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의 크로스오버] ⑬전쟁과 클리셰
[이정은의 크로스오버] ⑬전쟁과 클리셰
  • 서혜정 기자
  • 승인 2020.06.17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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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박사/ 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구원

[에듀인뉴스] 2020년, 생명공학 연구의 트렌드는 무엇일까? 의심할 바 없이 WHO로부터 팬데믹 선언까지 이끌어낸 코로나에 대항하는 방법의 연구일 것이다. 그리고 이 전쟁은 맞춤형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어야만 끝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표현을 써봤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살육이 아니라, 어쩌면 SF의 세계에서나 접했던 그런 형태의 전쟁이다. 인류와 비인류의 싸움, SF에서 본 비인류는 세균이기도 했고 외계인이기도 했다.

전쟁이란 표현을 쓰는 만큼, 그들은 적대적이어서 인류를 위협한다. 그 공공의 적 앞에 온 인류가 한마음이 되어서 대적하는 모습도 그 세계에선 하나의 클리셰에 가깝다.

단순한 자연의 관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연을 이용하고 지배하고자 시도된 생명공학 분야의 연구는 인류의 번영과 인간 생명 연장 및 건강한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상주의자들은 공공연히 말하기를 꺼릴 수도 있겠으나, 그 결과물에서 파생되는 경제적 이익도 간과할 수는 없다. 아니, 어쩌면 최대의 목표일 것이다. 

연구제안서를 작성할 때 맨 마지막에 반드시 첨부되어야 할 항목은 ‘이 연구를 통하여 이러저러한 경제적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장밋빛 미래에 대한 안내문이다. 

실현가능의 확률이 얼마이든 간에 일단은 써놓고 봐야 하는 수치다. 그렇지만 전시(戰時)라도 상황이 같을까?

수명 연장과 건강한 삶을 위해선 병마의 극복이 우선이다. 중국 신화 속 신농씨는 인간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알려주기 위해 수많은 식물들을 자신의 몸으로 임상 실험해 그 성분들을 알아보았는데, 그 와중에 복용한 자연의 여러 독성으로 인해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고 했다. 

그 후 많은 세월 동안 인류는 자연에서 병의 치료제를 찾았고, 인류 역사가 주는 경험으로 검증된 것들을 이용해 왔다. 치료제의 개발이라기보다는 발견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발견’은 많은 경우 대단한 운명의 가호, 행운이라 불릴 수 있는 우연이 플러스알파로 필요하기도 하다.

휴가에서 돌아왔을 때 실험실에 열려 있던 배양 접시 속에서 자라난 푸른곰팡이의 존재, 뒤에 페니실린이라 불리게 되는 항생제로서의 역할을 발견한 플레밍(A. Fleming, 1881~1955)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편 제너(E. Jenner, 1749~1823)에 의해 우두법이 발견되어 천연두가 정복되고 백신(vaccine)이란 개념이 정립된 후, 급속도로 발전한 생명공학 기술이 접목되어 오늘날 병마 극복의 최전선에 서 있는 분야는 면역학이 아닐까 싶다.

수십 년 간 화두가 되어온 암의 정복, 20세기 후반기를 강타했던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 그리고 지금 코로나를 물리치기 위한 백신 개발의 연구가 그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금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우리의 면역 시스템을 잘 인지하고 그 기능을 극대화 시키며, 다른 한편으로는 바이러스의 전략과 기능을 잘 파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손자병법의 지피지기란 말은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유효하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지만 이 경우에는 적용할 수 없을 터이고, 시작된 전쟁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할 것이다. 적을 알기 위한 첫 걸음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시각은 가장 보편적이고 믿을만한 감각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이 말해주듯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인문과학이 아닌 자연과학에선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을 적용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자연에서 형태는 기능에 최적화된 방향으로 진화되었을 테니, 일단 눈으로 보고 모습을 확인한 후 그와 밀접한 관계성을 가진 기능을 유추하고 그것을 마비시키는, 혹은 극대화시킬 방안을 찾을 수 있을 터이다. 

그런데 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존재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금방 한 도구를 떠올릴 것이다. 현미경이 광학의 원리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역시 많은 사람이 인지할 것이다. 더 나아가 더 작은 존재들을 확인할 수 있게 만드는 전자현미경이라는 최첨단의 기계 역시 물리학자들에 의해 창안되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전자현미경에 의해 확인된 코로나 바이러스의 생김새를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그 이름이 말해주듯 동그란 구체에 뾰족뾰족한 돌기들이 솟아있는 왕관 같은 모양인데, 그 안에는 유전 정보를 간직한 핵산(RNA)이 들어 있고 표면에 솟아있는 돌기들은 숙주세포와 융합하는 역할을 하는, 스파이크(Spike)라 명명된 단백질이다. 

숙주세포에 침투해 그 안에서 자신의 유전정보로 자신을 수없이 복제하고 결국에는 숙주세포를 파괴하고 번져나가는 것이 바이러스의 대략적인 사이클인데, 연구자들은 이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바이러스의 어떤 기능과 어떤 부분을 타깃으로 삼아 백신을 만들어야 가장 효과적일지를 생각하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한다. 

유전자를 변형시켜 독성을 약화시키거나 혹은 불활성시킨 바이러스, 숙주세포가 결합하는 스파이크 단백질의 부분 조각을 숙주세포에 주입시켜 항체 생성을 유도한다. 효과가 있는 항체가 만들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막대한 물량과 시간과 인력을 투자해도 결과물이 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인간 사회 시장논리와의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다. 백신 개발은 그래서 시장의 논리가 아닌 복지의 관점에서 시도되고 있다. 

적을 알기 위해 생물학 뿐 아닌 물리학 등이 총동원되듯이 나를 알기 위해서는 역시 인류의 한마음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완치 후 배우 톰 행크스는 자신의 혈장을 치료제 개발을 위해 기증했다고 한다. 자신의 몸 안에 남아있는 전쟁 승리의 흔적, 정보를 공유한 것이다. 이렇듯 복지는 누군가가 베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이로운 것을 자발적으로 공유하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다.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인간의 삶에서는 클래스가 영원하듯 클리셰도 영원하니까. 

이정은 
이정은

이정은=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석사를 거쳐 같은 대학 생화학 연구실에서 특정 단백질에 관한 연구로 생물학 박사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충북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고 충북대와 방통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복지관에서 세계문화와 역사교실 강좌를 담당하며 어린 시절 꿈이었던 고고학자에 한 걸음 다가갔다. 또 계간 '어린이와 문학' 편집부에서 함께 일하며 인문학에서 과학으로, 다시 인문학으로 넘나들면서 크로스오버적 시각에서 바이오필로피아를 담은 글을 쓰고 있다.​


 

서혜정 기자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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