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박사/ 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구원

[에듀인뉴스] 요즘은 넘쳐나고 넘쳐나는 게 만화지만, 그것이 그렇게 흔하지 않고 한편으로는 금기시되기까지 하던 내 어릴 때도 만화 읽기는 정말 인기 있는 놀이였고 취미생활이었다. 

독서의 호흡이 짧던 시절, 장편이어서 당시의 내게 조금 벅찼던 만화가 하나 기억나는데 ‘바벨 2세’라는 제목이었다. 

요코야마 미츠테루라는 일본 작가의 작품이란 사실은 먼 후에나 알게 되었지만.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의 후손으로 초능력자인 주인공이 대개의 소년만화 안티히어로가 그렇듯 지구정복을 꿈꾸는 악당과 대적하는 설정이었고, 역시 초능력자인 그 악당이 대단히 강해 몇 번이나 죽었는데도 되살아나곤 해서 어린 마음에 진저리쳤던 기억까지 있다. 

기억에 의하면 죽은 악당을 살려내는 한 에피소드는 바로 ‘바이러스 인간’의 존재였는데, 태어나서 처음 접했던 그 바이러스란 단어는 그렇게 지구 평화를 해치는 부정적인 의미로, 무시무시하게 다가왔다고 볼 수 있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무시무시한 바이러스는 2차원의 만화책이 아닌 3차원적 현실에서 나의 시간에 침투해 있다. 

이 바이러스는 만화에서처럼 악당을 살려내는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누가 악당인지 정의내리기 힘든 세상이기도 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요소로 2020년 전 세계에 그 존재를 각인시키고 있다. 

적절한 대응에 잡힐 듯 잡힐 듯하던 COVID-19는 인간의 31가지 이기심과 66겹의 거짓말 앞에서 활로를 찾아 회심의 미소를 띠며 추적자들을 비웃고 있는 모양새다. 7차 감염자까지 나왔으니 앞으로 그 수는 점점 더 커질 확률이 크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쩌면 조금 이를지도 모르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아니라 ‘코로나와 함께 (해야만) 하는’ 시대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예측도 조심스레 해 본다. 

코로나가 야기한 문제들에 대해 정치적 해법을 제시한다거나, 그것들을 경제적인 지표로 치환시킬 능력은 당연히 없지만 그래도 조금 배웠다 싶은 일반인으로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에 대해 조금의 비약을 동반한 예측은 해볼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 든다.

겸상적혈구빈혈증(鎌狀赤血球貧血症, sickle-cell anemia)이라는 유전질환이 있다. 혈액 중 적혈구의 모양은 원래 가운데가 움푹 파인 얇은 원반 모양인데, 이것이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 단백질의 유전자 변이로 낫 모양으로 변형되어 발현되는 것이다. 

겸상적혈구빈혈증.(출처=나무위키)

결과를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유전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황달이나 부종 등 혈액 관련 많은 병 및 그로 인한 합병증에 시달리게 되고, 필연적으로 기대수명은 남성 42세 여성 48세 정도로 평균 수명보다 현저히 낮다. 

이 유전질환이 1944년 처음 발견되었고, 현재 또 가장 빈번히 발견되는 곳은 아프리카 대륙인데 이는 이 낫 모양의 적혈구를 가진 사람들은 말라리아에 강한 내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즉 모기로 전염되는 치명적인 말라리아에 노출된 아프리카 대륙에서 세대를 거치면서 낫 모양의 적혈구를 가진 사람들이 살아남았고 또 그 유전인자가 계승되었기 때문이다.(미국 흑인 가운데에서는 400명 중 한 명 꼴로 발생한다고 한다.) 

평균기대수명은 많이 낮아지지만 당장에 말라리아로 죽어가는 것보다는 변형된 이상 적혈구와 생존 유예기간을 맞바꾸었다는 표현도 결과적으로는 그닥 틀리지 않을 것이다. 

21세기의 인류는 어떻게 될까? 퇴치의 길이 점점 험난하게 보이는 요즘, 필연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출되게 된 우리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전쟁이나 인플루엔자 같은 급작스런 인간 몰살(표현이 좀 거세긴 하다)의 형태가 아닌, 조금씩 조금씩 야금야금 공포심을 부풀리며 우리 옆에 자리 잡은 코로나 바이러스. 그 사실을 인정하며 이 시대를 지혜롭게 살아나갈 방법을 강구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검사가 있고, 확진자가 있고, 사망자도 있지만 완치자도 존재한다. 또 별다른 증상 없는 감염자도 분명히 있다. 

앞으로는 바이러스를 견딜 수 있는, 달리 말하면(어감은 좋지 않지만)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갈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살아남게 되지 않을까? Homo sapiens paracovidus 정도로 불릴 신인류가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신인류가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갈 능력을 갖추기 위해 지불해야할 대가가 무엇일지는 아직 가늠되지 않는다. 

겸상적혈구증의 경우처럼 그 대가가 수명일 확률도 꽤 크다고 느낀다. 

100세 시대라는 단어가 역사의 관점에서, 진화의 연대기에서 아주 짧은 찰나가 될지도 모른다고 뜬금없는 상상을 하니 여러 모로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과연 내가 그 신인류에 포함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은 다음 순서다. 

감염 후 완치된 사람들은 꽤 많은데 그 중 치료제 개발을 위해 꼭 필요한 혈장 기부자는 적다는 소식을 접했다. 혹자는 묻는다. 돌연변이가 심한 바이러스의 백신 개발이 성공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고. 

그러나 확률을 무시하고 해야만 하는 일들도 있을 것이다. 자연계 생물들은 자기 종의 생육과 번성과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도 당연히 자연의 일부다. 

※ Homo sapiens paracovidus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류를 말하는 Homo sapiens라는 학명 뒤에 covid와 같이, 곁에서(para)라는 의미의 단어를 합성해 필자가 임의로 붙인 것입니다.

이정은 
이정은

이정은=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석사를 거쳐 같은 대학 생화학 연구실에서 특정 단백질에 관한 연구로 생물학 박사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충북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고 충북대와 방통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복지관에서 세계문화와 역사교실 강좌를 담당하며 어린 시절 꿈이었던 고고학자에 한 걸음 다가갔다. 또 계간 '어린이와 문학' 편집부에서 함께 일하며 인문학에서 과학으로, 다시 인문학으로 넘나들면서 크로스오버적 시각에서 바이오필로피아를 담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