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박사/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구원

‘진화의 최전선’에 선 미니멀리스트들에게

[에듀인뉴스] 전 세계 인구만큼이나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한다. 사람은 각자 다른, 자기가 배우고 접한 것들을 토대로 세상을 본다. 내가 보는 세상도 그럴 것이다. 과학의 새로운 이슈들을 그 자체로 보는 것과 상상력 및 다른 분야 이슈들을 가미해 연결 짓기도 즐긴다는 필자는 과학자의 눈으로 보는 인문학, 인문학의 안경을 통해 전달되는 과학의 '크로스오버'를, 첫 시도는 아닐지 몰라도 흔하게 접하기도 쉽지 않을 그 시선을 <에듀인뉴스> 독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통신사 광고 캡처)

[에듀인뉴스] 핸드폰에 깔린 여러 어플 중에 중고물품을 사고 팔 수 있는 앱이 있다. 필요한 것이 있을 때 들어가 검색어를 치고 물건을 찾는데, 그 곳을 살피다 보면 꽤 자주 볼 수 있는 단어가 ‘미니멀 라이프’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현하려고 내놔요.” 아니면 “미니멀 라이프를 실현하려고 가입했는데 도리어 더 사게 되네요.” 이런 말들이 올라온다. 

약정이 끝나가는 2년이 임박하면 그야말로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성능이 떨어지고 어딘가 고장이 나는, 핸드폰을 만들어내는 시대에 끊임없이 ‘이 기회에 바꾸세요!’라고 강요하는 듯한 여러 광고와 유혹과 (때로는 별 소용없는) 필요성에 초연하기가 힘든데, 이건 마치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때 에너지가 소요되는 것과도 같다. 

그 와중에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부응하듯 '미니멀 라이프'란 말이 수면에 떠올랐다.

우리는 너무 쓸데없는 것에 둘러싸여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을 소유하고 삶을 간소화하여 단순한 가운데 진정 소중한 것을 찾자는 목소리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동조하며 실천하는 가운데 관련 문구를 중고물품 판매 어플에서 발견하는 것은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자연에서 미니멀 라이프를 잘 실천하고 있는 존재, 원핵세포의 단세포 생물이 떠오른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지상 최대의 명제를 가장 단순한 형태로 실현하며 사는 생물이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자신의 존재를 유지시키는 것이고, 그들이 집중하는 것은 끊임없는 세포분열이다. 단순하고 명료하다. 미니멀 라이프란 사전적인 말에 어쩌면 꼭 들어맞는 생의 사이클을 유지한다. 

그에 비하면 고등생물이 선택한 삶은 미니멀이란 단어랑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일단 세포 구조부터 눈에 띄게 복잡하다. 단순히 몸집만 늘리느냐, 아니면 개체를 필요한 것을 생산하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도 있다. 

그 뿐인가, ‘호흡’을 통한 에너지 생성은 -어느 사이엔가 공생관계가 되어 버려 세포 내에 상주하게 된- 미토콘드리아라는 소기관에게 ‘하청’을 맡겨 버리는 등 기능이 세분화 된다.

(사진=픽사베이)

자, 그러면 생명의 중심에 있는 ‘핵’은 무엇을 하는가? 생명의 근원인 정보(DNA)를 저장하며 세포 내의 모든 프로세스들을 컨트롤하는 것이다. 고등생명체 세포의 핵이 대변해주는 삶의 방식은 그러니까 미니멀 라이프보다는 '시스템 라이프'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고도로 발달된 정교한 시스템은 얼핏 미니멀로 보이는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넓게 보면 미니멀 라이프는 시스템 라이프의 일종이란 뜻이다. 시스템의 강점은 취사선택이 빠르다는 점이다. 필요성을 정확히 판단하고 즉각적인 대응이 뒤따른다. 

미니멀 라이프라는 방식의 관건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소유냐 아니냐를 속도감 있게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How many... ?”라는 물음의 대답은 경우의 수가 많지만 “yes or no?”의 대답은 이진법이다. 0 아니면 1. 시스템은 그 중간 어디의 0.5 쯤 되는 응답을 인식하지 않는다. 또 이 물건을 갖고 있을 것인가 아닌가, 저 상품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 대답이 아닌 망설임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이쯤 되면 미니멀 라이프의 목적은 소요되는 에너지의 최소화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선택과 집중으로, 그리고 그 이전에 정확한 판단과 신속한 대응으로. 다시 자연의 세계로 돌아가 보면, 미토콘드리아 내공생의 성공도 진핵 세포가 에너지 사용의 최소화를 치열하게 지향한 결과라 볼 수 있다(The energetics of genome complexity/Nature. 2010 Oct 21;467(7318):929-34.).

그러므로 앞에 쓴 말을 정정한다. 진정한 의미의 미니멀 라이프는 시스템 라이프의 일종일 뿐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 정수 중 정수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느냐고 반문해 본다. 보편적이거나 정교하다고 보진 않지만 나름대로의 시스템은 있다. 그것이 때로 너무 독보적(?)이라 남들이 잘 이해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다. 

그렇지만 미니멀을 목표 삼아 전진하진 않는다. 미니멀이 이상적이라는 생각은 하지만 현실주의자라고나 할까. 무소유라는 말이 유행하던 과거의 어느 때, 무소유에의 욕망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소유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 시스템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며 때론 어느 정도의 에너지 낭비도 허용하자며, 나는 오늘도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물건들의 구매 버튼을 누른다. 그러나 수많은 시행착오를 각오하면서 나아가는 ‘진화의 최전선’에 선 미니멀리스트들에게는 마음으로부터 응원을 보내는 바이다.

이정은&nbsp;
이정은

이정은=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석사를 거쳐 같은 대학 생화학 연구실에서 특정 단백질에 관한 연구로 생물학 박사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충북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고 충북대와 방통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복지관에서 세계문화와 역사교실 강좌를 담당하며 어린 시절 꿈이었던 고고학자에 한 걸음 다가갔다. 또 계간 '어린이와 문학' 편집부에서 함께 일하며 인문학에서 과학으로, 다시 인문학으로 넘나들면서 크로스오버적 시각에서 바이오필로피아를 담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