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통합은 상호작용으로부터...인식 전환 아닌 있는 그대로

김헌용 서울 구룡중학교 교사
김헌용 서울 구룡중학교 교사

[에듀인뉴스] 중학교 교사로 임용된 지 정확히 10년. 중증 시각장애인으로서 특수교육의 대상자였던 내가 어느덧 교육 제공자로서 적지 않은 경력을 갖게 되었다.

그간 많은 학생이 나를 거쳐 갔고, 그들에게 나는 단순히 영어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아니라 장애에 관한 인식을 올바로 심어주는 교사가 되길 바랐다.

매년 새 학기 첫날이면 영어 수업이 아닌 장애 이해 교육을 진행했고, 단순히 마음가짐의 문제만이 아니라 실제로 시각장애인을 만났을 때의 대처법에 대해서도 실습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다.

그런데 교사생활을 하다 보니 장애 인식과 관련한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우리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다.

긍정적 변화들...장애인교원노조의 탄생

2010년 3월, 교사로 임용되어 학교에 와 보니 불모지가 따로 없었다. 엎어지고 깨지면서 많은 걸 배워야 할 시기에 내 주변에는 묻고 배울 만한 장애교사 멘토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러니 근무 중에는 어리둥절한 상태로 있다가 퇴근하면 한 줌도 안 되는 다른 장애교사들과 전화로 서로를 위로하다가 잠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지난해 7월 세계 최초로 장애인교원노조가 출범, 이인호 준비위원장이 초대 위원장으로 선출됐다.(사진=지성배 기자)
지난해 7월 세계 최초로 장애인교원노조가 출범, 이인호 준비위원장이 초대 위원장으로 선출됐다.(사진=지성배 기자)

그런데 그러던 장애교사들의 네트워크가 점점 커지더니 2019년 여름에는 급기야 장애인교원노조가 설립되는 쾌거가 있었다. 장애인교원노조를 통해 교육부나 교육청과 같은 상급 기관에 장애교사들의 존재를 알리고 요구를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이젠 17개 시·도교육청마다 바로 연락이 닿을 수 있는 중증 장애교사들이 십수 명씩 존재한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장애교사들도 늘어나면서 이젠 사회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통합을 가로막는 숨겨진 차별

그렇다면 장애교사들의 근무 여건은 그때보다 많이 나아졌을까?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거의 그대로이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학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 못하고, 담임교사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요즘 교사로 임용되는 신규 장애교사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10년 전보다 더 차별을 당하고 있다. 모 교육청의 경우 최근까지 중증 장애인이 교사로 임용되면 기간제 교사를 한 명 더 배정해주었다.

명목상 장애교사를 도와준다는 의도였지만, 실제로는 학교의 부담을 경감해준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기간제 교사는 수업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므로 어쩔 수 없이 장애교사의 수업 시수를 절반 정도로 줄여야 했다.

교육청에서는 장애교사가 학교에 배정되면 그만큼 일손이 더 필요할 거라는 인식에서 기간제 교사를 한 명 더 배치한 것이라지만, 결과적으로 장애교사의 수업 기회가 반 토막 나게 된 것이다.

장애교사들 사이에서는 ‘배려를 가장한 배제’라는 말이 자주 회자된다. 상급 기관에서 장애교사를 배려한답시고 어떤 정책을 시행하지만, 현실에서 그 배려로 인해 장애교사가 배제당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차별이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나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학년말이 되면 성과급 산정을 위해서 교사들이 서로에게 점수를 주는 다면평가라는 것을 하는데 당시 교무부장은 나를 평가자 명단에서 제외했다.

교무부장의 논리는 내가 눈이 안 보이므로 다른 교사들의 수업이나 업무를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명백한 장애인 차별이었다. 어떤 선생님이 수업을 얼마나 잘하고, 업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처리하는지 눈이 안 보이면 알 수 없다는 것은 그야말로 단편적인 시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명백한 차별을 하면서도 교무부장의 설명은 나를 ‘배려’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교장에게 가서 이 점을 설명해 드렸다. 교장은 나의 주장을 수긍하면서도 올해는 이미 방침이 결정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하셨다.

장애교사가 처음으로 임용되던 시기에는 학교장이 장애교사에게 막말을 일삼는 일도 있었다. 노골적인 차별이다.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차별은 훨씬 더 은근한 형태로 나타난다. 관행적으로 일어나는 차별은 그 순간만큼은 장애교사 당사자조차 문제가 없다고 착각하기 쉽다.

게다가 대다수 사람은 선의를 가지고 행동한다. 장애인 당사자가 차별이라고 인지하더라도 그것을 지적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자칫 상대방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고, 관계가 껄끄러워지면 오히려 소외나 고립과 같은 더 큰 차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우려 때문이다.

수업 중인 김헌용 교사.(사진=김헌용 교사)
수업 중인 김헌용 교사.(사진=김헌용 교사)

통합은 상호작용으로부터

그렇다면 차별을 없애고 진짜 통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인식이 바뀌어야 할까?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보자. 우리의 가장 기초적 생명 활동은 영양 섭취, 배변, 수면, 활동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활동들을 할 때 우리에게 어떤 인식이 필요할까? 정답은 ‘별다른 인식이 필요하지 않다’이다.

물론 똑같은 생리적 활동이라도 더 잘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잘 먹기 위해 칼로리를 재고, 화장실에 잘 가기 위해 장 활동에 좋다는 음료를 구매하고, 잠을 잘 자기 위해 스마트폰을 멀리 둔다. 이러한 것들은 특별한 인식이 필요한 행동들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우리가 이런 일들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애초에 이런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떠한 일에 대한 인식이 존재하려면 우선 특정 활동이 존재해야 한다.

나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 또한 그렇게 실체를 기반으로 발전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장애인의 모습, 또는 교과서나 의무 장애이해교육을 통해 제시되는 장애인의 모습은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대부분 허구이다.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들도 그들의 지극히 단편적인 모습을 담고 있을 뿐이다.

그런 파편화된 정보들을 통해 구성된 장애인의 이미지는 현실 속 그 어느 장애인도 정확히 표현해내지 못한다.

나는 종종 사람들로부터 보통 사람들보다 청력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듣는데-나도 정말 그랬으면 좋을 것 같다-실제로 청력 테스트를 해 보면 난 비시각장애인과 전혀 다르지 않다.

장애인에 관해서는 유독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많이 퍼져 있다. 차라리 ‘아직 장애에 관해서 잘 모른다’라고 인정하는 편이 더 낫다.

나만 하더라도 최근 다른 장애에 관해서 많은 것을 알아가고 있다. 시각장애인은 회의 공간이 좁아서 서로 이야기가 잘 들리는 환경을 좋아하는 데 반해, 청각장애인은 한눈에 모든 구성원이 다 보이도록 넓고 원형으로 둘러앉는 환경을 좋아한다. 장애인교원노조 활동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이다.

이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위해서는 더 많은 상호작용밖에는 답이 없다. 법과 제도가 정비되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줄지만, 차별이 준다고 해서 그들에 관해 저절로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통합은 비공식적인 상호작용에서 시작한다.

학교의 교무실이든, 교실이든, 만약 그곳에 있는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제대로 통합되길 원한다면 그들에게 상호작용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단순히 지원 인력을 붙여주어 장애인이 할 일을 지원 인력이 대신하게 하는 것도 답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통합의 관점에서라면 지원 인력이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장애인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맡기고 그들에게 일정 부분 책임을 지게 해주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속기사를 붙여줄 수도 있고, 보조기기나 웹 접근성 등은 최대한 보장되도록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설령 그것이 조금 미흡하다고 해도 상호작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가 명확해지고, 포용적인 문화만 조성된다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한다는 정신으로 일하는 것이 인간의 저력이다.

물론, 시행착오와 갈등은 불가피하다. 예상치 못한 난관이 생길 것이다. 그럴 때 포기하지 않고 해법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약간의 여유와 유연성이 필요하다. 실수하더라도 괜찮다는 말 한마디, 실제로 실수가 생기더라도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라며 이끌어줄 수 있는 멘토십이 장애인 당사자에게는 더욱 중요하다.

추상적인 통합이 아니라 실질적 통합은 늘 구체적 상호작용 속에서 나온다. 행동은 인식에 앞선다.

우선 장애인이 어떤 활동을 하게 하라.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게 하라. 이런 통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그 결과는 배제, 따돌림, 민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장애인은 그 집단에서 천덕꾸러기가 되고, 업무에 차질이 생기고, 조직의 분위기가 나빠진다. 이런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라도 먼저 상호작용을 늘려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장애인의 통합을 이야기할 때 정부가 지원을 더 많이 해줘야 한다든지, 막연하게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든지 하는 추상적인 이야기는 그만두자.

모든 변화는 아주 구체적인 행동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통합의 시작이자 완성이다. 이제 통합을 다시 정의할 시점이 되었다. 진정한 통합은 의미 있는 상호작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