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자유! 세상에서 이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을까? 자유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횃불과 같다. 횃불이 없이 어둠 속에서 사는 것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을까? 

미국 뉴욕 맨하탄에 우뚝 솟은 횃불을 든 자유의 여신상을 보라. 누가 그 횃불이 비추는 세상에서 암흑과 구속, 폐쇄와 죽음, 그리고 절망과 상실을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희망과 활력과 자유와 생명을 주장하지 않겠는가? 

일찍이 미국에선 개인의 자유를 쟁취하기 페트릭 헨리(Partrick Henry)가 1775년 의회 연설에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며 자유인이 되느냐 아니면 노예가 되느냐의 선택을 촉구했다. 

수많은 전쟁과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획득한 자유의 세상에서 지금 세계인들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pandemic)으로 개인과 사회, 국가의 자유를 제한당하고 있다. 

봉쇄와 격리, 이동 제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평범한 일상의 자유를 박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염병 위기의 시기에 인간의 자유를 최대로 지키기 위해서는 특별한 행위가 필요하다. 바로 사회적 연대의 중요성을 자각하는 것이다. 

서구사회는 코로나19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대응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방역 모범 국가로 인정하고 전례 없는 칭찬을 퍼붓고 있다. 하지만 씁쓸하게도 그 이면엔 문화적 차이를 내세운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구의 80%가 마스크를 쓰면 전염률을 12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인은 하루에 1000명 이상이 죽어가면서도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마스크 쓰기를 거부한다. 

(사진=kbs 캡처)

최근엔 유럽에서 오히려 마스크를 쓴 사람의 출입을 금지하는 클럽도 나오고 있다. 미국은 국가지도자부터 공공연히 마스크 쓰기를 저항한다. 또 감염 경로를 추적해 감염 위험자를 격리하는 것을 사생활과 자유의 침해로 간주하여 체계적으로 감히 시행을 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방역 정책이 한국보다 못한 이유를 정당화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에 대한 철저한 신념에 은근히 자부심을 내비친다. 

즉, 우리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면서 전체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일사불란하게 국가적인 방역을 펼쳐나가는 것에 어쩌면 자신들의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문화적 우월성을 과시하는 듯하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보자. 우리는 최근에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를 개막했다. 물론 무관중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세계인들은 이를 부러워하며 130여 국가는 이를 중계방송하고 있다. 그뿐이랴. 한국에서의 선수 생활을 위해 입국을 한 외국 선수들은 한국을 자국과 비교하며 부러워하고 개막전에서부터 ‘♯덕분에 챌린지’를 온몸으로 표현하였다. 

이쯤에서 과연 문화 강국이란 세계의 선진국(영국, 프랑스, 미국 등)들과 한국 중 어느 나라가 코로나 위기에서 더 많은 개인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 되돌아보자. 그들의 아이들은 놀이터에 나가서 놀지 못하고 부모들은 집에 갇혀 재택근무와 홈스쿨링을 병행하고 있다. 

일부 대학에선 가을 학기까지 온라인 수업을 선언했다. 또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고 무료급식소 앞에 줄을 서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어떤가? 경제침체와 실업의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은 친구들을 모아 생일파티를 하고 시민들은 맛집을 찾아 줄을 서고 연휴와 주말에는 제주도와 관광지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이런 한국인의 일상의 자유를 보면서 어느 곳이 진정으로 자유를 누리는지 판단해 본다. 

현대인은 모든 게 연결되어 더불어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울리히 백(Ulrich Beck. 1944~2015)은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라 정의했다, 또한 현대는 4차 산업혁명으로 전 세계가 ‘초연결사회’로 가고 있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위험요인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실례로 우리는 타인의 건강을 걱정하고 또 고마워하는 시대를 산다. 개인만의 절대적 자유란 환상에 불과하다. 

이젠 어떤 자유, 누구의 자유인지에 대해 사회적 선택을 피할 수 없다. 코로나 시대는 인류가 사회적 연대를 통해서 ‘나 하나’가 아닌 ‘나와 가족, 이웃, 친지를 위해서’라는 연대의식이 필수적이다. 이것이 결국 소중한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현명한 지혜다.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br>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