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봄, 여름이 오면 사라지고 말까?

등교 수업 둘째날인 21일, 전국 고등학교 3학년생들은 경기도교육청 주관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치르고 있다.2020.05.21.<br>
등교수업 둘째날인 21일 전국 고교 3학년생들은 경기도교육청 주관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치르고 있다.2020.05.21.

[에듀인뉴스] 2019년에는 험악해진 한일관계 때문에 “이 시국에~”라는 말이 유행하더니, 올해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코 시국에~”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 시국이 생각보다 오래가더니, 이 '코 시국'도 도무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한 두달 정도일 줄 알았더니 반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내년까지도 계속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어느새 일시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당장 마스크만 해도 이제는 이슬람 문화권의 케피야, 히잡처럼 일상복장이 되어버렸다. “조만간, 얼굴 좀 봅시다”라는 말이 인사가 아니라 실례가 되어버렸다.

문화는 전체성을 가지기 때문에 이렇게 사회의 몇몇 부분이 변하면, 여기에 따라 사회의 다른 영역도 모두 바뀌게 되어 있다. 이제 코로나19는 단지 시국이 아니라 사회변동의 원인이 되어버렸다. 면대면 접촉을 최소화 하는 언택트 사회라는 말도 등장했다.

그래서인지 요즘 뉴노멀이라는 말이 유령처럼 여기저기서 출물한다. 이전까지 사회에서는 면대면 접촉과 오프라인이 정상적인 것, 표준적인 것, 비대면과 온라인이 예외적인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표준과 예외의 위치가 바뀐다는 것이다.

직접 하는 일은 없이, 그럴듯한 신조어 만들어서 선전물 만들기 좋아하는 교육부가 이 기회를 놓칠리가 없다.

교육부 홍보자료.(사진=교육부 홈페이지)

어느새 “교육의 뉴노멀을 만들겠습니다” 따위의 문구가 들어간 선전물들이 나오고 있다.

이 말만 들으면 교사들은 미리부터 한숨이 나온다. 저들이 말하는 뉴노멀은 결국 온갖 종류의 “교육의 뉴노멀” 정책사업이 되어 공문으로 뿌려지고, 학교의 잡무만 잔뜩 만들어 수업에 들여야 할 시간을 빼앗아 갈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저 뉴노멀 사업과 관련된 업체의 프로그램 사업, 몇몇 선도교사들의 강연 사업만 활황을 이룰 것이다.

너무 비관적이라고? 천만의 말씀. 교사들 마다 붙들고 물어보라. 열이면 아홉은 다 이렇게 대답한다. 왜 그렇게 부정적이고 냉소적이냐고? 그건 그 동안 우리나라 학교는 뉴노멀을 말하기 이전에 노멀해 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교사들은 기존의 노멀조차 누리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학교는 애브노멀이 횡횡하는 곳이었다. 오히려 우리나라 교사들은 이 코로나 시국이라는 이 비정상적인 기간 덕분에 비로소 학교가 마땅히 그래야 할 ‘정상상태’, 노멀을 경험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또 뉴노멀이라고?

그럼 코시국 덕분에 이제야 겨우 경험한 학교의 노멀이 무엇일까? 지난 4월부터 두달간, 교육부와 교육청은 온라인 수업 준비를 위해 교육청에서 공문 발송을 자제하고, 각종 보고업무 등을 6월 이후로 미루고, 정책 사업 중 상당수를 보류하거나 취소했다.

그러자 예년에 없던 일이 일어났다. 온라인 수업 촬영이나 진행을 위해 교사들이 교무실이 아니라 주로 교실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초등과 달리 중등에서 이는 매우 파격적인 경험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게 왜 파격인지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교사가 출근해야 할 장소, 일해야 할 장소가 교실이라는 것이 어째서 특수한 상황 취급을 받는 것일까? 이게 오히려 정상 아닌가? 오히려 그 동안의 학교가 너무도 비정상이었던 것이다.

온라인 수업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이전에 사용하던 것들을 재활용할 수 없게 되었다. 모든 수업을 새로 구성해야 했다. 덕분에 교사들은 수업 준비를 위해 전에 없이 많은 시간을 사용해야 했다. 20분 정도 강의를 위해 몇 시간을 쏟아 붓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

이 역시 생각해 보면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게 지극히 정상인 것이다. 그 동안의 학교가 비정상이었다.

온라인 수업을 만들고, 학생들의 피드백을 받아 보면서 교사들은 자신의 수업, 교과 전문성 등을 되돌아 볼 기회를 많이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는 연수원 서버가 감당을 하지 못해 지역별로 접속시간을 제한해야 할 정도의 엄청난 연수 열풍으로 이어졌다. 이게 특별한게 아니다. 원래 이게 정상이다. 그 동안이 비정상이었다.

그런데 이 예외적인 정상화의 흐름을 차단하거나 장애물이 되는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수시로 내려 보내는 점검, 조사, 집계 등의 공문이었다.

부산교육청이 지난 19일 관내 학교에 보낸 공문 일부 캡처.
부산교육청이 지난 19일 관내 학교에 보낸 공문 일부 캡처.

어떻게든 과거의 애브노멀 시대때 누리던 지위를 재확인하고 싶어해서 그런 것인지, 영혼없이 정해진 절차와 일정을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관료적 마인드 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업준비와 연수에 전에 없이 많은 시간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교사됨을 자각한 교사들에게 이 흐름을 끊고 들어오는 각종 행정업무와 공문의 실체가 참으로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그것은 비교육적이고 무의미하며 폭력적이었다. 교사들은 그 동안 이를 느끼지 못하고 교무실에서 마치 행정 사무원처럼 근무했던 과거를 되돌아 보았다. 그 동안 학교는 비정상이었다.

이렇게 일단 눈을 뜨고 나니 자꾸 등교개학을 강행하려는 정부의 뜻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다. 의심이 의심을 낳았다. 방역에도 도움이 안되고, 교육에도 도움이 안되는 등교개학을 도대체 왜 이렇게 강행하려는 것일까?

어쩌면 이 정상상태가 계속되는 것을 불안하게 여기는 집단이 교육부, 교육청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들 기준으로 보면 하루빨리 이 코로나 예외상황을 끝내고, 그들의 정상 상태, 사실은 과거의 애브노멀 상태로 돌아가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정말 그런 저의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등교 개학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잠시 싹이 피어오르는듯 하던 학교의 노멀은 마치 1980년 서울의 봄이 5.17 확대 계엄으로 사라져 버리듯 스러지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광주 민주화 운동이 스러지고 만 그 무렵인 5월 하순. 모처럼 찾아왔던 학교의 봄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교사들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사라졌다. 잠시 자각했던 교육자로서의 자부심도 사라졌다.

교사들은 자신들을 교육자가 아니라 방역 업무의 최 말단 직원으로 취급하려는 관료제의 압력 앞에 모멸감을 느꼈다.

반면 그 동안 공문발송 금지, 각종 정책사업 중단, 그리고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ICT 때문에 간섭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온라인 수업 등으로 풀이 죽어 보이던 교육청 관료들과 교장, 교감들이 아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00쪽이 넘는 방역 매뉴얼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면서 온갖 보고양식과 점검리스트를 휘두르면서.

그러나 광주 시민들을 총칼로 쓰러뜨렸다고 서울의 봄, 그 찬란한 기억이 사라지지 않았듯, 학교의 진정한 노멀, 교사의 진정한 정체성을 한달이나마 경험하고 그 맛을 기억하고 있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른바 관리자와 선배들의 무능한 민낮을 확인한 20-40 교사들이 과연 과거로 순순히 돌아가려 할까? 이 모멸감을 계속 감수하려 할까?

어쩌면 곧 우리나라 교육의 중요한 분기점이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뉴노멀이라는 이름의 애브노멀로 회귀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라도 학교에서 노멀을 구현할 것인가? 학교는 교육하는 곳이며, 교사는 교육하는 사람이라는 이 당연한 상식조차 ‘시기상조’ 따위의 말을 들어야 하는 비정상의 깊은 뿌리가 이제야 말로 뽑혀 나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