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자들의 횡포를 뜻하는 ‘갑질’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조선시대 한양 한복판 북촌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소재로, 사건을 은폐하려는 ‘갑’과 침묵을 강요당하는 ‘을’의 관계를 치밀하게 추적한 소설이 출간됐다.

방촌문학사는 최근, 북촌마을 한 대갓집에서 발생한 미묘한 살인사건의 전말을 통해 조선시대의 신분격차와 그 비애를 드러낸 고옥귀의 소설 <북촌로 향기>를 펴냈다고 밝혔다.

이 소설은 자신의 아비가 난자당하는 끔찍한 살인사건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하고도 그 범행을 진범이 아닌 하인 김 씨에게 덮어씌운 정경부인과 그를 둘러싼 관련인들의 비애를 다루고 있다.

권위와 가문을 주요시했던 양반의 허위의식과 근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작품으로, 특히 지아비를 지키기 위해 갖은 간계를 꾸미는 양반 댁 정경부인의 행태를 전면에 부각시켜 독자의 몰입도를 높이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작가 고옥귀 씨는 시인 특유의 감성 터치로 등장인물 상호간의 긴장 관계를 밀도 있게 그려냈고, 또 여성만이 발휘할 수 있는 섬세한 상황 묘사로 작품의 재미를 더했다.

특히 정경부인이 휘두르는 막강한 권력의 힘, 그리고 그 반대편에 서 있는 힘없는 조선시대 노비들의 비참한 삶과 그들이 감내해야 했던 억울한 인생은 현대 사회의 ‘갑’ ‘을’ 관계와도 닮았다.

저지르지 않은 죄를 뒤집어쓰고 죽으라면 죽어야 하는 노비 ‘을’, ‘을’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을 또 다른 살인 폭력으로 잠재우는 무소불위 양반의 힘 ‘갑’. 거기에 침묵하는 무기력한 주변인들... 이들 삼각관계는 현대에도 엄연히 존재한다고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강조하는지도 모른다.

한편 사건 당시 현장의 전말은 물론, 이후에 발생하는 정경부인의 갖은 악행과 연이어 발생하는 또 다른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되는 열 살 거지 소년 미홍의 시선을 통해 극단적인 인간의 양면성도 적나라하게 표출된다.

하지만 작가는 바로 이 거지 소년 미홍을 통해 신분의 벽이 허물어지는 일면도 그려내고, 사건의 결말을 통해서 힘없는 노비들의 애환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도 준비하고 있다.

종결을 향해 치달을 즈음 이야기의 발단이 된 사건의 계기가 밝혀지는데, 소년 미홍도 미처 보지 못했던 이 끔찍한 살인사건의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