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위해 포주 역할 하는 고교생 '오지수'의 꿈은 평범한 삶
대학 졸업해야 정상인...사회문화적 압력 따르는 소년의 일탈
어른다운 어른은 없다...자본주의 체계내서 등급 올리기 몰두

학교 드라마의 공식을 넘어선 넷플릭스(Neflix)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에듀인뉴스]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한국 드라마 '인간수업'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계왕고등학교 우등생 '오지수'의 성매매 알선 사업에 인싸 여학생 '배규리'가 합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10회짜리 드라마가 전하는 메시지는 그리 간단치 않다.

집을 나간 엄마에 이어 도박 중독자 아버지마저 멀리 떠나고 홀로 남겨진 오지수의 꿈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평범한 삶을 살려면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고 믿는 고등학생. 는 당장의 생활비와 학원비 등 대입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부모 도움없이 홀로 구해야 한다. 

오지수는 스마트폰 채팅앱으로 성 구매자와 판매자를 회원으로 받아 양측을 연결해 주고 돈을 번다. 그리고 성 구매자의 폭력으로부터 성 판매자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주먹을 쓰는 초로의 사내 '이왕철'을 현장 관리자로 채용해 사업을 대리시킨다.

평범한 미래를 절실하게 좇느라 평범치 않은 범죄를 저지르는 이 소년의 삶은 가치판단이 뒤죽박죽인 채 항해 중이다. 그는 미성년자인 같은 학교 여학생이 자신의 회원으로서 성매매를 하는 사실에 둔감한 태도를 보인다. 

또 포주라고 지적하는 배규리의 말을 부정하면서 오히려 자신은 '고객보호업'을 한다고 항변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사업이 들통날까봐 노심초사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오지수는 정확히 알고 있다. 자신의 행위가 범죄라는 사실을, 세상에 밝혀지면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두려워한다. 

낮에는 조용한 우등생으로, 밤에는 얼굴 없는 범죄 사업가로 사는 그에게서 평범하고 상식적인 인간의 표정을 떠올리긴 쉽지 않다. 그는 스마트폰과 대리인을 이용해 누구와도 만나지 않음으로써 범죄의 심리적 지대 바깥에 서 있으려 한다.

파리한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며 문자와 기계음으로 대화하는 오지수의 얼굴은 차분하고 무감각하다. 스마트폰 불빛에 반사된 핏기 가신 그의 표정엔 죄책감이 없다.

오지수는 스마트폰 채팅앱으로 성 구매자와 판매자를 회원으로 받아 양측을 연결해 주고 돈을 번다. 그리고 성 구매자의 폭력으로부터 성 판매자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주먹을 쓰는 초로의 사내 '이왕철'을 현장 관리자로 채용해 사업을 대리시킨다.(사진=넷플릭스 홈페이지)

드라마가 현실에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는 여기서 부터다. 도대체 무엇이 이 소년에게서 인간의 표정을 지워냈는가. 

오지수의 시선은 오로지 자신의 생존과 그 생존이 이루어지는 환경의 현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의 곁에 등장하는 또래 학생들의 시선도 철저히 자신들의 주변만을 바라본다.

이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교실 안팎에는 성적, 집안, 자본, 폭력위계 등으로 짜여진 질서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 학생들이 실제로 사는 현실의 모습이다.

힘이 센 일진은 다른 학생들을 괴롭힌다. 힘이 약한 학생들은 위계질서에 굴종한다. 돈 많은 부모를 두면 폭력으로부터 어느정도 안전하다. 남친의 선물을 사기 위해 성을 파는 여학생, 대학진학을 위해 높은 등급을 유지하려는 우등생, 무언가를 포기하느라 종일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같은 공간에 공존한다. 이들의 삶은 또래의 질서로 움직이는 생태계 안에서 존재한다.

생존 본능과 낙오의 두려움으로 혼탁한 이 세계에서, 드라마 속 인물 오지수 또한 대학을 졸업해야 정상인으로 쳐주는 사회문화적 압력을 따르는 소년이다. 

그는 꿈속에서 조차 자신이 벌이는 행위가 몇 등급인지 묻는다. 

문제적 학생들의 사회적 위치는 학교라는 공교육 시스템 안에 담겨 있지만, 그들이 마주하는 시스템의 현실은 학교가 인정하지 않는 정글이다. 즉 공식적으로는 학교 안에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학교 밖에 있다. 

각자는 그들만의 독립적 생태계 안에서 고군분투하느라 여념이 없다. 자신을 이끌어줄 제대로 된 어른이 곁에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 인간수업에도 어른다운 어른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지수의 아버지는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방기한다. 경찰은 수많은 사건들을 해결해야 한다며 학생들로부터 쉽게 관심을 거둔다.

돈 버는 일에만 치중하는 배규리의 부모는 딸이 눈 앞에서 당하는 성추행을 보지 못한다. 사회에서 만난 어른들은 학생들을 상대로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일삼는다.

심지어 학교에도 아이들을 제대로 보호하는 어른이 없다. 유일하게 아이들을 살피는 어른인 여성청소년계 경위는 동료로부터 자제하라는 눈치를 받는다. 비록 드라마 속 설정이지만 이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노골적으로 은유하고 있다. 

오지수의 담임교사는 무기력하게 아이들을 방치하는 우리사회의 입바른 어른들을 대표한다. 그는 학생들의 편에 서서 이해하는 듯 말한다. 또 시종일관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정의로운 말들을 설파한다.(사진=넷플릭스 캡처) 

어른의 부재는 우리사회가 감추고 싶어하는 현실이다.

오지수의 담임교사는 무기력하게 아이들을 방치하는 우리사회의 입바른 어른들을 대표한다. 그는 학생들의 편에 서서 이해하는 듯 말한다. 또 시종일관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정의로운 말들을 설파한다.

그러나 그의 교과서적 언행은 자신과 학생들이 있을 때에만 작동한다. 수업 중인 교실에 학생부장이 들어와 인권을 침해할 때, 담임은 어른들의 현실 관계 속에서 난처해 한다. 

우리사회 성인들 대부분은 교육제도에서, 공공 조직에서, 사업 영역에서, 원론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체계 안에서 각자 자신의 등급을 올리는 일에 몰두하느라 바쁘다. 그 질서에 순응하며 사는 동안 드라마 속의 교사, 경찰, 부모, 노래방 주인들처럼 현실 속 어른들의 관계도 모래알 마냥 흩어져 간다.

학생들의 곤란을 감지하고도 넌지시 묻기만 할 뿐인 담임교사의 태도 이면엔, 더 가까이 가지도 그렇다고 멀리 떨어지지도 못하는 어른들의 무기력한 처신이 있다. 그것은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빼내는 일종의 실종이다.

어른의 부재는 건강한 관계의 실종을 뜻하는 다른 이름이다. 이렇게 따로 존재하는 각자는 성인의 생태계에서 고군분투하느라 서로 손잡고 아이들을 인도하는 일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 

아이들이 그들만의 생태계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어른들의 자화상이다. 그럼에도 어른의 부재는 그간 숱한 청소년 드라마와 영화에서 판타지에 가까운 어른들이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처럼 그려지는 방식으로 감춰져 왔다.

그러는 사이 현실의 구멍은 감춰지고 벼랑 끝 아이들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워져 갔다. 그 아이들의 얼굴에서 평범한 표정이 지워지지 않기를 기대할 순 없다.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 포스터)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배포한 '2020년 청소년 통계'를 보면 2018년도 14~18세 사이의 소년범죄자는 6만6142명이다. 같은 구간 전체 청소년 인구 266만여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대략 2.5% 정도다.

이중 드라마 인간수업에서 묘사한 공갈, 폭행, 상해, 살인, 강도, 방화, 성폭력에 해당하는 강력범죄를 일으킨 아이들은 2만3000명을 넘는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워지는 아이들의 숫자다.

한편 13~19세 사이 청소년들 중 2019년도 인간관계 만족도 조사에서 불만족에 해당하는 비율은 3.4%다. 공교롭게도 이는 소년범죄자 비율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실종 되가는 관계로 인해 고립된 아이들이 기댈 수 있는 어른은 성 판매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폭력을 써서 먹고 사는 '이왕철' 같은 인물들 뿐이다.

어른의 부재는 아이들이 신뢰하는 인물형을 바꿔 놓는다. 그리고 닮고 싶은 얼굴도 바꿔 놓는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아이들이 목격한 어른들의 맨 얼굴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어른의 표정을 닮아간다. 

김종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