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박사/ 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구원

(출처=http://unryeong.blogspot.com/2014/08/blog-post_480.html)

[에듀인뉴스] 지금도 그렇지만 학창시절 역사 과목을 참 좋아했다.

보통 흥미와 성적은 비례하는 터라 공부하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우리의 근대사는 휘몰아치는 격동의 시대라 여러 사건들이 숨 가쁘게 발생해, 이해하는 것 보다는 외우는 걸 우선시 했던 그 당시의 공부법으로 가장 난이도가 높은 부분이었다. 

특히 몇 가지 보기 중에서 사건이 일어난 순으로 나열된 정답을 찾으라는 문제는 피하고 싶은 1순위였다. 갑신정변이니 임오군란이니, 혹은 을미사변이니...

나이가 들면 암기력 보다는 이해력이 높아진다는데, 대충 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닌 듯싶다. 

사건의 흐름을 유추해서 생각해보면 예전에 피하고 싶던 것들이 조금 더 가볍게 다가오긴 여전히 헷갈리는 부분이긴 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신박한 생각이 떠올랐다. 매해 어디선가 하나쯤은 얻게 되는 숫자가 엄청 큰 달력을 보면 날짜 밑에 ‘육십갑자’가 쓰여 있다.


육십갑자는 '갑자'로 시작해서 '계해'로 끝나는, 총 60개 십간과 십이지의 조합이다.

십간: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 
십이지: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


이름이 말해주듯이 십간은 10가지, 십이지는 12가지다. 이것들이 조합을 이뤄 60갑자가 된다. 그 이유는 10과 12의 최대공약수는 2, 최소공배수는 60이기 때문이다.


(10*12)/2=60


‘갑자’나 ‘병자’의 조합은 있어도 ‘을자’나 ‘정자’라는 조합은 없다. 반면 ‘을축’이나 ‘정축’은 있다.

이것은 짝수인 10과 12의 최대공약수가 2이기 때문인데, 이는 몇 바퀴를 돌더라도 조합은 '하나 건너'가 된다는 것. 

그리하여 10과 12는 서로 정확히 60개의 조합을 이룬 후에 다시 처음의 조합으로 돌아온다. 

육십갑자 (출처=https://idchowto.com/?p=20617)

올해가 경자년이니 정확히 60년 전인 1960년이 경자년이었을 것이고, 120년 전인 1900년도 경자년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60배수로 거슬러 올라가거나 미래로 숫자를 더해 가보면 같은 갑자를 가진 해는 무조건 있다. 물론 역사는 과거의 일이니 거슬러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이를 활용하면 역사 시간에 머리 깨나 아프게 했던, 적어도 육십갑자가 들어간 사건들의 발생순서는 제법 명확해진다. 

1986년이 병인년이었으니 그보다 120년 전인 1866년에 병인양요라는 사건이 있었을 것이고 1991년이 신미년이었으니 1871년에 신미양요였을 것이다. 

2014년은 갑오년, 120년 전인 1894년은 갑오농민전쟁이 있었을 것이고 그 다음에 따라붙는 을미년, 을미사화는 1895년이다. 

더 전으로 나아간다면(이 경우는 대략 발생 시기는 알고 있어야 한다) 1952년이 임진년, 360년 전인 1592년이 임진왜란이다. 정유재란은 1597년이 되겠다. 

병자호란은? 1996년부터 60의 배수로 뺄셈을 하다가 17세기 무렵의 언젠가를 찍으면 된다. 360년 전인 1636년이 아닐까? 정묘호란은 그보다 전이니까, 9년 전인 1627년.

더 거슬러 올라가 연산군 때의 갑자사화를 한 번 보자. 연산군은 대략 15세기 말, 16세기 초의 사람이다 그렇다면... 1984년부터 거슬러 올라가 본다. 480년쯤 전이면 1504년 되겠다. 맞나? ...맞군. 

중종 때의 기묘사화는... 갑자와 기묘의 터울은 15. 중종은 연산군의 동생으로 왕이 된 사람이니 15년이면 아주 적합한 햇수다. 1519년.

중고교 시절에 이 잡학(?)을 꿰고 있었으면 국사 시험이 조금은 더 수월했을 텐데... 너무 늦게 알았나 싶지만. 아무튼 수학은, 수학의 기본원리는... 이렇게 많은 곳에 적용이 된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되어 혼자 슬그머니 웃었던 기억이 있다. 

알게 모르게 생활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수학. 수학 만세다. 

이정은 
이정은

이정은=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석사를 거쳐 같은 대학 생화학 연구실에서 특정 단백질에 관한 연구로 생물학 박사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충북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고 충북대와 방통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복지관에서 세계문화와 역사교실 강좌를 담당하며 어린 시절 꿈이었던 고고학자에 한 걸음 다가갔다. 또 계간 '어린이와 문학' 편집부에서 함께 일하며 인문학에서 과학으로, 다시 인문학으로 넘나들면서 크로스오버적 시각에서 바이오필로피아를 담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