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인데 어떻게 컴퓨터 수업을 해야 하나요?
아리스토텔레스 "놀이는 최선의 교육 방법"...'놀이'와 '공부' 다 잡아볼까

[에듀인뉴스] 선생님과 학생들은 교실과 교실 밖에서 하루하루 추억을 쌓아가며 1년을 보내게 된다. 이 추억을 소중히 오래 간직하기 위해 교단일기를 기록하는 교사가 늘고 있다. <에듀인뉴스>는 동티모르로 교육 봉사를 떠난 김인규 베코라 기술고등학교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교단 일기를 시작한다. 천해의 자연 속에서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미지의 땅 동티모르에서 만난 아이들과 함께 하는 학교 생활을 들여다 보자.

(동영상: 게임을 통해 누가 더 먼저 이진법 숫자를 만드는지 대결을 한다. 학생들이 놀이를 통해 학습에 몰입하고 있다.)

[에듀인뉴스] “Mertri. Ahi mate ona!”(선생님 정전이에요!)

학생들이 정전이 나서 교실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동티모르는 정전이 굉장히 자주 발생한다. 며칠 전에도 딜리(동티모르 수도) 전체에 정전이 나서, 한 시간 가까이 어둠 속에서 지냈다.

컴퓨터 수업은 컴퓨터가 있어야 하는데, 정전이라니 아주 난감하다. 컴퓨터로 수업을 해야 하는 데 컴퓨터를 사용 할 수 없다. 그래서 정전이 있는 날을 대비하여 항상 언플러그 수업을 준비해 둔다.

언플러그(unplugged)는 말 그대로 컴퓨터의 전원 플러그를 뽑고 컴퓨터 과학을 배운다는 말이다. 언플러그 수업이란 컴퓨터 없이 몸을 움직이며 놀이를 통해 컴퓨터 과학 원리를 배우는 활동이다. 즉, 컴퓨터 없이 컴퓨터를 배우는 것이다.

학생들과 함께 배워볼 주제는 컴퓨터과학의 기초가 되는 ‘Binary number’(이진법)에 대해 배워보도록 할 것이다.

동티모르 학생들은 모르는 친구가 있다면 서로 도와주는 분위기이다. 자신이 아는 것을 모르는 친구에게 설명해 준다.(사진=김인규 교사)
동티모르 학생들은 모르는 친구가 있다면 서로 도와주는 분위기이다. 자신이 아는 것을 모르는 친구에게 설명해 준다.(사진=김인규 교사)

첫 번째 활동은 학생들에게 이진법에 대해 이론적인 것을 설명해 준다. 동티모르 학생들은 수학이 부족하다. 동티모르 언어인 테툼어로 설명을 하려니 더욱더 어렵다. 학생들이 이해를 잘하지 못하는 눈치이다.

그래도 다행히 학생 한 명이 이진법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 학생이 다른 친구들에게 자신이 이해한 것을 설명해 준다.

동티모르 학생들은 서로서로 잘 도와준다. 친구들끼리 서로 모르는 부분을 물어보고 가르쳐 준다. 학생들끼리 자신이 이해한 바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고, 상호 작용하고 협력하는 과정에서 '배움'이 일어난다.

학생들이 직접 카드를 가지고 이진법을 만들어 보고 있다. 직접 몸으로 하는 활동을 하니 학생들이 더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한다.(사진=김인호 교사)
학생들이 직접 카드를 가지고 이진법을 만들어 보고 있다. 직접 몸으로 하는 활동을 하니 학생들이 더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한다.(사진=김인호 교사)

두 번째 활동은 직접 binary number를 만들어 본다. 학생들을 앞으로 불러 준비한 카드로 직접 숫자를 만들어 보게 한다.

23을 직접 만들어 보라고 하니, 이진법으로 잘 만든다. 숫자가 있는 카드는 1, 숫자가 없는 카드는 0이다.

따라서 23은 10111이라는 binary number가 된다. 그리고 반드시 중요한 것은 1은 on, 0은 off라는 개념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레띠, 너는 1이 아니고 0을 들어야지!”

“아르메니아, 틀렸어. ㅠㅠ 너 자리는 1을 들어야 한다고!”

친구들끼리 서로 다른 부분을 지적해 주며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다. 수업 시간에 몸으로 하는 활동만큼 신나는 것은 없다. 몸을 움직이면 학생들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성취감이 높다.

짝 학습을 통해 서로 모르는 부분을 메꿔주고 있다.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내용도 막상 설명하려면 잘 안 된다. 서로 설명해 주면 오개념을 고쳐 준다.(사진=김인규 교사)
짝 학습을 통해 서로 모르는 부분을 메꿔주고 있다.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내용도 막상 설명하려면 잘 안 된다. 서로 설명해 주면 오개념을 고쳐 준다.(사진=김인규 교사)

세 번째 활동은 개별 활동이다. 학생들끼리 몇 명씩 모여 짝 활동을 진행한다. 미리 준비한 Binary Number 카드를 2~3명이 한 팀이 된다.

“직접 카드를 가지고 짝과 함께 binary number를 만들어 보도록 하세요.”

학생들은 카드를 가지고 0~31까지 차례대로 binary number를 만든다. 직접 카드를 가지고 숫자를 만들어서 하니 학생들이 매우 흥미 있어 한다.

본인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옆 친구에게 설명하라고 하면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옆 친구에게 서로 아는 부분과 모르는 부분을 설명해 주면서 학습의 ‘정교화’가 이루어진다.

네 번째 활동은 놀이를 즐길 차례이다. 4명씩 한 팀으로 만든다. 그리고 팀별로 대결을 하도록 한다. 게임 규칙을 설명해 준다.

“누가 먼저 0부터 16까지 먼저 만드는지 대결을 해보도록 할게요!”

카드를 가지고 이진법으로 0~16까지 차례대로 만들고, 그리고 다시 16에서 0으로 내려가며 숫자를 만든다.

학생들을 두 팀으로 나눈다. 팀 이름을 정하라고 하니 ‘BTS’ 팀과 ‘EXO’ 팀으로 정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KPOP 가수들이다.

각 팀은 카드를 가지고 연습을 한다. 먼저 숫자를 만들어야 이기는 게임이기 때문에, 한 치의 실수도 허락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이 숫자 만들기 놀이에 푹 빠져있다

“선생님이 타이머로 시간을 측정할 거예요. 자~ 시작!”

두 팀 모두 이기기 위해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이진법 숫자를 만든다. 최종적으로 승리한 팀은 50초가 걸린다.

“선생님, 아쉬워요. ㅠㅠ 더 빨리할 수 있었단 말이에요~다시 하고 싶어요”!

진 팀이 아쉬워서 볼멘소리를 한다.

“얘들아! 놀이는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단다. 우리가 살면서 때론 질 수도 있는 거란다!”

놀이수업에서는 살아가면서 성공도 실패도 할 수 있다는 것을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알아간다.

놀이는 학생들을 수업에 완전히 몰입하게 한다. 이처럼 언플러그 수업은 놀이 형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놀이 학습은 게임을 하듯 공부를 하므로 학생들이 즐겁게 수업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놀이로 배우는 활동은 글자로 배우는 공부와는 다르다. 놀이는 몸으로 깨닫는 교육이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놀이는 최선의 교육 방법’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놀이’와 ‘공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동티모르에서 교육봉사 중인 김인규 교사와 아이들. 김 교사는 섬모양이 악어를 닮아 '악어 섬'이라는 애칭을 지니고 있다는 동티모르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동티모르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순수한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행복감을 느끼는 교사이다. 학생들이 가방도 교과서도 없는 열악한 동티모르 교육환경이지만, 학생들이 '배움' 그 자체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재밌는 수업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다.
동티모르에서 교육봉사 중인 김인규 교사와 아이들. 김 교사는 섬모양이 악어를 닮아 '악어 섬'이라는 애칭을 지니고 있다는 동티모르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동티모르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순수한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행복감을 느끼는 교사이다. 학생들이 가방도 교과서도 없는 열악한 동티모르 교육환경이지만, 학생들이 '배움' 그 자체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재밌는 수업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