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선생님과 학생들은 교실과 교실 밖에서 하루하루 추억을 쌓아가며 1년을 보내게 된다. 이 추억을 소중히 오래 간직하기 위해 교단일기를 기록하는 교사가 늘고 있다. <에듀인뉴스>는 동티모르로 교육 봉사를 떠난 김인규 베코라 기술고등학교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교단 일기를 시작한다. 천해의 자연 속에서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미지의 땅 동티모르에서 만난 아이들과 함께 하는 학교 생활을 들여다 보자.

[에듀인뉴스] 크리스토레이는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다. 파랑 하늘 아래에 하얀 모래 백사장이 드넓게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해변이다. 오늘은 학생들과 함께 크리스토레이에 쓰레기를 주우러 가는 날이다.

크리스토레이를 가기 위해서는 동티모르의 버스 미끄로렛을 타야 한다. 크리스토레이까지 미끄로렛을 타고 가는 풍경은 매우 아름답다. 해안가를 끼고 달리는 미르로렛을 타고 가며 동티모르의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미끄로렛을 타면 티모르 사람들의 땀과 살을 부대끼게 된다. 때론 모르는 사람을 자기 무릎에 앉게 하기도 한다.(사진=김인규 교사)
미끄로렛을 타면 티모르 사람들의 땀과 살을 부대끼게 된다. 때론 모르는 사람을 자기 무릎에 앉게 하기도 한다.(사진=김인규 교사)

미끄로렛은 차 안이 워낙 좁아, 사람들과 살갗이 닿을 정도로 부딪혀 앉아야 한다. 미끄로렛에서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항상 문은 열어둔 상태로 달린다. 열어둔 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닷바람에 실려 미끌로렛은 두리둥실 크리스토레이로 날아간다.

바닷가까지 가기 위해서는 언덕길을 올라가야 한다. 이날 기온은 30도가 넘고 우기라 습하다. 작열하는 태양 볕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아이들이 더운 날씨에 올라가기 힘든지, 친구 등에 업혀 온다. 쓰레기 줍기 전에, 벌써 온몸에는 땀이 줄줄 난다. 간신히 바닷가 근처에 도착했다. 하늘은 파랗고, 하얀 구름이 뭉게 뭉게 떠 있다. 평화로운 바닷가 풍경이다.

멀리서 아름답게 보였던 바닷가도 가까이서 보니 한숨부터 나온다. 하얀 모래 위에 사람들이 버린 페트병, 플라스틱 그리고 생활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하천수를 따라서 바다로 흘러가고, 바다를 떠다니는 쓰레기들이 바닷가로 다시 들어 온다. 바닷가에는 신발,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모래사장 위로 널려 있다.

동티모르의 주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쓰레기이다. 동티모르는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섬나라이지만,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하다. 쓰레기를 제대로 분리수거 않지 않고, 사람들도 쓰레기를 아무 생각 없이 버려 길거리, 바닷가에는 쓰레기가 넘쳐난다.

동티모르가 천혜의 자연을 간직한 깨끗한 곳이라는 착각이 확 깨지는 순간이다.

파란 하늘 아래에서 봉투를 들고 쓰레기를 아이들이 쓰레기를 줍고 있다. 아이들의 순박한 웃음이 하얀 백사장과 잘 어울린다.(사진=김인규 교사)
파란 하늘 아래에서 봉투를 들고 쓰레기를 아이들이 쓰레기를 줍고 있다. 아이들의 순박한 웃음이 하얀 백사장과 잘 어울린다.(사진=김인규 교사)

“아이들아, 너희가 살 땅 동티모르는 너희 손으로 직접 지켜야 해!”

아이들과 약속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크리스토레이에 쓰레기를 주우러 가자고. 아이들이 살 땅 동티모르는 아이들 손으로 직접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동안 마트에서 하나둘씩 모아두었던 봉지를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얘들아! 봉지에 한가득 쓰레기를 담아서 오렴!”

작열하는 동티모르의 태양 볕 아래에서 우리들은 쓰레기를 하나둘 줍기 시작한다. 워낙 날씨가 덥게 습하니 “덥다”, “힘들다”라는 말이 입에서 나온다.

하지만 아이들은 조용히 봉투에 쓰레기들을 줍기 시작한다. 불평불만 하나 없이, 쓰레기를 줍는 아이들이 얼마나 예쁘던지.

나보다 더 어른스럽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을 믿고 자연정화봉사를 하러 온 학생들이 정말 고맙고 사랑스럽다. 줍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봉투는 쓰레기로 금방 꽉 찬다.

동티모르 아이들은 나무 타는 것을 참 좋아한다.  태양 볕 아래는 너무 덥지만 나무 그늘에 앉아 있으면 얼마나 시원한지 모른다.(사진=김인규 교사)
동티모르 아이들은 나무 타는 것을 참 좋아한다. 태양 볕 아래는 너무 덥지만 나무 그늘에 앉아 있으면 얼마나 시원한지 모른다.(사진=김인규 교사)

“얘들아! 우리 쓰레기 많이 주웠으니까 조금 쉴까?“

우리는 나무 그늘에 잠시 쉬었다. 그늘에 과자도 먹고 물을 마시며 마른 목을 축였다. 바닷가까지 왔는데, 학생들과 바닷가에 안 들어가기가 좀 아쉽다. 신발을 훌러덩 던져버리고, 아이들과 함께 바다에 발을 담근다. 어찌나 물이 시원하고 맑은지, 투명한 바닷물로 작은 고기들이 움직이는 게 보인다.

아이들과 가깝게 지내기 위해 학생들과 땀을 흘리며 함께 몸을 움직이는 활동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이날 내가 흘린 땀만큼이나 나는 아이들과 가까워졌다.

수업 때는 아이들과 잘하지 못 했던 말들을 이날은 많이 나누었다. 동티모르 여학생들은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나한테 먼저 말을 잘 걸지 못한다. 오늘은 내가 편해졌는지, 이야기를 많이 한다.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들은 사진 편집자, 가수, 그리고 기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 그 순간부터 아이들의 꿈이 이뤄지도록 마음속으로 간절히 응원할 뿐이다.

아이들 손으로 직접 주운 쓰레기가 봉지에 한가득 찼다. 돌아오는 양손은 무거웠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마음은 한결 산뜻하고, 가볍다.

아이들이 쓰레기를 많이 주었음에도 바닷가에는 아직도 쓰레기가 많이 있다. 사실 우리가 쓰레기를 줍는다고 해도, 바닷가는 티도 나지 않는다. 넓은 바닷가에서 우리가 주운 거는 정말 일부분이니까. 그렇지만 쓰레기를 줍는다고 동티모르가 크게 무엇인가 변화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먼 훗날 아이들에게 선생님과의 시간이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릴 적 한국에서 왔었던 외국인 선생님과 크리스토레이에 갔었는데, 참 좋았다고’.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또 하나의 기억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내가 본 동티모르는 하얀 도화지 같은 나라다. 나와 함께한 시간이 하얀 도화지 위에 아이들이 풍경처럼 꽃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