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학처장협의회의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 대한 입장 발표를 보며

수능 시험장에서 학생을 확인하는 수능 감독 교사.(사진=지성배 기자)
수능 시험장에서 학생을 확인하는 수능 감독 교사.(사진=지성배 기자)

[에듀인뉴스] 지난 2월 15일 전국의 대학입학처장협의회가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 대한 대학의 입장을 발표했다. 발표 내용을 보면서 우리 사회는 학생선발에 어떤 철학을 공유하고 있는지 새삼 묻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 학생선발권을 가진 일부 고교와 대부분 대학들은 어떤 철학을 가지고 학생을 선발하는가. ‘철학’이라는 거창한 용어까지는 필요 없겠다. 무슨 생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가. 오로지 ‘점수’ 높은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우리나라 대학들이 갖고 있는 철학일까. 그것도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따져가면서 말이다. 이것을 철학이라 말할 수는 있을까.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고 일컫는 대학들은 어떤 철학으로 학생을 선발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이른바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하버드, 예일, MIT 등 덩치가 큰 종합대학은 물론이고 윌리엄스, 미들버리, 포모나, 웨슬리 등 이른바 ‘리버럴아트칼리지’라고 일컫는 인문중심교양대학들조차도 이구동성으로 학생 선발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적 가치로  ‘다양성(diversity)’을 말한다. 

(사진=픽사베이)

쉽게 말해 커뮤니티를 얼마나 다양한 구성원들로 만들어 줄 것인가이다. 어느 정도의 다양성을 확보해 줄 때, 학생들의 바람직한 성장에 도움이 되는가. 이 지점이 학생선발에 담겨야 하는 주된 철학이자 방향성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교육공동체의 구성에서 최고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해줄 때, 학생들이 장래에 사회에 나가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과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공동의 선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선발방식이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특성을 가진 구성원들로 교육공동체를 구성해 주는 것이 학생선발에 담겨야 하는 철학이자 대학의 책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 정도는 되어야 학생선발에도 철학이 담겨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대학들이 문을 닫고 있다. 이미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들이 폐교를 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소수점까지 따져가며 ‘성적’과 ‘점수’에 혈안이 되어, 이를 선점하기 위한 선발 경쟁에만 목을 매고 있다. 

모집요강의 평가계획 관련 정보가 추상적이고 불명확하다는 국민들과 교육부의 지적에 대해 대학은 “합격자 평균 내신, 합격사례 등을 공개”하고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수험생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간 학생은 자신의 시험지와 답안지를 고사가 종료된 후에 일일이 확인할 수 있다. 지필고사 성적은 물론이고 수행평가 점수에 대해서 본인이 직접 확인하고 서명해야만 성적 처리에 들어간다. 

물론 성적이의신청도 제도적으로 보장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된다. 12년간 이 과정을 거친 학생이 특정한 전형에 지원했다가 불합격을 했다는 통보 외에 개인의 어떠한 구체적 정보도 제공되지 않을 때, 과연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지도교사가 전형 결과에 승복할 수 있겠는가. 

대학들이 역지사지 할 수 있어야 한다. 입학관련 정보는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대의 흐름과도 부합한다. 너무 많은 정보를 공개하면 사교육에서 이를 활용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식의 우려와 변명은 대학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 

선발과정에서 국민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공공성 강화의 차원에서 “면접 등 평가과정 녹화 및 보존”을 요구하는 입장에 대해서도 대학 측은 “면접 평가과정의 녹화는 비용적, 기술적, 환경적 (여건으로) 실현 어려움”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면접관과 피면접자 모두 녹화 장비를 의식하여 면접 자체에 부담을 가질 수 있어, 자연스러운 면접 분위기 조성 어려움”이라는 입장은 너무도 궁색한 변명이다. 

그렇다면 이미 음악대학, 미술대학, 체육대학 입시에서 지금도 녹화를 통해 영상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예체능계열 대학입시는 면접 부담이 없는가. 자연스러운 면접 분위기 조성이 어려워도 괜찮은가.

이것이 과연 학생선발을 책임지고 있는 입학처장들의 고민이 담긴 답변이라고 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

학생들이 지출하는 전형료 수입만 따져 봐도 성의 없고 터무니없는 답변이다. 비용적, 기술적, 환경적 여건으로 실현이 어렵다면 수험생들이 스스로 면접 장면을 녹음기록으로 남길 수 있도록 허용만 해주면 간단하게 끝나는 일이다.

이젠 우리 사회도 학생선발에 철학이 필요한 시대로 진입했다. 선발에 매몰될 일이 아니다. 누가 더 잘 가르치고 있는지 교육에 나서야 할 때다. 선발을 위해 초중고 교육과정이 흔들려서도 안 된다. 학생선발은 대학이 고민할 일이지 초중고교가 고민하거나 수고를 대신할 일이 아니다. 

경쟁은 반드시 서열을 만든다. 서열은 다시 배제와 차별과 소외를 정당화한다. 이렇게 배제와 차별과 소외를 먹고 자라는 경쟁과 서열은 결국에 가서 혐오를 부추기고 당연시한다. 

우리 사회의 혐오는 경쟁과 서열화로 인한 배제와 차별과 소외에서 발생했다. 그래서 경쟁을 야만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 사회는 모두가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경원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소장/ 하나고 교사
전경원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소장/ 하나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