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왔다. 이 시기는 아마도 한해 중 구정과 추석을 포함해 사람들의 마음이 가장 많이 들뜨고 소비를 하고 싶어지는 시기가 아닐까 한다. 흥미로운 역사적 시기가 있다. 찰스 디킨스가 스크루지 영감으로 대표되는 자신의 대표작 “크리스마스 캐롤 (1843년)”을 발표한 시기와 영국과 프랑스, 영국령 무굴제국 연합이 청나라와 아편전쟁을 벌였던 시기가 정확히 일치한다.

당시의 영국은 도덕적으로도 여전히 비판받는 1차 아편전쟁(1840년~1843년)을 청나라에게 완승하고, 1857년 인도의 세포이 항쟁마저 진압한 후 동인도회사를 인수, 빅토리아 여왕은 무굴제국 전체를 통치하므로 인도의 여제로 등극 대영제국의 위상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 1차 아편전쟁            ▲ 크리스마스 캐롤과 스크루지 
당시의 영국은 전성기를 누렸던 그 어떤 문명보다 역동적이고 근대적 관점으로도 검증받은 헤게모니의 정점을 찍고 있었다. 찰스 디킨스의 작품들에서 많이 보이는 런던의 모습과 스크루지의 “인품”이 그러하다.

 

비록 1870년을 기점으로 미국의 경제규모가 영국을 근소하게 넘어서기는 했지만, 연방제 국가였던 미국과 당시 2차 산업혁명의 결과물들을 속속들이 자본화, 민영화, 일상화에 성공했던 영국에 비해 미국은 여전히 군사력, 국제적 인지도, 능란한 외교와 정세파악능력을 통해 다른 지역에 끼치는 영향력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시기까지 비교가 되질 않았다.

스크루지의 직업은 무엇이었을까?

애비니저 스크루지 (Ebenezer Scrooge)는 못돼 먹은 구두쇠 인간을 상징하는 인물로 대표되지만 이상하게 찰스 디킨스의 작품에서 스크루지 직업에 관해 명확히 밝히지는 않는다. 그의 사무실 모습, 디킨스가 작품에서 묘사하는 업무에 관한 세부적 내용들에는 법률적 묘사, 회계에 관한 묘사를 종합해봤을 때, 대금업자, 변호사, 회계사 어떤 추론도 가능하지만 필자는 19세기 중반 영국의 시대적 상황으로 봤을 때 그가 대금업자겸 회계사로 평가한다.

그 이유는 그의 동업자였던 제이콥 말리(Jacob Marley)라는 이름에서 찾았다. 야곱-제이콥은 전형적인 유대계 이름이며 개신교적 가치가 여전히 팽배했던 당시 영국사회에서 앵글로 색슨적 뿌리가 분명한 사람이 유대계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은 자해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스크루지(Ebenezer Scrooge) 본인은? 스코틀랜드계가 아니면 네덜란드계였을 것이다.

 

▲ 19세기 영국의 Oyster Room(둥글게 모여 앉는 사교클럽)의 전경. Top Hat으로 표현되는 당시 영국의 신사계급들은 신분에 상관없이
자본의 유무관계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충분했다.

 

영국의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한다면 고도의 개방경제다. 영국은 유럽이 대항해시대를 거쳐 르네상스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북유럽과 북아프리카와 이익관계의 유무를 떠나 통상에 익숙했던 경제구조였다. 세대가 바뀌며 아프리카, 아랍계와 같이 표면적으로 즉시 드러나는 피부색이 아닌 인물이 몇 세대를 거쳐 영국에 거주했다면 충분히 런던시민(Londoner)의 일원으로 정체성이 확립된 상황 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당시 Top Hat으로 표현되는 중산계급들의 활동이 대영제국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것까지 추가하면 스크루지와 같은 인물들의 정체성, 인격, 직업성향을 추론하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으며, 무엇보다 당시 영국의 시대상황이 만들어 낸 인물군상들의 품격과 사회활동에 대한 모습을 어렵지 않게 그려 볼 수 있다.

역동적인 패권국, 빈부격차는 필연적인 것일까?

이 시기 영국은 대영제국의 위상이 정점을 찍음과 동시에 디킨스의 작품 “크리스마스 캐롤”이나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불우한 환경의 빈민가 어린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거친 노동을 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나 올리버 트위스트 같은 작품에서는 런던의 열악한 빈민가와 "Workhouse"로 통칭되는 “노동교화소”의 상황을 고발할 뿐만 아니라, 소년교화소, 귀족들의 사교육기관을 통해 극심했던 빈부격차를 경험한 영국의 상황을 런던이라는 공간을 두고 묘사한다. 또 한 번 강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패권국 이었다.

▲ 짐캐리의 크리스마스 캐롤 2009 비록 애니메이션이지만 극의 진행방식과 혼령의 모습들,
등장인물과 주고받는 대사는 찰스 디킨스의 원작과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디킨스의 본문을 살펴보자.

이 늙은이(스크루지)는 조카를 사무실 밖으로 내쫒고 손님 둘을 맞이했다.
커다란 풍채만큼이나 인상도 좋은 이 두 신사는 그들의 모자(Top Hat)를 벗고
사무실로 들어오며, 장부와 여러 서류들을 손에 들고 스크루지 에게 인사했다.

**.......일상적인 인사가 오가며....**

부랑자 수용소와 소년교화소에 얼마를 써 넣을까요?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 본문에도 나와 있듯이, 연말 기부행사에 참여하라는 단체의 방문은 상상이외로 일상적이다. 관례적인 인사가 끝난 후 곧바로 금전적인 대화로 넘어가는 것을 보면 신사라는 계급들의 잘못 알려진 위선을 비판하기 이전에 당시 영국사회의 일상적인 모습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직후 사무실에서 스크루지가 던졌던 고약한 말은 그가 구두쇠를 넘어서 성격적 결함이 있는 인물로 묘사하는 걸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스크루지를 통해 찰스 디킨스가 던지는 메시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칫 인간이 빗나갈지도 모르는 인품에 관한 종교적 은유이다. 산업화와 근대화를 동시에 이뤘지만 프랑스와 같이 영국과 미국의 지배자들은 피의 혁명을 겪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은 게으른 자 들에게 세상은 관대하지 않다는 의식 또한 당시 영국의 중산계급들에게 일상화된 진리이기도 했다.

스크루지는 구두쇠 영감이 아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자기중심적이고 자본에 집착한 인물이었다가 누구보다도 더 이타적으로 불우한 타인을 도왔고 크리스마스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로 변하는 한 사람이다. 그 당시 런던의 계급과 정체성으로서의 신사(Gentleman)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왜 신사(Gentleman)를 대변하는 인물일까?

언제부턴가 한국사회는 서구사회가 가진 긍정적 모습을 인정하는 한편 위선을 찾아내는데도 익숙해져 있다. 그렇지만 “개처럼 벌어 정승같이 쓰라”는 유교적 냄새가 다분히 풍기는 격언처럼 스크루지야 말로 서구적 시각에서 막스 베버가 강조했던 청교도(Protestant)적인 삶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19세기 중반 영국과 유럽사회 이 외에 유교문명과 이슬람 문명을 포함, 다른 문명에서 기부가 일상적 관례가 된 사회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당시의 영국과 유럽은 전근대적이고 제왕적 베품이 아닌, 일상적인 의무로의 기부가 중산계급에게도 습관이 된 사회이다. 거기에 인간을 척박하게 만든다는 도시생활과 산업화의 결과물로서 인간관계를 경험하던 영국의 신사계급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지적풍모를 갖췄던 계층들이다.

타인의 도덕적 시각을 의식하지 않고 악착같이 자본을 축적했지만 종극에 가서는 그 부(Wealth)의 결과물을 타인과 나누는 인물. 이제 더 이상 스크루지를 구두쇠인간의 전형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이기적이리만치 청교도적 삶에 충실했다가 가장 앵글로색슨(?) 적으로 타인에게 베푼 인물이라고 평가해야 맞지 않을까?

 

임종화 ㅣ 경기대 무역학과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