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민, "모네의 물결(2015)">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모네, 빛을 그리다>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모네는 <인상, 해돋이>이라는 독특한 그림으로 인해 평단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으나 결국 프랑스에서 ‘인상파’라는 새로운 화풍을 주도한 화가로 기억됩니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수련>을 그린 연작은 중, 고등학교의 미술 교과서 혹은 인터넷에서도 많이 접해보셨을 겁니다. 저도 몇 년 전, 뉴욕의 현대 미술관(MOMA)에서 접했던 모네의 <수련>이 아직도 인상에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명상적이었던 그 그림은 고요함, 깊음, 신비로움을 담고 있었습니다.

모네는 다양한 소재를 캔버스에 옮겼는데 저의 눈길을 가장 끌었던 것은 사랑하는 아내이자 뮤즈였던 카미유를 그린 그림들이었습니다. 모네와 카미유. 화가와 모델이라는 신분으로 만나서 집안의 극심한 반대를 극복하고 결혼, 아이 둘을 낳고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 시기에 모네가 그린 그림들을 보면 사랑이 담긴 듯 따뜻한 색채감이 그림에 가득합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죠. 하지만 많은 예술가가 그렇듯이 모네도 왕성한 호기심,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오히려 빠져드는 성격을 가졌었나 봅니다. 자신의 친구의 아내와 바람이 나고 그러는 사이 카미유는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납니다. 바람이 났던 여자와 두 번째 결혼, 하지만 모네는 카미유를 잊지 못했는지 수양딸로 하여금 카미유를 그렸던 그림과 똑같은 포즈를 잡게 하고 그를 그렸다고 합니다. 부모와 의절하면서까지 이룬 인연이고 결혼이건만 허무하고 씁쓸하게 막을 내린 모네와 카미유의 사랑..

우리가 위대한 화가들로 기억하는 피카소, 클림트, 모딜리아니. 그들의 공통점은 여자 모델들과 끊임없이 염문을 뿌리는 등 복잡한 사생활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피카소는 말년에 50세 연하의 애인과 바람을 피고 그 사이에서 사생아를 낳는 등 입이 떡 벌어질만한 스토리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과 같이 바람기 넘치는 예술가들을 보며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예술가에게 있어 사랑이란 어떤 개념일까? 비제의 카르멘이 노래했던 것처럼 그들에게 사랑이란 ‘잡지 못할 자유로운 새’와 같은 것일까? 그들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즉 여자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인가? 한 명의 뮤즈가 주는 영감의 양이 제한적이라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필요한 것인가? 많은 사랑만큼이나 깊은 고통과 시련을 겪은 예술가만이 더 높은 수준의 예술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인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흥미로운 주제들입니다.

이번 전시회의 특이했던 점은 디지털 기술과 미술 작품의 결합으로 인해 관객들로 하여금 그림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전시라는 것입니다. 앙드레 가뇽의 피아노 선율과 함께 잔잔히 흔들리는 붉은 꽃잎,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풀밭, 눈 덮인 울타리 위로 날아와 날개를 정리하는 까치.. 마치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장면들을 직접 목격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오늘 보여 드릴 그림은 모네의 예술 세계를 오감으로 감상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그린 <모네의 물결>입니다. 모네의 그림 중 여자와 아이가 붉은 양귀비 밭을 거니는 그림이 특히 기억에 남아 붉은 빛 넘실대는 양귀비를, 부드러운 듯 거친 듯 그 중간의 모습을 띈 물결과 구름 표현에서 영감을 받아 물결을 그려보았습니다. 파스텔과 색연필의 부드러운 질감을 살려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는 작품입니다.

이와 어울리는 음악으로는 체코 출신의 작곡가 드보르작의 가곡집 <집시 멜로디> 중 4번째 악장인 <Songs my mother taught me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를 소개해 드릴게요. <집시 멜로디>는 집시들의 문화와 음악을 담은 7곡으로 구성된 연가곡집입니다. 독일 시인 아돌프 하이두크의 시를 읽고 크게 감동을 받아 선율을 붙인 곡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의 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 어머니가 나에게 가르쳐 주신 노래.

    오래 전 지나가버린 어린 시절,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네.

    이제 내 아이들에게 그 노래를 가르쳐주어 아름다운 멜로디를 부르네.

    나도 눈물이 흐르네. 보속 같은 기억 속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눈물이...“

이 노래를 듣고 있자면 따뜻한 봄에 호숫가에 나가 앉아 잔잔한 수면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햇빛을 바라보며 느낄법한 나른함이 느껴집니다. 제목에 ‘어머니’라는 단어가 들어가서일까요. 포근하고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도 듭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영감의 원천, 예술의 근본은 자연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모네도 예외가 아니죠. 자신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시시각각 빛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자연을 캔버스에 옮기기 위해 평생을 바친 모네. 그에게서 영감을 받아 그린 저의 그림 <모네의 물결>, 넘실대는 강의 물결이 연상되는 드보르작의 음악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의 조합이 꽤 어울리는 것 같지 않나요? 

 

<<Anna Netrebko, "Songs My Mother Taught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