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노트] '변화 가장 느리다'는 교육계, 원인 제공자는 누구인가
[취재노트] '변화 가장 느리다'는 교육계, 원인 제공자는 누구인가
  • 지성배 기자
  • 승인 2020.04.02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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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에 걸친 개학 연기와 예측가능성
예측가능성을 이야기하다 보면 유년 시절 친구에게 "눈을 감아봐, 깜깜하지? 그게 너의 미래야"라고 장난치던 기억이 머리를 스친다.(사진=픽사베이)
예측가능성을 이야기하다 보면 유년 시절 친구에게 "눈을 감아봐, 깜깜하지? 그게 너의 미래야"라고 장난치던 기억이 머리를 스친다.(사진=픽사베이)

[에듀인뉴스=지성배 기자] ‘예측가능성’은 신뢰 사회를 만들어가는 특히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중요 요소다.

형법에서는 죄형법정주의로, 민법에서는 사유재산의 보호, 피해 발생 시 책임자의 책임 등으로 보장한다. 사회구성원 자신의 행위가 법의 테두리를 넘었는지 여부를 판단하게 하는 만큼 신뢰 사회를 구현하는 데 필수적 요소다.

그럼에도 코로나19로 인한 교육부 대처는 구성원의 예측가능성을 무시하면, 어떤 혼란이 오는지 단적으로 보여 주었다.

교육부는 지난 2월부터 1달여 기간 동안 4차에 걸쳐 개학 연기를 발표했다. 그러나 교육계 핵심 구성원인 학생·학부모·교사는 방송·지인·SNS를 통해 소식을 접하는 일이 벌어졌다. 어떤 교사는 자신이 “언론사 직원인 줄 알았다”고 할 정도로 불편한 마음을 표현했다.

또 교육부가 예정한 개학일이 다가오면 ‘이번에는 어떤 내용을 발표할지’ 전전긍긍하는 반응과 함께 ‘더는 교육부에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내 일 하겠다’는 해탈 경지에 이른 반응도 보였다.

왜 이렇게 됐을까. 당장 교육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4차 개학 연기 발표 내용을 봐도 그 이유를 확연히 할 수 있다.

교육부는 이날 “온라인 개학을 순차적으로 해나가겠다”며 “그 이후 원격수업 현장 안착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장 안착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온라인 개학을 먼저 발표했다. 전후 사정을 통째로 뒤집어 버린 것이다.

특히 “4월 1일부터 본격적인 원격수업 준비에 들어간다”며 “원격교육 플랫폼을 선정하겠다”는 한 마디는, 교육부가 교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결정타였다.

교육부는 이미 “3월 1~3주는 온라인 학급방 개설을 통해 교육과정을 안내하고 온라인 콘텐츠를 제공하는 등 학습 공백을 방지하라”고 지시했다. 그로 인해 이미 빠른 교사들은 3월 2일부터 개별적으로 온라인 수업 플랫폼을 선택해 학생들과 소통하며 학습 공백을 막아 왔다.

하물며 자발적으로 학교가자.com, 안녕학교.com 등 사이트를 개설, 몇 날 며칠 밤 늦게까지 개인 수업 콘텐츠를 만들어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온라인 개학 및 원격수업 한 마디가 학교 현장 분위기를 바꾸었다. 학생들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위학교별로 온라인 수업 플랫폼을 통일하는 작업에 나섰다.

학교 내 온라인 수업 플랫폼 단일화의 필요성은 이미 지난 3월 8일 <에듀인뉴스>가 스마트교육을 해 온 전문가들을 초청해 진행한 온라인 좌담(관련기사 참조)을 통해 제안되었다. 교사마다 다른 플랫폼을 사용할 경우, 학생들의 혼란과 불편함에 눈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결국 개별적으로 온라인 학급방을 개설해 학생들과 소통을 이어가던 교사들은 단위학교에서 어떤 플랫폼을 선정하냐에 따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이해할 만했다. 하지만 교육부의 31일 발표 “원격교육 플랫폼 선정”, 한 번 더 공식 플랫폼이 바뀔 수 있음을 예측하게 해 준 이 한 문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교육부의 선정에 따라 학교 현장은 다시 원격교육 플랫폼을 바꿔야 한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신뢰 사회를 구현하는 ‘예측가능성’이 ‘비신뢰 사회’를 만드는 데 사용됐다.

많은 사람이 1차 개학 연기 발표때부터 학교 문이 열리는 것은 4월 15일 예정된 21대 총선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걱정했다. 또 법정 수업일수 기준 10% 축소(최장 19일)를 언급하며 4월 20일 개학 가능성을 예측했으나 교육부는 끝까지 비밀에 부쳤다. 순차적 온라인 개학 발표를 예정한 31일, 이미 오전에 보도자료는 엠바고가 깨져 현장에 뿌려졌는데도 말이다.

결국 교육현장에서는 “3월 초부터 온라인 학급방을 만들어 아이들과 소통한 교사는 바보, 교육부 방침을 끝까지 기다린 교사는 일반 교사”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변화가 가장 느리다는 교육계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는 소중한 비판의 한 마디다.

더 황당한 것은 31일 발표에서 “모든 교사의 개인 역량을 믿는다”고 말한 점이다. 

5일, 10일, 10일, 3일 등 4차에 거쳐 총 28일의 개학을 연기한 교육부는 과연 그때마다 교사가 어떤 역량을 어떻게 발휘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줬는지 묻고 싶다.

현장에 예측가능성을 심지 못한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을 수동적으로 만들었고 이는 학교장이, 교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이것이 교사 역량을 믿는 교육부가 만들어 놓은 현장 모습이다.

“교사를 믿는다는 교육부 말이 반가워야 하지만 왠지 교사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려는 것으로 보인다”는 어느 베테랑 교사의 푸념이 떠오른다.

다시는 안 올 절망이자 기회의 3월이 지났다. 코로나19와 같은 사태가 또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교육부는 이번 상황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교육계에 ‘신뢰를 쌓아가는 예측가능성’을 심어주길 바란다.

지성배 에듀인뉴스 기자
지성배 에듀인뉴스 기자

지성배 기자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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