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박사/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구원

전 세계 인구만큼이나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한다. 사람은 각자 다른, 자기가 배우고 접한 것들을 토대로 세상을 본다. 내가 보는 세상도 그럴 것이다. 과학의 새로운 이슈들을 그 자체로 보는 것과 상상력 및 다른 분야 이슈들을 가미해 연결 짓기도 즐긴다는 필자는 과학자의 눈으로 보는 인문학, 인문학의 안경을 통해 전달되는 과학의 '크로스오버'를,. 첫 시도는 아닐지 몰라도 흔하게 접하기도 쉽지 않을 그 시선을 <에듀인뉴스> 독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 아비뇽 프티팔레 미술관

[에듀인뉴스] 그리스 신화의 영웅 중 한 명인 아테네의 테세우스. 그 영웅담 중 어쩌면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크레타 미궁에서의 활약이다. 해상무역으로 번성한 크레타 문명의 패권이 아테네로 넘어가는 것을 상징한다고 보는 역사가의 견해도 있지만, 신화적 영웅담에 집중해 본다. 

괴물들과 대치하고 넘어서는 서사는 수많은 다른 영웅에게서도 찾을 수 있지만, 미궁이라는 공간이 그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까닭이다. 

사람들에게 죽을 장소로 여겨지던 미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리적인 공간의 개념을 넘어서 심리적, 정신적인 정의로 재해석되고 재탄생되었다.

미궁을 창조한 솜씨 좋은 건축가는 미궁으로 향하는 연인을 도우려는 여인의 손에 붉은 실타래를 건네고, 주인공은 그 실을 풀면서, 또 되감으면서 미궁을 빠져나온다. 영웅의 미션 완료. 

그 후 미궁은 무너졌는가? 사라졌는가? 사실 그건 중요치 않다. 그 미궁은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는 게 핵심이다. 적어도 들어갔다 나오는 방법을 공유하게 된 사람들에겐.

인간이 만든 미궁도 그러할진대, 전능하신 조물주의 작품인, 혹은 수많은 시간을 거쳐 선택되고 선택되어 지금까지 살아남은 생명체는 어떠한가? 

역사를 통해 보면 수많은 영웅들이 생명체라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미궁을 극복하려 도전해 왔다. ‘100세 시대’라는,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많이 익숙한 그 의미 속에서 특별히 극복하고 싶은, 혹은 극복해야만 하는 미궁은 무엇일까?

왼쪽 미궁을 닮은 인간의 뇌, 오른쪽 치매를 다룬 드라마 '눈이 부시게' 한 장면.(사진=픽사베이, JTBC) 

형상화된 미궁과 묘하게도 닮은 기관이 하나 있다. 현대 과학과 의학이 어쩌면 가장 간절하게 알고 싶어 하고 극복하고 싶은 대상, 그것은 바로 뇌다. 그리고 이 시대에 급속하게 떠오르는 치명적이고도 공포스런 뇌질환은 아마 치매가 아닐까? 

치매(癡呆), 성장기에는 정상적인 지적 수준을 유지하다가 후천적으로 인지기능의 손상 및 인격의 변화가 발생하는 질환. 이전에도 없던 질환은 아니었고, 단순히 노령으로 인한 노환으로 여겨졌었다. 

급격히 이슈가 된 것은 100세 시대가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하면서, 후천적 발생 확률이 그 시간과 비례해 증가하면서, 주위에 그런 사람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하게 되면서, 발달된 기술이 그 원인을 조금씩 규명해 나가면서이다. 

나도 급작스레 발병한 치매환자를 돌보게 된 한 보호자를 알고 있다. 처음 진단 받았을 때 망연자실함을 가까이서 대하면서 누구도 안전지대에 있지는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렇게 치매는 사회적 이슈로 사회복지학 측면에서도 다루고 있는 분야다. 

누군가 언젠가는 뇌라는 미궁 속으로 안내해 줄 붉은 실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인가? 

전 세계적으로 뇌 관련 연구는 활발하다. 2019년 국내 연구진도 치매를 유발하는 뇌 속의 노폐물 배출 경로를 밝혀내어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에 게재하는 등(Meningeal lymphatic vessels at the skull base drain cerebrospinal fluid. Nature. 2019 Aug;572(7767):62-66.) 소기의 성과를 내고 있다. 

모든 질병 관련 연구 논문의 기대 효과는 언제나 그렇듯 적절한 치료제의 개발이다. 그러나 과거 일련의 사건 전개가 보여주듯 장밋빛 낙관은 늘 위험하다. 자연은 생명의 비밀을 그다지 쉽게 열어 보여주지 않는다. 밝혀내고 알려지고 공유하게 된 퍼즐의 조각들을 맞추며 인류는 조금씩 그 비밀의 문에 다가갈 뿐이다.

비누 발명 하나로 인간은 평균 수명을 단숨에 20년 연장시킬 수 있었다. 과연 적절한 치료제가 개발될까 하는 의문은 별개로 치더라도, 인류가 노출된 뇌질환과 치료제 개발 사이의 시간적 갭이란 미궁을 극복하는 방법 또한 테세우스가 지녔던 붉은 실이 아닐까? 

맥락을 잡아라, 정신 줄 놓지 마라, 이런 표현들이 그 붉은 실과 연계되어 이 21세기, 100세를 사는 복잡한 미궁의 시대에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다. 손을 꼼꼼히 씻는 행위 하나만으로도 감염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 바로 그런 일상의 행위가 우리가 이미 소유하고 있는 붉은 실은 아닐까? 

이정은=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석사를 거쳐 같은 대학 생화학 연구실에서 특정 단백질에 관한 연구로 생물학 박사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충북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고 충북대와 방통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복지관에서 세계문화와 역사교실 강좌를 담당하며 어린 시절 꿈이었던 고고학자에 한 걸음 다가갔다. 또 계간 '어린이와 문학' 편집부에서 함께 일하며 인문학에서 과학으로, 다시 인문학으로 넘나들면서 크로스오버적 시각에서 바이오필로피아를 담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