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자’로서 대학, ‘소비자’로서 학생 간 이해관계 일치된 걸까
포스트 코로나시대 비대면 아닌 더 평등하게 만나는 세상돼야

[에듀인뉴스] ‘대학이 문제’라는 주장은 한국사회에서 식상할 정도로 당연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만큼 사회구성원 모두가 지금의 대학이 가진 한계에 대해 공감한다. 하지만 그에 비해 대학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공간은 현저히 부족하다. 교육에 대해 말하는 테이블에서 고등교육은 전문가 영역으로 취급되고, 청년에 대해 말하는 테이블에서 대학은 기득권으로 비춰지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대학’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답답한 대학사회에 균열을 내고 싶다. 그 균열이 더 나은 대학을 만드는 길에 하나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ZOOM 홈페이지 캡처
ZOOM 홈페이지 캡처

[에듀인뉴스] 코로나19 시대가 도래한 이후 사회 곳곳에서 회의가 줌(zoom)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솔직히 처음 화상회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비웃었다. 어떻게 만나지 않고 제대로 회의가 가능할까, 그저 점검과 공유 정도라면 모를까. 

그런데 점차 주위에서 화상회의의 용이함과 편리성에 대한 언급이 늘어났고, 그래서 갸우뚱했다. 그다음 직접 화상회의에 참여하고 진행해보고 나선 놀랐다. 몸을 이동하지 않아도 되니 오프라인 회의보다 편리했던 것은 물론이고, 회의 진행에 있어서도 논의가 더 신속하고 효율적이었다. 

자신의 발언 순서가 아닐 때는 음소거 기능을 이용하니 회의 진행이 용이했고, 각자 발언 순서와 시간에 따라 동등하게 발언권이 보장되니 빅마우스가 존재하기도 힘들었다. 의견 충돌이 있어도 동시에 말하며 논쟁하지 않으니 내용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다. 

회의는 깔끔했고 간결했으며 회의결과도 명확하게 숙지되었다. 그러나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과 우려가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가 만나지 않는다는 것에서부터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1학기 동안 대다수 대학에서 비대면 강의를 진행했다. 급작스러운 오프라인 수업 중단에 각 대학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미 사이버 대학이라는 모델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참고하기는커녕, 전체적인 가이드라인조차 제공하지 못했고 강사들 각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했다. 

초기 비대면 강의 양상에선 수업마다 온라인 플랫폼이 단일하지 못한 문제, 노트북이 없으면 수업을 듣지 못하는 문제, 질의응답이나 토론 없이 교수의 1인 유튜브 방송이 되어버리는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이 속출했다. 

시험을 볼 때 커닝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채팅을 통해 선착순으로 답안을 제출하게 하는 웃지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이에 학생들은 이 정도 수준의 강의를 듣기 위해 비싼 등록금을 낸 것이 아니라며, 등록금 환불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느끼는 문제의식은 비대면 강의 그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금 더 적나라하게는 “비대면 강의로 대학당국과 학생 모두가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대학은 한번 찍으면 몇 번을 재탕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교육을 ‘판매’할 수 있어 좋다. 실시간 화상 강의가 가능하도록 하는 플랫폼을 가진 기업들은 이를 대학에 ‘판매’할 수 있어 좋다. 

대학을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은 감소할 것이고, 새로운 교육 시장에서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니 수지도 맞는다.

대학은 비대면 강의를 온라인 교육 시장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어떨까. 수업을 수업으로만 ‘소비’할 수 있어서 좋다. 수업의 질은 크게 상관없을 수도 있다. 

만약 대학을 다니는 이유가 학사절차를 진행한 뒤 졸업장을 받아내는 것뿐이라면, 이보다 더 편할 수가 없다. 

이렇게 ‘판매자’로서의 대학과 ‘소비자’로서의 학생 간 이해관계가 일치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대학이고 또 교육이라 할 수 있을까. 지금 필요한 목소리는 우리의 대학이 이미 비대면 강의만으로도 유지될 수 있을 만큼 많은 부분에서 무너져왔다는 성찰이 아닐까.

대학은 교육과 연구의 공간이다. 지식 생산의 공간이다. 그리고 이는 연구자만의 영역이 아니다. 대학은 연구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연구자와 학생이 만나고, 강의와 수업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서로가 대화한다. 

이 과정에서 성장하는 것은 학생만이 아니다. 질문과 토론을 통해 예상치 못한 지적 부딪힘을 경험하고, 이 과정에서 지적 자극과 성장의 계기가 생겨난다. 

한 명씩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하는 온라인상에서의 깔끔함은 없지만, 강의실에선 서로가 동시에 손들고 말하고 뒤섞이면서 우리가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강의실 밖에서 이 모든 행위가 가능하도록 지탱하는 노동자들의 가치 또한 여기서 함께 의미가 생겨난다. 이때 우리는 판매자와 소비자가 아니라, 모두가 지식 생산의 주체가 되는 경험을 미약하게나마 경험할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두렵다. 물리적 거리두기를 통해 우리 모두가 경험한 것은 거리를 두어보니 일상이 편해졌다는 것이다. 나가고 싶지 않은 회식과 모임에 갈 필요가 없어졌고, 나가고 싶은 모임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 얼마나 피로한 일이었는지를 깨달아 버렸다.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잃게 될까 두렵다. 편리하다는 것은 때로는 불편하지만 마주해야 할 것을 외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우리가 만나지 못하는 사이, 뒤바뀔 사회의 모습이다. 비대면 강의에 대한 찬사 이면에는 온라인 수업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교육 시장의 확대에 대한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교육의 영역뿐만이 아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그 이전과 달라야 한다는 명분으로 의약 산업, 고용환경 등에 대한 규제 완화의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에 대한 저항은 ‘만남’으로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못 가진 자들의 무기는 서로 만나고 함께하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리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 코로나19의 위협에서 우리는 생존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그동안 지속해온 만남과 부딪힘에 대한 해방이 되어선 안 된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세상이 달라야 한다면, 그것은 온라인과 비대면 영역이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가 더 안전하게 만나고, 더 평등하게 만날 수 있는 세상으로의 변화가 되어야 한다. 

김창인 정의당 교육개혁특별위원장. "09학번으로 중앙대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했다. 대학기업화의 상징인 중앙대에서 두산재단에 맞섰고 그 대가로 무기정학 등 징계폭탄을 맞았다. 대학은 기업이 아니라 교육기관이고, 교육은 시장이 아니라 공공의 영역이라고 믿었다. 이에 저항을 지속하기 위해 2014년 대학을 자퇴했다. 자퇴 이후 '괴물이 된 대학', '추락하는 대학에 날개가 있을까' 등의 책을 저술했고, ‘이상한 대학교’ 프로젝트를 통해 대안대학 만들기 활동을 하고 있다. 정의당에서 교육개혁특별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김창인 정의당 혁신위원. "09학번으로 중앙대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했다. 대학기업화의 상징인 중앙대에서 두산재단에 맞섰고 그 대가로 무기정학 등 징계폭탄을 맞았다. 대학은 기업이 아니라 교육기관이고, 교육은 시장이 아니라 공공의 영역이라고 믿었다. 이에 저항을 지속하기 위해 2014년 대학을 자퇴했다. 자퇴 이후 '괴물이 된 대학', '추락하는 대학에 날개가 있을까' 등의 책을 저술했고, ‘이상한 대학교’ 프로젝트를 통해 대안대학 만들기 활동을 하고 있다. 정의당에서 교육개혁특별위원장을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