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반 두려움 반' 투표권이 생겼다...똑같이 소중한 한 표 권리
투표하니 선거 결과 관심 급증..."지루했던 개표방송이 재미있어"

민연지 청주외고 고3 학생
민연지 청주외고 고3 학생

[에듀인뉴스] 투표권이 생겼을 때, 말로만 듣던 ‘설렘 반, 두려움 반’을 몸소 느꼈다. 어른의 상징으로 여겼던 투표권이 생겼다는 소식에 나도 어른이 된 것만 같아 느낀 설렘 반, 그리고 내가 던진 한 표로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삶이 바뀐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반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설렘은 사라지고 두려움이 점점 커졌다. 평소에 뉴스도 자주 보고 나름 시사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지만, 내가 직접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내 손으로 뽑은 후보가 앞으로의 4년, 더 나아가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순간부터 투표권은 단순한 권리가 아니었다. 결과에 대해 감당해야 할 책임으로 뭉쳐진 권리였다. 그리고 나는 투표권이 생긴 순간부터, 이 권리를 제대로 책임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투표 가능 연령이 만 18세로 하향조정되면서 우려 섞인 말들이 터져 나왔다. 주로 ‘만 18세(특히 고등학생)의 정치적 판단력을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교육부도 만 18세의 유권자에 대한 논의가 필요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교육부가 1월에 주최한 전국 고등학생 유권자 간담회에 나는 운이 좋게도 참석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참석한 간담회는 ‘자유로운 토의의 장’이라는 가면을 쓴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어른들이 우리에게 던져준 주제들은 하나같이 ‘고등학생은 무엇이든 어른의 통제 하에서 진행해야 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고, 함께 한 학생들은 그 말에 세뇌라도 된 것처럼, 아무도 그 주제에 대해 반론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주제에 걸맞은 ‘어른들이 좋아할 법한’ 학생의 생각을 보여주었다.

난 투표권을 얻었다고 이제 어른이니 우리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라는 말을 하고자 한 것도 아니었고, 학생에게 어른의 보호가 필요 없다는 말이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우리의 투표권과 성인의 투표권이 같은 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투표권도 성인의 투표권처럼 똑같은 소중한 한 표이다.

만 19세 이상이 첫 선거에 참여할 때, 누가 선거와 투표에 대한 교육을 주장했는가. 미성숙한 만 19세 이상 유권자의 정치적 판단력을 선거 전부터 의심한 적이 있었는가. 그동안 만 19세 이상만이 투표한 선거의 결과는 항상 최선을 선택한, 성공적인 선거였던가. 교복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가 당연하게 얻어온 권리를 의심받고 또 의심받아야 하는 건가.

이대로 좌시할 수는 없었다. 우리도 우리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투표를 독려하고, 친구들과 함께 후보와 정당, 그리고 그들의 공약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눴으며, 유권자가 아니었을 때는 쉬이 지나쳤던 선거 공보물과 선거 운동도 눈여겨 보았다.

혹시 정치에 거부감을 느껴 내 뜻에 동참해주지 않으면 어쩌나 생각했지만 모두가 자신의 권리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함께 노력해주었다.

길 건너 보이는 민연지 학생의 투표장소. 민연지 학생은 "횡단보도만 건너면 되는 가까운 거리였지만 행사할 권리 한 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끝없는 고민을 했다"고 한다.(사진=민연지 학생)
길 건너 보이는 민연지 학생의 투표장소. 민연지 학생은 "횡단보도만 건너면 되는 가까운 거리였지만 행사할 권리 한 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끝없는 고민을 했다"고 한다.(사진=민연지 학생)

그렇게 유권자로서의 준비 속에서 4월 15일, 내 인생의 첫 선거가 찾아왔다. 나에게 4월 15일은 끝없는 고민을 했던 날이었다. 투표장에 가기 전에도, 도착해서도, 그리고 투표를 마치고서도 나는 최선을 찾기 위해 끝없이 고민했다.

투표장으로 가는 길은 횡단보도 하나 건너면 되는 가까운 길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한 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내 선택이 맞는 선택일까’와 같은 무수히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투표장에 도착했다. 투표장에서도 생각은 끊이지 않았고, 집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은 참 피곤하게 산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내 권리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만 같아서 오히려 자긍심을 키울 수 있었다.

선거 당일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친구들과 함께 개표 방송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내가 유권자가 아니었을 때 보았던 개표 방송은 그저 지루한 방송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저 부모님이 보니까 따라보고, 재미있는 CG에 잠시 흥미를 가지다가도 금세 식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유권자가 되니 자연스레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지역구의 결과, 각 당이 차지한 의석 수, 그리고 이번에 처음 시행된 준연동형 비례 대표제로 인한 결과까지 모두 궁금했고, 그래서 11시가 되도록 텔레비전만 보며 SNS로 서로의 의견을 나눴었다.

나와 친구들이 이토록 선거 전반에 걸쳐 세세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놀라웠다.

만일 유권자가 아니었다면 이번 총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선거 다음날 뉴스에 나온 선거 결과와 그에 대한 분석만 확인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만 18세 선거권, 누군가에겐 못마땅하거나 무관심한 이슈였겠지만, 나에겐 세상이 바뀌는 일이었다.

그간 경험해본 적 없는 권리를 최선을 다해 행사하고 싶었고, 그에 따른 책임도 모른 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열심히 정치를 배우고 공부하다 보니 나의 시각, 생각, 그리고 가치관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고, 자연스레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이렇게 온 정성을 들여 행사한 나의 한 표는 감히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나, 그리고 우리의 투표가 못 미더운 어른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도 할 수 있으니 믿고 지켜봐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