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에듀인뉴스]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시가 있다. 

이 시는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그늘’이 무엇인가? 이는 인간이 겪는 아픔이나 고통을 뜻한다. 

자연은 인간에게 더위와 추위를 제공하듯이 햇볕과 그늘도 함께 드리운다. 인간에겐 아픔과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그늘이다. 그런 그늘이 없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기에 시인의 마음은 인간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는 것이리라.

최근에는 인간의 삶이 온통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인간의 의지와는 전혀 다르게 주어지는 힘겨움과 고통이기에 그렇다. 나라가 온통 코로나19에 의해 공포와 두려움에 압도당하고 나아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집콕’에 빠지다보니 숨이 멎을 정도다. 

이런 가운데 사회와 격리되거나 일상 속에서 행동반경이 제한되어 심리적 교류가 소원해짐으로써 우울과 고독으로 인해 심리 상담과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도 늘어가고 있다. 

이렇게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길을 가면서 우리는 모두가 운명공동체라는 것을 실감한다. 하지만 과거 인류가 그랬듯이 이 아픔과 고통의 현실이 지나면 우리는 더욱 성숙해지리라 믿는다.

박원종 작가는 <내 영혼의 산책>에서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특성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일본 대지진으로 쓰나미가 덮쳤을 때 생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고 오직 ‘살고 싶다’, ‘나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집념으로 주위에 있던 나무 둥지 같은 것들을 끝까지 부여잡고 놓지 않았다." 

일찍이 니체는 이런 인간의 삶의 의지를 ‘초인’이란 자신의 철학사상으로 맥을 이루었다. 또 다른 인간의 삶은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에서 날마다 생과 사를 가르는 처참한 3년간의 고통 속에서도 빅터 프랭클(1905~1997)은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이 왜 살아야하는지 의지를 불태웠다. 그 결과 그는 마침내 햇볕을 찾았고 훗날 참혹한 그늘의 증거자가 됐다. 

그렇다. ‘나는 살아야 한다’는 간절한 의지만 있다면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도 피할 수 있는 방도를 찾을 수 있다. 

여기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그것은 상황을 바꾸거나 회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통을 회피하면 잠시는 잊을 수 있겠지만 그 이후로는 늘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따라서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온갖 노력을 하는 것만이 인간에게 현명한 선택지다. 결국 이런 과정을 통해서만이 해법을 찾게 되고 더불어 축적된 경험과 지혜는 훗날 괄목할만한 성과로 이어져 왔다. 

스리랑카 출신 담마난다 승려가 쓴 <현명한 사람은 마음을 다스린다> 라는 책에 따르면, "현명한 사람과 우둔한 사람의 차이를 구별 짓는 것은 ‘문제가 생겼다’라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에 있다"고 한다. 

매우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사실 문제는 갑작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사람마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다르다. 

결국 이 말은 ‘문제’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접근하느냐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에 대한 올바른 접근 방식은 무엇인가?

다시 정호승 시인에게 다가가 보자.

"(…)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그렇다. 바로 타인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다. 이것이 시련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이는 ‘당장 행복해지고 싶거든 타인을 도우라’는 말과 상통한다.

코로나19와 싸우는 우리 모두에게 서로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하자.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말처럼 아프고 나면 한층 성숙해질 우리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br>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