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교육계를 휩쓴 뉴스 1위는 중·고교 역사(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데 이견이 없다. 2013년 교학사 교과서 논란에서 시작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은 올해 들어 역사학계와 교육의 영역을 넘어 섰다. 정치권으로 공이 넘어 간 것이다. 여당은 현행 검정교과서의 좌편향을 문제 삼으며 국정화에 군불을 지폈고, 야당은 친일·독재 미화 의도라며 맞섰다. 9월 10일 시작된 교육부 국정감사를 기점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정치권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했다.

 

 

◇정치권에서 시작된 ‘역사교과서 국정화’ 불씨

"전 세계인은 우리 근현대사에 대해 기적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부러워하는데 우리나라 학생들이 역사를 부정적 사관으로 만들어진 교과서로 배운다는 현실에 가슴이 터지는 비분강개함을 느낀다."

지난 6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을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필요성을 주창했다. 2013년 6월 “교육 현장에서 진실이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이래 시작된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로부터 불과 두 달 후인 8월 5일 교육부는 공청회 없이 장관 권한으로 국정화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새누리당은 10월13일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현수막을 전국에 걸었고, 새정치민주연합과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시민들도 현수막을 걸면서 맞불을 놓기 시작했다.

◇학계부터 학생·시민사회의 찬·반 성명, 시위 이어져

정치권에서 당겨진 불씨는 학계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9월2일 서울대 역사학 관련 교수 34명은 "정치권의 논의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헌법 정신과 합치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황우여 교육부 장관에 전달했다.

같은 날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교사 2255명도 국정화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 9월 8일 수도권 교육감들과 경남·광주·부산·전남·전북·제주 등 교육감 6명이, 다음날 역사정의실천연대도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을 촉구하는 역사·역사교육 연구자 1167명의 선언을 발표했다.

전국 23개 대학 사범대 역사교육과 학생회로 구성된 전국 역사교육과 학생회 연석회의와 한국 최대 학회 중 하나인 한국역사연구회도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이 외에도 각 대학에서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가 구성됐고, 학생들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대자보가 대학가에 연이어 붙었다. 각 대학 교수들과 학생들, 청소년들의 입장표명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집회와 거리행진 등이 진행되기도 했다.

반면, 보수성향의 시민단체들은 현행 역사교과서가 좌편향적이라며 국정화를 촉구했다. 전직 초중등 교장 등 교육계 원로들부터, 대학총장 3명을 비롯한 대학교수 110명으로 구성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도 역사교과서 국정화 지지를 선언했으며, 한국교총도 집행부 설문조사를 통해 국정화 찬성 입장을 밝혔다.

보수학계에서는 잇단 토론회와 좌담회를 통해 국정화의 긍정적 의미를 조명하고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방향을 모색했하고 있으며,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47명의 학자가 국정 교과서 집필 참여를 선언하기도 했다.

출판계에서는 '세계의 역사교육 논쟁'(린다 심콕스·애리 윌셔트), '교과서를 배회하는 마르크스의 유령들'(김철홍·전희경·김진), '한국사 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정경희) 등 역사 교과서나 역사 교육과 관련된 도서가 쏟아졌다.

◇불난 집에 기름까지 부은 '국정화 비밀 태스크포스(TF)' 논란

지난 10월26일 0시께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로 촉발된 '역사교과서 국정화 비밀 태스크포스(TF)' 설치는 의원들과 교육부 직원 간 밤샘 대치 끝에 경찰에 신고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교육부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10월 25일 오후 현장에 경찰 병력 1개 중대 80여명을, 다음날인 26일 오전 8시까지 경찰 병력 2개 중대 160여명을 건물 주변에 배치하고 혜화경찰서장 등이 상황에 대비했다. 야당 의원들은 26일 오후 3시에야 자리를 떠났다.

3일 뒤인 29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역사교과서 발행체제의 개선방안을 백지상태에서 논의하는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을 제안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앞두고 제시한 마지막 협상카드였지만, 확정고시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 확정고시에도 ‘집필진’ 추문, 사퇴 등 '불길' 잡히지 않아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1월 3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전환 고시와 관련한 확정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논란은 계속해서 불거졌다. 당시 집필진으로 밝혀진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가 청와대로부터 회견 참여를 종용받았다고 말해 파문이 인데다, 여기자 성추문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집필진에서 자진사퇴한 것이다.

이달 10일에는 9년간 상업과목을 가르치다 한국사를 가르친 지 9개월밖에 안 된 고교 교사가 집필진에 포함된 사실이 확인돼 다시 한 번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교사 역시 자격 논란이 일자 사퇴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장덕천 변호사가 초등학생인 자신의 아들을 대리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또 민변과 한국사교과서국정화네트워크도 한국사 국정교과서 고시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재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도 지난 24일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국정 역사교과서의 집필진과 편찬심의위원 명단 공개를 거부한 데 대해,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 내년에도, 후년에도 ‘역사전쟁’의 불씨는 여전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과 함께 2015년 하반기 '뜨거운 감자' 였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당장 내달 7일로 예정된 이준식 사회부총리겸 교육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도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입장은 이슈가 될 전망이다. 이후 내년 4월 총선에서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여야 간의 치열한 공방전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교과서 집필이 끝나 2017년에 국정교과서가 교육현장에 배포될 경우에라도 교육현장 뿐 아니라 사회적 갈등은 계속될 것 같다. 그리고 2017년 대선은 ‘교과서 국정화’가 다시 핵심이슈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 보수와 진보가 나뉘어 싸우는 대한민국의 ‘역사전쟁’은 내년에 이어 후년까지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 해법은? "정치적 접근 아닌 이해와 소통으로 풀어야"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찬·반으로 풀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등에서 여론을 찬반논쟁으로 이끌었기에 오히려 호응을 받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지난 8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같이 밝힌 이후 3개월 만에 확정고시로 이어졌다. 학계나 전문가, 그리고 국민들의 여론 수렴과정 없이 진행된 ‘절차’를 문제 삼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정화 태스크포스팀을 비밀리에 운영해 정보 수집과 여론동향을 체크해온 것까지 드러나면서, 여론은 더 나빠졌다. 그럼에도 정부는 비밀주의를 버리지 않고 유지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속사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해를 구하는 과정에 소홀했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국정화를 반대하는 쪽도 마찬가지다. 거리집회, 정치적 투쟁 등 반대를 위한 반대로 흘러가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경기 등 일부 교육청에서는 국정교과서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대안교재 제작까지 나설 방침이다.

강규형 명지대 가록대학원 교수(현대사)는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국정화를 밀고 갈 것이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교과서 정국이 불가피하다면, 앞으로 어떻게 이 난제를 풀어나가야 할까. 교육부 장관을 지낸 이돈희 숙명여대 이사장은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국정화를 고시했다면 좋았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지적하면서 “앞으로라도 정부는 필요한 부분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을 거쳐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10대 교육뉴스 연재를 마치며  에듀인뉴스는 지난 9일 교육전문가와 현장교원으로 구성된 100명의 10대 교육뉴스 선정 자문단을 구성,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된 교육뉴스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등 올 한해 교육계를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본지 선정 교육계 10대 뉴스'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신 독자 여러분과 10대 뉴스 선정에 참여해 주신 전문가, 현장 교원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