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박사/ 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구원

1918 인플루엔자 대유행(일명 스페인독감) 때 병원 응급실의 모습이다. 스페인독감은 5000만~1억 명의 희생자를 낳은 최악의 감염병이다. 최근 국내 연구팀이 이 바이러스의 강한 독성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처음 밝혔다. 사진제공 위키미디어
1918 인플루엔자 대유행(일명 스페인독감) 때 병원 응급실의 모습이다. 스페인독감은 5000만~1억명의 희생자를 낳은 최악의 감염병이다. 최근 국내 연구팀이 이 바이러스의 강한 독성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처음 밝혔다.(사진=위키미디어)

[에듀인뉴스] 사라예보는 유럽 발칸 반도의 1990년대에 새롭게 독립한 나라 중 하나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다. 그 나라가 위치한 발칸 반도는 지정학적인 이유로 참으로 파란만장한 역사를 이어왔다. 

그러나 유럽의 한 도시에서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게 된 이유는 세계 제1차 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던 1914년의 사라예보 사건이라 볼 수 있겠다.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암살당함으로 시작된 전쟁은 1918년에 끝이 나는데, 유럽의 내로라하는 강대국들 외에 일본과 미국이 참전했다.

베르사유에서 패전국으로서 평화협정에 서명했던 독일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세계대전의 원흉이 된다고 역사는 알려주고 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국가 수뇌부가 받아들였던 패전을 일반인들은 인정하지 못했던 측면도 있다고 한다. 

오히려 일반인들은 상당수 자기들이 이기고 있다고 믿고 있을 정도의 정세였고, 독일 영토 한가운데 원자폭탄이 떨어진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항복을 해야 했을까?

이유는 전염병이다. 오늘날 ‘스페인 독감’이라고 알려진 전염병이 전쟁 말기에 유행했다. 중세 시대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과 더불어 인류 역사에 최악의 전염병으로 기록된다. 전쟁의 희생자는 주로 젊은이들이겠지만 전염병에 취약한 층은 노년층과 어린이들이다. 

군대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병이 유행하기 시작하면 막아내기가 그리 용이한 곳이 아니다. 더구나 예방이란 개념이 아직 생소하던 20세기의 초가 아니겠는가. 미국 일리노이 시카고에서 최초의 감염보고가 있었고 전 세계적으로 5000만에서 1억명으로 추산되는 사망자가 나왔다. 이렇게 인류의 생존 자체가 위기에 놓였으니 그 와중에 전쟁을 계속하기는 무리였을 것이다.

그런데 최초 발병자가 나온 곳도 미국이건만, 왜 그 무시무시한 이름은 스페인 독감인가?

얼핏 스페인에서 가장 유행했고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그 이유가 아니다. 전쟁 중이었던 국가들에서는 전시 보도 검열이 이루어져 제대로 보도가 되지 않았고, 참전국이 아니었던 스페인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그 사태에 대해 다루었기 때문이다. 

100년 남짓이 지나 또 하나의 전염병이 지구촌을 습격하고 있다. COVID-19, 초기에 우한폐렴이라고도 불렸고 흔히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라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혼신의 초기대응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고 믿었는데, 31번 환자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감염자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옛말에 열 사람이 한 도둑을 못 잡는다고 했다. 작정하고 퍼뜨리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을, 혹은 단체를 사전에 어떻게 알아내고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작가는 말한다. “악은 간단하다. 어떤 나쁜 일을 하고 싶었는데 할 수 있어서 한 것뿐이다.”(『정희진처럼 읽기』 중에서) 

이정헌 화백의 응원작. #질병관리본부
이정헌 화백의 응원작. #질병관리본부

늘어나는 숫자는 불안하다. 나도 그 숫자에 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엄습한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보자.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확진자의 수는 그만큼 엄청난 검진을 하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는 뜻이다. 최대한의 대응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검진을 아예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감염자의 수를 특정할 수 있을 것인가? 그냥 0이라는 숫자가 나올 수도 있다. 혹은 검진 비용이 엄청나게 비싸다면? 증상을 느껴도 검진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 그럴 경우에도 확진자의 수는 그다지 늘어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발표되는 0이라는, 혹은 최소한의 작은 숫자는 당신에게 평안함을 줄 수 있을까? 특정되지 않는 상태에서 격리고 치료고, 어떻게 더 이상 방법을 강구하며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토인비는 “인류의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할 때 발생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전염병은 전쟁을 멈추게 했다. 스페인 독감이란 이름은 그 사태를 가장 정직하게 대한 나라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 심각한 때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쟁의 도구로 삼는 이들이 있는가? 늘어나는 확진자의 숫자만을 강조하며 남의 불안으로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누군가가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이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한 인류의 재앙이 아닐까?

나날이 초췌해지는 질병관리본부장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응원하면서 나는 이 글을 쓴다. 훗날 어쩌면 COVID-19는 2020년 우리가 극복해낸 바이러스로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역사가 발전한다는 것을 믿는다.

※이정은의 크로스오버 3월부터는 격주 연재합니다.

이정은 
이정은

이정은=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석사를 거쳐 같은 대학 생화학 연구실에서 특정 단백질에 관한 연구로 생물학 박사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충북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고 충북대와 방통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복지관에서 세계문화와 역사교실 강좌를 담당하며 어린 시절 꿈이었던 고고학자에 한 걸음 다가갔다. 또 계간 '어린이와 문학' 편집부에서 함께 일하며 인문학에서 과학으로, 다시 인문학으로 넘나들면서 크로스오버적 시각에서 바이오필로피아를 담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