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로 읽은 오늘] "스프를 너무 많이 끓였어요, 함께 먹을래요?"
[프랑스로 읽은 오늘] "스프를 너무 많이 끓였어요, 함께 먹을래요?"
  • 서혜정 기자
  • 승인 2020.04.15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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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주 프랑스 유학생/ 예술가

남에게 나눠주는 '자선'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에듀인뉴스] "저희는 프랑스 파리에 사는 행정가, 건축가, 예술가, 보건전문가, 경영전문가, 평범한 직장인과 유학생 등입니다. 언젠가 자신의 전공과 삶을 이야기하다 한국의 많은 분과 함께 나누는 매개체가 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서로 다른 다양한 전공과 각자의 철학과 시선으로 느끼고 바라본 프랑스 이야기에서 시사점을 얻어가길 바라며 프랑스의 한국인 이야기를 관심 갖고 지켜봐주십시오."

La galerie centre d’art contemporain 미술 센터 건물 사진.(출처: http://lagalerie-cac-noisylesec.fr)
La galerie centre d’art contemporain 미술 센터 건물 사진.(출처: http://lagalerie-cac-noisylesec.fr)

[에듀인뉴스] 프랑스 미술대학교 3학년때 참여했던 한 외부 수업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세르지(파리의 서북부에 있는 도시. 학교가 있는 곳)에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노아지-르-섹(Noisy-le Sec)이라는 파리 동북부에 있는 도시에서 수업을 했다.

그 도시의 라 갤러리(La galerie) 미술센터에서 교수 그리고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각자 작업을 하는 수업이었다.

한 수업당 여섯 시간, 일주일에 하루, 여섯 주 동안 미술센터에서 해보고 싶은 작업에 대해 서로 대화하면서 진행해 나갔고, 결과물은 의무가 아니었다.

첫 수업에서 우리는 라 갤러리 담당자와 만나 인사하고 이 센터가 속한 노아지-르-섹이란 땅, 땅에 사는 주민, 당시 전시 중이었던 작가의 작업과 미술 센터 공간에 대해 배웠다.

이 도시는 파리 동북쪽에 있는 근교 도시로, 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이 산다. 이국적인 가게들이 많고, 서민적이며 활발한 분위기다. 문화적으로는 미술센터가 아직 도시와 자유롭게 섞이지 못하고 있었고, 이 점에 대해 센터는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당시 센터에서는 삐에르 조세프(Pierre Joseph)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노르망디의 끝없는 밀밭을 끝없이 반복적으로 찍은 사진들이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나는 이 도시와, 전시와, 센터와, 또 여기 사람들과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고 싶은 마음에 설레었다.

첫 두 수업 동안에는 혼자 도시와 센터 공간을 돌아다녔다. 벌써 하고 싶은 작업을 시작한 이도 있었고, 나처럼 특별한 생각 없이 이곳저곳 탐험 중인 이도 있었다.

가장 좋았던 점은 결과를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는 자유롭게, 하지만 작업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수업에 임했던 것이다.

그저 수업시간에 맞춰 하는 작업이 아니라, 한명의 예술가로서 작업을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시도하고 싶은 것들이 저절로 생겨났다.

도시를 걷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거리에 불어로 말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거리에서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말을 했다. 신기해서 그 말들을 귀에 들리는 대로, 한글과 알파벳으로 받아 적기 시작했다. 수업이 없는 날에도 이곳에 와 말소리들을 받아 적었다.

당시 센터에서 전시를 하던 작가가 밀밭을 그저 반복적으로 주루루루 사진 찍었듯이, 나도 그저 들리는 소리들을 공책에 주루루루 적었다.

받아 적은 소리 중 한 줄을 나눠보자면 이렇다.

“하다나쓰 끼요 쉬슈 끼따라나 빠다곰 교두니 아 prochaine, prochaine moi ça peut pas”

미술센터 안에서 사람들은 불어만 쓴다.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는 센터와 도시가 함께 어우러지려면 공통되는 형태의 언어를 찾아내야 하는 것일까?

이 알 수 없는 언어를 센터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고 싶었다. 그래서 마지막 수업 때, 센터 전시장을 걸어 다니면서 공책에 담은 것들을 30여분간 낭송했다. 나의 알아 들을 수 없는 ‘낭송’ 또는 ‘배경음’이 끝났을때, 우리는 서로 질문하고 느낀점을 나눴다.

'수프를 너무 많이 끓였어요'('J’ai fait trop de soupe') 작품.(출처=홍성주)
'수프를 너무 많이 끓였어요'('J’ai fait trop de soupe') 작품.(출처=홍성주)

이 수업에서 나는 또 하나의 작업을 했는데, 그 작업이 오늘 칼럼 제목인 ‘수프를 너무 많이 끓였어요’다.

이는 ‘수프를 너무 많이 끓였으니, 이리 와서 함께 다 먹는걸 도와주세요”라는 의미다.

당시 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무언가를 나눠줄 때 ‘자선(charité)’의 의미를 없앨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선’이라는 말에는 주는 이와 받는 이의 관계가 어쩔 수 없이 수직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친구 사이의 주고받음은 배경에 깔린 관계가 있으니 좀 더 복잡하게 봐야겠지만, 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에게 돈이나 음식을 나눠줄 때 드는 사랑스럽고 따스한 기분 속 어딘가에 스스로 우월의식이 있을 것 같은 불안함에 괴로웠다.

숭고한 마음을 가지고 싶었다. 지금은 사람의 마음 속에 어쩔 수 없이 있는 어둠과 연약함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때는 좀 극단적으로 생각했고, 괴로워했다.

내가 항상 수프를 너무 많이 끓인다면, 그리고 모르는 누군가가 항상 다 먹도록 도와주러 온다면, 무엇인가를 베풀고 무엇인가를 받을 필요도 없이, 그저 여기 함께 있기만 하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내가 이 문장처럼 수프를 항상 너무 많이 끓여서 나눈다면, 이것은 거짓말이다. 어쩌다 수프를 너무 많이 끓이는 것은 우연한 사고지만 의도할 때는 거짓말이 된다.

여기까지가 내 한계였기에, 이 생각을 교수와 나눴다.

교수는 사람의 마음이 완벽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해 주면서 프랑스에서 ‘수프’라는 음식은 ‘대중’과 직결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수프를 나눠먹자고 한다면, 프랑스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것만큼 '자선'의 이미지도 없을 것이라고, 심지어 이 도시는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더 극대화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결국 나는 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 교수, 그리고 학생들, 즉 이미 아는 사이인 사람들과 점심시간마다 내가 전날 밤에 ‘너무 많이 끓인 수프’를 가져와 함께 나눠먹었다.

매주 점심마다 우리는 수프를 먹으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저 나의 한계를 보여주는 문장과 함께 수프를 매주 같이 먹었을 뿐인데, 풍성하고 좋은 시간이었다. 또 이 경험은 3년 후 나에게 시를 쓸 수 있게 해주었다.

마지막 수업시간에는 다른 학생들도 작업을 발표했다.

한명은 미술센터 건물에서 영감을 받아 찍은 굉장히 추상적인 영상 작업을 보여주었고, 또 다른 이는 센터 지붕에 달린 커다란 벌집 관련 동화를 써 작은 책자로 만들어 보여주었다. 또 어떤 두 학생은 함께 만든 옷을 전시장의 밀밭 사진들과 함께 찍어 사진 작업을 해 보여주었다.

각자의 작업에 대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눴다. 물론 누가 더 잘했고 못했는지 같은 평가는 없었다. 이렇게나 서로 다른 작업들을, 심지어 결과가 의무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평가를 하겠는가?

귀하고 풍성했던 이 시간은 내 안에 좋은 영양분으로 쌓였고, 지금, 현재를 살아갈 때에도 종종 도움을 준다. 이런 수업들이 프랑스와 한국의 미술 학교에 많이 생겨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다.

 

홍성주.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다니는 도중 예술에 반해 중퇴한 후 프랑스로 갔다. 엑상프로방스 시립 순수미술학교에 입학, 남부의 따뜻한 햇살과 함께 자유로운 미술공부를 시작했으며 다시 다른 맑은 에너지를 찾아 세르지 국립 고등미술학교에 편입, 깊은 경험을 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자신에게 정직해야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학교 다니는 동안 모로코의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을 통해 타인을 내 속안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바라보기도 했고, 또 독일 학생들과 40년된 1톤짜리 오프셋 인쇄기를 사서 트레일러에 싣고 두 나라를 가로지르며 여러 메세지를 인쇄하는 여행을 1년간 추진하다가 실패해 보았습니다."

"환대의 형태와 멜로디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하면서요.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랑한다면, 그것을 살아보는 수밖에 없잖아요. 찾아가는 길목에서의 작은 만남들을 언어로, 목소리로, 노래로, 가끔은 선과 색깔로 남기면서 느릿 느릿 가 보는 중입니다. 타지 사는 외국인으로서 여러 상황이 생기다 보니, 보이지 않는 것, 보지 않으려 하는 것,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늘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프랑스 순수미술 학교를 다니며 살아본 몇 가지 소중한 순간들과의 만남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서혜정 기자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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