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우리 말 사전에 ‘찜하다’는 단어의 설명이 다음과 같이 나온다.

“동사 「…을」 (속되게) 어떤 물건이나 사람을 자기의 것으로 하다.” 

그래서 흔히 쓰이는 예문으로 “①먼저 찜한 사람이 임자다. ②그 애는 내가 찜했으니까 너희는 사귈 생각을 하지 마라.”라고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사물이나 사람을 자기 것으로 하기엔 무언가 전제조건이 필요하지 않을까? 무엇일까?

바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긴박함, 확실성이 내포되어야 한다. 

예컨대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또는 그 물건이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고 그것 또한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당연시하는 자기 확신과 혁신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혁신적 사고를 우리의 삶의 영역에 적용해 보자. 단연코 우리의 마음을 찜하는 것은 정치, 경제와 교육이다. 이는 역으로 한국의 정치, 경제와 교육은 그만큼 중요하기도 하고 또한 문제가 많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물론 정치, 경제적으로 지금과 같이 짧은 기간에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민주국가로 발전한 것은 분명 세계사적으로도 유례가 드물다. 

한때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영국의 <더 타임스>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평가절하를 했지 않은가. 

그러나 불과 수십 년 만에 한국은 독재와 전체주의를 극복하고 유례없는 자유민주국가를 이루었다. 이제는 세계 어디를 가도 과거 최빈국가의 위치를 벗고 당당히 G20 국가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인가? 아니다. 

내면적으로 우리 정치는 국민의 한숨과 불만을 넘어 원성과 혐오를 자아내고 있다. 경제 또한 수출에의 의존도가 지나쳐 어느 한 주요 교류 국가의 기침에도 몸살을 앓는다. 이른바 ‘빛 좋은 개살구’다. 

교육은 어떤가? 세계가 우러러보는 ‘한강의 기적’을 이룬 산업화의 일등 공신은 단연 교육이었다. 여기엔 소 팔고 논 팔아 자식 공부를 시켰던 우리의 교육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식은 서울로 보내고 망아지는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이 그 대표적인 배경이었다. 물론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만큼 우리의 교육열은 식을 줄 모른다.

역사적으론 한석봉 어머니나 이율곡 어머니의 자녀교육에 대한 헌신과 희생의 교육 DNA가 우리의 핏속에 면면히 유전되어 오고 있다. 그뿐이랴. 현대엔 ‘기러기 아빠’란 세계문명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면을 보자. 그런 교육이 제도적으로 불안정하여 아직도 땜질식으로 그때그때 치료를 해대니 상처투성이고 그 상처는 곪아 문드러질 지경이다. 사교육 망국론이 유령처럼 배회한다. 2019년 사교육비 총액은 21조5000억을 넘어섰다. 

정부는 공교육 살리기를 주장하지만 그 모든 정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요 모양 요 꼴의 교육제도가 4차 산업혁명의 커다란 산을 넘을 수 있을까. 걱정이다. 

선진국은 이미 교육혁신을 이루어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5지 선다형 정답 찾기를 반복하고 있다. 대학입시만이 교육개혁의 종결자다. 유리한 수능고득점을 위해 재수생을 양산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교육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경영학 교과서는 ‘혁신을 일으키고 싶으면 우선 타깃 시장을 결정하라’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혁신이 교육제도를 먼저 타깃으로 삼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우리의 G20 국가로의 경제발전은 교육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졌다. 

교육의 역할이 마중물이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것은 과거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교육밖에는 없다. 세계 어느 국가든 ‘왠지 대단할 것 같다’는 직감에 이끌려 온 혁신의 결과가 빛난다. 

이제 우리에겐 교육만큼 견줄 수 있는 게 없다. 더 늦기 전에 혁신은 교육을 완전히 찜해야 한다. 창의성을 갖춘 역량 있는 미래의 인재 육성! 이것은 시대적 과업이요, 국민의 간절한 소망이다.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