가는 길이 보이고 성공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

실제, 그의 삶이 그랬다. 부산에서 태어난 손 회장의 어린시절은 넘침도 부족함도 없었다. 경남중학교를 거쳐 서울 경복고교까지 당시 엘리트의 순탄한 길을 가던 그에게 첫 시련은 원하던 대학 진학의 실패라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손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첫사랑이자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 ‘로미’가 이 때도 곁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첫사랑 로미와 사랑에 빠져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는 말을 넌지시 건네며 쑥스럽게 웃었다. ‘로미’는 손 회장이 연애시절부터 아내를 부르는 애칭이다.

"아, 그래서 이곳 이름에 로미가 들어가는 군요. 그럼 지안은 무슨 의미가 있나요?"라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고교시절 은사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생애의 탑’. 500~600년 수령의 거대한 캐나다산 삼나무로 만들어졌다..(사진=지성배 기자)

‘지안’(智眼)은 경복고 시절 은사였던 최태상 선생님(전 경복고 교장)이 지혜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뜻으로 자신에게 지어 준 호(號)라며 "내가 눈이 작지 않습니까. 작은 눈이지만 똑바로 뜨고 세상을 제대로 보라고 지어 주셨다"며 웃었다.

은사님도 이곳 로미지안에 다녀가셨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엔 존경과 자랑스러움이 자연스레 묻어났다.

다시, 그는 대학에 떨어져 방황하던 당시를 회상했다. 부모님 뜻대로 살아 온 지금까지의 삶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를. 

그렇게 내가 누구인지, 내가 왜 이렇게 무기력한지, 다른 사람들한테 왜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는 성격인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등에 관해 고민하고 자신을 성찰하고 담금질했다.

방황의 시기를 거쳐 손 회장은 당시 인기가 가장 많았다는 화공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 생산 공장에 취업도 했고, 외국인 회사에서 직장생활도 했다. 세상은 정말 넓었다. 그래서 '사고'를 쳤다. 자신만의 길을 가기 위해 창업을 한 것. 

그의 창업 밑천은 직장 일에 몰입하고 지독하게 생활한 경험.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것이 전부였다.

창업은 순탄한지 않았다. 선배의 사무실 한 구석에서 더부살이를 하면서 시작한 사업이었기에 쌀이 떨어지는 당황스러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엘비스트그룹 회장이자 지안바이오 대표 등 굴지의 기업을 일군 성공한 기업가다. 화학 첨가제 관련 분야에서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과 남미 등 수 많은 나라에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손 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IMF 외환위기 등 세계 경제상황을 미리 예측해 위기를 기회로 삼아 기업을 더 견고히 하고 한층 더 성장시켰다. 재계는 그를 도전을 멈추지 않는 역발상 경영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을 법도 하지만 다른 도전, 아니 그의 표현에 의하면 ‘사고’를 쳤다. 손 회장은 너무 일이 잘되면 나태해 진다며 사업을 할 때도 어려운 도전을 꼭 하나씩은 하곤했다고 털어놨다.

이번 '사고'는 강원도 정선의 명산 가리왕산 화봉(550m)의 33만㎡(10만평) 규모 산을 매입한 것.

2011년 어느 여름날, 천식이 심한 아내의 치료를 위해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던 손 회장은 정선의 깨끗한 자연과 특별한 아름다움에 매료돼 이 곳을 덜컥 사버린 것이다.

그런 그에게 ‘로미’는 또 ‘사고’를 쳤다고 핀잔을 줬다고. 하지만 손 회장은 이곳 가리왕산 화봉을 둘러보고 있는데 산이 자기를 꽉 붙잡았다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느냐고, 지금은 로미가 더 좋아한다며 자신이 저지른 ‘사고’가 헛됨이 아니었다고 웃었다.

손 회장이 로미지안가든에 열정을 쏟은 지 어느덧 8년. 로미지안가든은 풀 한포기부터 나무 한 그루, 돌멩이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손 회장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다. 그는 매일 새벽, 이슬 맺힌 산길로 장화를 신고 나와 손수 정원을 가꿨다.

오는 22일이면 그의 땀과 열정이 묻은 로미지안가든이 수 십 가지가 넘는 까다로운 법적 절차를 마치고 인허가를 받는다. 그는 “이곳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위로와 깨달음을 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구석구석 안내를 시작했다.

로미지안 조감도.(사진=지성배 기자)

카페에서 차로 10여분 걸리는 이 길을 그는 매일 40분가량 걸어 출근한다고 했다. 걷고, 산책하고, 건강함을 위해 로미지안가든을 만든 건데 차량으로 출퇴근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가까운 거리도 차로 다니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 드디어 입구인 ‘생애의 탑’에 도착했다. 생애 주기를 뜻하는 500~600년 수령의 거대한 캐나다산 삼나무로 만들어진 세 개의 탑이 반갑게 맞이했다. 세 개의 탑은 탄생(초록), 청춘(빨강), 완생(검정)을 의미한다고.

탑을 바라보며 나의 삶은 어디쯤일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청춘을 너머 완생 어디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생애의 탑’을 지나 도착한 곳은 ‘천공의 아우라’. 손 회장은 이곳이 로미지안의 보물이자 명물인 석회암 군락이라고 설명했다.

높은 산 정상에 석회암 군락이라니...손 회장은 이 석회암들은 1억5000만년 전 지질 활동에 의해서 바다로부터 육지로 융기한 흔적으로 공사 중 발견해 그대로 살렸다고 말했다.

‘천공의 아우라’를 지나 삼합수대(전망대)에 오르니 눈보라와 함께 아름다운 정선의 정취가 한 눈에 들어왔다. 오대천, 동강, 조양강의 세 줄기가 합쳐져 하나로 흐르는 평야를 조망할 수 있는 삼합수대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정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행운을 안겨줬다.

배산임수(背山臨水). 뒤로는 한 폭의 동양화를 담은 병풍처럼 가리왕산 풍광이 가슴에 담겼다. 앞으로는 정선아리랑의 혼을 담은 삼합의 물줄기를 보니 새벽잠을 억지로 깨며 느낀 투덜거림이 깨끗이 사라지는 듯 했다.

삼합수대를 지나 베고니아 스마트팜 체험 공간 베고니아하우스에 도착했다. 그는 “꽃 중의 꽃인 베고니아 중에서도 국내에서 보기 힘든 ‘대형 베고니아’를 직접 재배하고 판매하는 곳”이라고 자랑했다.

베고니아는 '사랑'이라고 말하며 웃는 손진익 회장.(사진=지성배 기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스마트팜으로 운영, 자동온도 조절과 배양시설을 갖춘 이 곳에서는 미래의 농업과 화훼에 대해 배우고, 체험할 수 있다.

붉게 활짝 핀 베고니아는 '언제나 사랑을 주는 꽃'이라 불린다. 지안이 로미에게 주는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가 그렇게 '로미지안'에는 곳곳에 담겨 있었다.

베고니아하우스를 나와 몇 발자국을 옮기자 시야가 확 트이며 로미지안 랜드마크 '가시버시성'이 나타났다. 정선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산세가 한 눈에 들어오는 이 곳 역시 그렇다.

가시버시는 부부를 뜻하는 순우리말. 가시버시성 입구에 손 회장은 LOVE 시비석을 세웠다. 정상에 솟은 아리탑에는 로미지안의 로고가 새겨져 있고, 커다란 은구슬이 박힌 눈 안에 정원이 담겨 있다.

손 회장은 지안 아트홀, 마운틴 하우스 등 눈보라가 날리는 거친 날씨에도 로미지안 곳곳을 자세하고 열정적으로 안내했다. 설명하는 곳마다 그의 땀과 열정이 느껴지는, 모든 곳이 정갈하고 아름다운 곳. 23개의 테마가 있는 장소와 4시간30분 코스 ‘아라한밸리순례길’를 비롯해 ‘나를 너머 나를 찾아가는 순례길’ 등은 보기만 해도 절로 힐링이 되는 듯 했다.

3D 홀로그램영상 등은 물론 로미지안 앱을 통해 호젓한 숲 그늘에서 자연을 벗 삼아 독서를 하거나, 정선의 아름다운 풍경이 바라보이는 언덕에 앉아 스케치하거나, 금강송 산림욕장에서 자연이 만든 음악소리를 들으며 명상에 빠질 수도 있다. 

손 회장은 “로미지안은 화려한 볼거리에 치중하는 수목원이 되기보다, 오직 로미지안 만이 품고 있는 독특한 이야기와 아리랑의 고장 정선이라는 지역 고유의 색을 담은 이야기 정원이 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수차례 정선이 지닌 역사와 매력, 아리랑의 정서, 잠재력을 이끌어내겠다고 강조한 그는 탄광촌에서 강원랜드를 거쳐 로미지안이 정선의 부흥을 이끌 것이라고 자신했다.

무릉도원과 같은 수려한 경치 덕에 '도원’이라고 불리기도 했다는 정선. 손 회장과 함께 한 5시간을 뒤로 하고 도원과도 같은 그 곳 정선을 떠나기는 쉽지 않았다.

"너를 믿고, 인생의 환호를 받게 될 때까지, 네가 좋아하는 일이면, 끝까지 가라"며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듯, 비가 올때까지 꾸진히 매진하는 지독함이 있어야 자신의 능력을 드러낼 수 있다"는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면서, 이 곳에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머물며 진정한 나를 찾아보고 싶다는 유혹이 떠나질 않았기에... 

한 존재가 지독하지 않고서는 / 온전히 너 자신의 능력을 드러낼 수 없다 / 고독은 과정의 선물 / 일그러진 삶의 바닥을 박차고 / 뛰어오르는 존재는 아주 드물지만 / 네가 좋아하는 일이면 시작해보라 / 인생의 환호를 받게 될 때까지 / 최후의 큰 기쁨은 / 그만큼 지독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다 / 이 세상 아무도 이해 못해도 / 너를 믿고 너 자신의 길을 가라 / 그것이 네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하라 / 아리하이 아리하이 아리아리하이(로미지안 가든 주제곡 : 손진익 작사) 

가시버시성과 고독의 언덕.(사진=지성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