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로 읽은 오늘] 내가 만난 세 명의 시각장애인 "그들이 보는 세상이 따뜻하길"
[프랑스로 읽은 오늘] 내가 만난 세 명의 시각장애인 "그들이 보는 세상이 따뜻하길"
  • 홍성주 프랑스 유학생/ 예술가
  • 승인 2020.06.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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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 볼 수 없는 눈으로 보는 세상

[에듀인뉴스] "저희는 프랑스 파리에 사는 행정가, 건축가, 예술가, 보건전문가, 경영전문가, 평범한 직장인과 유학생 등입니다. 언젠가 자신의 전공과 삶을 이야기하다 한국의 많은 분과 함께 나누는 매개체가 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서로 다른 다양한 전공과 각자의 철학과 시선으로 느끼고 바라본 프랑스 이야기에서 시사점을 얻어가길 바라며 프랑스의 한국인 이야기를 관심 갖고 지켜봐주십시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에듀인뉴스]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랑한다. 사랑과 환대, 우울과 서러움, 마음의 연약함과 따듯한 시선. 이를 표현하고 싶은데, 보이지 않는 걸 노래하려면 직접 살아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프랑스에 살 때 다양한 흐름에 몸을 맡기며 살았다.

타지 사는 이방인으로서 여러 상황이 생기다 보니 보이지 않는 것, 보지 않으려 하는 것,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늘 생각했다.

‘눈으로 본다는 것은 무엇이며 나의 시선은, 또 사람들의 시선은 왜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복잡한 걸까? 있는 그대로 본다는 건 어떤 걸까?’

이런 물음을 가지고 살다보니, 실제로 눈이 보이지 않는 맹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출처=https://www.lesauxiliairesdesaveugles.asso.fr)
(출처=https://www.lesauxiliairesdesaveugles.asso.fr)

함께 할 수 있는 단체를 찾아보다가 <Les auxiliaires des aveugles>(레족씰리에흐 데자뵈글르: 맹인의 조력자 라는 뜻)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이 곳은 Bernard de Fougy(베흐나흐 드 푸기)라는 사람이 53세에 시력을 잃으면서 자신을 포함한 맹인들이 더 나은 삶을 살고 눈이 보이는 사람의 세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50여년전에 세운 단체이다. 현재는 공공단체로 인정받아 프랑스 24개 지역에 존재한다.

그룹 미션과 개인 미션이 있는데, 그룹 미션은 눈이 보이는 사람과 눈이 안 보이는 사람 여러 명이 함께 하이킹을 하거나 문화 활동을 하는 것이다. 개인미션은 도움을 요청한 사람과 함께 슈퍼, 병원, 학교 등에 다녀오거나 집에 방문하여 말동무 또는 서류 분류를 돕는 것이다.

단체에 지원서를 보내고 대면 면접을 거친 뒤 바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첫 활동, '안느'와의 하이킹...맹인과 함께 걸어가는 방법은?


첫 활동으로 그룹 하이킹을 갔다. 맹인 한명에 자원봉사자 한명이 짝이 되어 여럿이서 함께 숲속을 세 시간 가량 걸었다. 처음이라 많이 긴장했었는데, 짝이었던 ‘안느’가 많이 도와줬다.

안느는 자전거 마라톤에도 참여할 정도로 활발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오히려 눈은 보이나 몸이 약한 나를 안느가 이끌어주기도 했다.

첫날 안느에게 배운 맹인과 함께 걸어가는 방법이다.

△절대 맹인의 팔을 먼저 잡아당기면 안 된다. △팔을 느슨하게 풀어서 상대가 스스로 내 팔을 잡고 갈 수 있도록 한다. △방향, 계단, 사물을 늦지 않게 말해준다. △바닥이 울퉁불퉁하면 미리 말해줘서 걸을 때 다리를 높이 들어 넘어지지 않도록 한다. △횡단보도 앞에 멈추기 전에 미리 알려주고 건널 때는 차가 오는 쪽에 선다.

안느와 함께 숲속을 걸으면서 햇볕이 강물을 어떤 색깔로 반짝반짝 비추고 숲속이 얼마나 푸르른지, 지금 어떻게 생긴 나무를 지나고 있는지 등을 말해 주는 게 좋을지 안 하는 게 나을지 헷갈렸다. 그런데 처음 만난 사이에 감히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두 번째 만남 '로렌스'..."나는 왜 로렌스를 부르지 못했을까"


학교 다니면서 계속 개인 미션과 그룹 미션에 참여하다가 ‘로렌스’를 만났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눈이 안보였고, 세르지(Cergy. 학교와 집이 있던 파리 동북부 근교도시) 시청 수질 관리부에서 일을 하는 키가 작고 부드럽게 웃는 여성이었다.

그녀와 첫 개인 미션으로 파리 시내에 있는 맹인 교육 센터에 같이 갔고 두 번째는 마트에서 장보는 것을 도왔다.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친해졌다. 그때가 연말쯤이었는데, 로렌스는 내가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낸다는 걸 듣고 그의 가족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해줬다. 덕분에 유학생활 처음으로 친구의 가족과 따듯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다.

맹인 학교에서 만나(내 기억이 맞는다면) 결혼한 그녀의 조용한 남편, 밝고 똑똑한 고등학생 딸, 그리고 친근한 그녀의 부모님까지 나를 따듯하게 맞아주셨고, 우리는 참 좋은 시간을 보냈다.

체리맛 술이 들어간 초콜릿 한 상자를 선물로 받아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내 마음은 가장 귀하고 무겁지 않은 것으로 꽉 찬 느낌이었다.

맹인이라면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볼 줄 알았는데, 이것도 내 편견이었다. 로렌스는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지도, 또한 그렇다고 덜 보지도 않는 내 친구였다.

그렇게 지내던 중 나는 무릎이 아파서 일 년간 휴학하고 한국에 갔다. 원래 로렌스와 따로 연락을 자주 주고받지는 않아서 그 동안 서로 연락하지는 않았다. 1년 후 프랑스에 돌아와서 어느 날 시청 앞을 지나가면서 그때 처음으로 다시 그녀를 봤다.

순간, 그녀의 이름이 생각이 안 났다.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녀가 내 어깨를 스칠 정도로 가까이 지나가는 순간, 숨을 멈추고 그녀를 부르지 않았다.

이름 말고 다른 것으로 불러도 됐을텐데, 왜 나는 그녀를 부르지 않은걸까? 스스로 마음을 들여다보기가 두려워서 한동안 멍하니 지냈다.

나를 못보고 스쳐지나가는 그녀를 바라보던 내 시선에는 뭐가 들었기에 그녀를 모른 척 했는지 오래 생각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로렌스’라는 이름은 내게 더는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러다 몇 달이 지나 시청 앞을 지나는데, 로렌스를 또 마주쳤다.

“로렌스! 나 성주야!” 하고 다가갔다.

내 이름을 기억 못하면 어쩌나 했지만, 그녀는 내 목소리를 기억할 뿐더러 2년 전 내가 스치듯 말해준 부모님과의 유럽여행계획까지 기억하며 그때 여행을 잘 했냐고 물어봤다.

그때 로렌스를 내가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데, 그 후로 우리는 두세 번 더 마주쳤고, 약간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사이로 남았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세 번째 만남, 보고 싶어하던 '뽁뜨홍' 할머니..."당신이 보고프다"


무릎이 아프고 나서부터는 실내 개인 미션으로 방향을 바꿔서 집 방문을 통해 편지도 읽어주고, 주로 말동무를 했다. 방문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많고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많았다.

그 중 내가 매주 화요일 3시에 말동무하러 방문했던 ‘뽁뜨홍’(Portron) 할머니가 특히 그랬다. 사실 그녀는 맹인이 아니었다. 눈이 거의 안보인지는 몇 년 되지 않았고 당시에도 컨디션이 좋을 땐 빛이나 형체를 인지할 수 있다고 했다.

눈이 아주 안 보이는 것과 아주 조금 보이는 것의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내가 만났던 눈이 아예 안 보이는 사람들은 더 이상 보이는 것에 집중하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보이는 것에 모든 마음을 건 듯했다.

설상가상으로 한번 집안에서 크게 넘어진 후로 잘 걷지 못하게 돼서 우울해했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들어가 인사를 하고 앉자마자 그녀는 네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본인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를 하며 울다가 불평하다가 체념하다가를 반복했다.

내 이름을 소개할 시간도 없었다. 이야기를 듣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 이만 가봐야겠다고 했는데, 할머니가 “우리 서로 잘 맞는 것 같으니 다음에 또 봤으면 한다”고 했다.

‘아, 이분은 그냥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거구나.’

그래서 파리를 떠나기 전까지 몇 달 간은 매주 할머니를 방문했다. 그녀는 눈이 점점 더 안보여 절망에 빠져있었다. 위로해주고자 매주 기타를 들고 가서 노래를 불러드렸는데, 좋아하시긴 했지만 우울감은 금방 다시 찾아왔다.

근본적으로 그녀는 가족을 원했지만 주변에 챙겨주는 가족이 없었고 나는 그녀를 덜 외롭게 해주는 이였지만 가족은 아니었다.

나도 무릎이 안 좋아져 더 이상 무거운 걸 들지도, 오래 걷지도 못하게 되었을 때 깊은 우울에 빠졌고 지금도 이겨내는 중이다. 그럴 때 용기를 주고 책임져주는 가족이 없다면 이겨내기 많이 힘들 것 같다.

뽁뜨홍 할머니네 집에서 바깥으로 나가려면 돌계단이 5개 있었는데, 계단이 가팔라 할머니 스스로는 나갈 수가 없었다.

'할머니네 집에서 나가는 계단을 부드럽게 만들 수 있을까? 그러면 바깥에 나와 얼굴에 부는 바람과 햇볕으로 조금은 기쁨이 되지 않을까? 계단 경사를 완만하게 하기 위해 나무 기둥을 놓고, 그 위에 두껍고 긴 널빤지를 깔아서 내리막길을 만들면 가능하지 않을까?'

홍성주 유학생(예술가)는 "뽁뜨홍 할머니네 가파른 계단이 어떻게 하면 부드러워져 그녀가 밖으로 나와 따듯한 바람을 느끼고 볼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작품 설명을 했다.(그림=홍성주)
홍성주 유학생(예술가)는 "뽁뜨홍 할머니네 가파른 계단이 어떻게 하면 부드러워져 그녀가 밖으로 나와 따듯한 바람을 느끼고 볼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작품 설명을 했다.(그림=홍성주)

할머니를 가끔 보러오는 멀리 사는 친척에게 이런 생각을 적어서 그분이 왔을 때 전해달라고 했지만, 쪽지를 잃어버린 건지 아니면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여겼는지 친척에게서 연락은 없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이전에 나는 뽁뜨홍 할머니를 책임질 수 없는 그저 일주일에 한번 오는 자원봉사자일 뿐이었다. 나의 열심은 그녀에게 독이 될 수 있었고, 나는 그걸 감당할 수 없었으며, 할머니 주변에는 그걸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나는 파리를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다. 떠날 때 할머니가 무척 서운해 하셔서 여행 중 편지를 몇 통 보냈는데, 받아서 누군가 읽어드렸는지는 모르겠다.

최근 봉사단체에 전화해 할머니의 근황을 물어봤는데, 두 달 전 멀리 사는 친척이 스트라스부르그로 모셔갔다고 했다. 같이 사는 것은 아니고 친척집 가까이 있는 요양원에 가신 것 같다. 그래도 안심이 되었다.

뽁뜨홍 할머니가 외롭지 않게 가족과 친구와 남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눈이 아예 안보이게 되더라도 그녀의 보이지 않는 세계가 따뜻했으면 좋겠다.

홍성주.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재학 중 예술에 반해 중퇴한 후 프랑스로 갔다. 엑상프로방스 시립 순수미술학교에 입학, 남부의 따뜻한 햇살과 함께 자유로운 미술공부를 시작했으며 다시 다른 맑은 에너지를 찾아 세르지 국립 고등미술학교에 편입, 깊은 경험을 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자신에게 정직해야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학교 다니는 동안 모로코의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을 통해 타인을 내 속안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바라보기도 했고, 또 독일 학생들과 40년된 1톤짜리 오프셋 인쇄기를 사서 트레일러에 싣고 두 나라를 가로지르며 여러 메시지를 인쇄하는 여행을 1년간 추진하다가 실패해 보았습니다."

"환대의 형태와 멜로디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하면서요.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랑한다면, 그것을 살아보는 수밖에 없잖아요. 찾아가는 길목에서의 작은 만남들을 언어로, 목소리로, 노래로, 가끔은 선과 색깔로 남기면서 느릿 느릿 가 보는 중입니다. 타지 사는 외국인으로서 여러 상황이 생기다 보니, 보이지 않는 것, 보지 않으려 하는 것,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늘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프랑스 순수미술학교를 다니며 살아본 몇 가지 소중한 순간들과의 만남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홍성주 프랑스 유학생/ 예술가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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