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동에서 바라본 여의도쪽 한강 풍경. 서울의 한자 이름 한양(漢陽)은 도시 복판을 흐르는 이 한강, 북쪽의 북한산과 관련이 깊다. 그러나 우리 쓰임새에는 잘 맞지 않는 이름이기도 하다.>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웃는 그 얼굴, 그리워라 내 사랑아 내 곁을 떠나지 마오~”라는 노랫말 아직 기억하시는 분 많겠다. 탁월한 가창력으로 1970년대의 대한민국을 풍미한 패티김의 ‘서울 찬가’ 첫 부분이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해질 무렵 거리에 나가 차를 마시면 내 가슴에 아름다운 냇물이 흐르네~이별이란 헤어짐이 아니었구나~추억 속에서 다시 만나는 그대…”는 어떤가.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이다. 1988년 한국이 처음 개최하는 올림픽 때 늘 서울 하늘 상공에 울려 퍼졌던 아름다운 노래다.

김일성이 벌인 6.25전쟁 와중에 북한군과 중공군에게 두 차례 빼앗겼던 서울이었고, 다시 두 차례 되찾았던 서울이다. 산산골골이 모두 우리 시선에 삼삼하게 떠오르고, 한반도 중남부를 유장하게 휘감아 흐르다 서울을 감싸는 한강의 물빛이 마음속에 선연한 서울이다.

서울은 잘 알다시피 신라의 큰 마을, 즉 수도를 가리키던 ‘서라벌’이 우리말 색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금에 정착한 말이다. 지금의 한강 북녘 서울 판도에 도읍을 정한 조선에서는 이곳을 한성(漢城)으로 불렀고, 다른 이름으로는 한양(漢陽)으로도 적었다. 그 기준으로 삼는 ‘漢(한)’이라는 글자가 지금의 한강(漢江)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북녘으로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북한산(北漢山)을 지칭하는지는 더 따져볼 일이다.

漢城(한성)에 비해 조선시대 내내 더 잘 불렸던 명칭이 漢陽(한양)이다. 이 한양이라는 지명과 관련해서는 중국의 예를 참고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보통 산의 남쪽을 양(陽)이라고 적었으며, 강의 북쪽을 또 이 글자로 적었다. 이를 적용해서 漢陽(한양)이라는 지명을 살피면 제법 그럴 듯하다.

북한산을 기준으로 보자면 그 산의 남쪽이 서울이다. 한강을 기준으로 삼더라도 역시 그 강의 북쪽이 옛 서울이다. 따라서 漢陽(한양)은 북한산을 기준으로 삼든, 아니면 한강을 기준으로 삼든 모두 어울린다. 단지, 그렇게 지역 이름에 陽(양)이라는 글자를 붙이는 관례가 중국이었다는 점을 따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중국에서 이런 지명은 많다. 洛水(낙수)의 북쪽에 있던 도시가 洛陽(낙양)이고, 우리와 같은 이름을 지닌 漢水(한수-또는 漢江으로도 적는다)의 이북에 있는 곳은 漢陽(한양)이다. 瀋水(심수)라고 적었던 강이 있다. 지금은 渾河(혼하)라고 적는데, 어쨌든 옛 이름 심수의 북쪽에 있던 지역이 지금의 瀋陽(간체자로는 沈阳, 발음은 선양)이다.

물론 중국에서 이 같이 陽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지명 가운데는 산을 기준으로 적는 경우도 많다. 우선 후난(湖南)의 헝양이라는 도시는 한자로 衡陽(형양)인데, 이는 衡山(형산)의 남쪽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서북 지역에는 華陽(화양)이라는 곳도 있다. 역시 커다란 산인 華山(화산)의 남쪽에 있어서 그 이름이 붙은 곳이다.

서울은 삼국시대부터 위례성(慰禮城) 등 백제의 흔적과 함께 일찌감치 漢城(한성)으로도 적었고, 고려를 거쳐 조선에 들어서면서는 공식 행정구역 명칭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와 함께 고려시대부터 등장하는 漢陽(한양)이라는 이름은 조선에 접어들어 漢城(한성)과 함께 대표적인 명칭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서울은 서울이 좋다. 아쉽게도 이 서울이라는 이름은 일본이 한반도를 강점한 식민통치 시기에는 쓰이지 않다가 해방을 맞이하면서 다시 등장했다. 왜 서울은 서울이라는 이름이 좋을까. 우선 순 우리말이라서 아름답지 않은가. 漢城(한성)이라는 표기는 그나마 좋다. 삼국시대부터 보이는 명칭이라 그 기준이 한강이든, 북한산이든 상관없이 뚜렷한 근거가 있어서다.

漢陽(한양)이 문제다. 그 기준이 북한산이라면 그나마 괜찮다. 만약 漢陽(한양)이라는 이름의 기준이 한강이라면 상당히 부자연스럽다. 중국의 기준대로라면, 한강의 북쪽은 陽(양)이어서 볕이 잘 들고 따뜻하며 건조해야 한다. 그 반대로, 한강의 남쪽은 그늘이 지거나 습기가 많아 陽(양)의 반대인 陰(음)이어야 한다. 그런데 어디 그런가. 서울의 강남이 강북에 비해 볕이 적게 든다고 하는 사람 본 적이 없다. 그곳에 습기가 많아 강남이 음습한 陰(음)의 지역이라고 하면 이를 받아들일 사람 역시 많지 않다.

중국은 서북이 높아 강이 동남을 향해 흐르는 지형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강을 기준으로 볼 때 서북쪽이 건조하고, 그 반대인 동남쪽이 항상 음습하다. 물이 넘쳐도 그 물길이 서북을 향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주로 동남쪽으로 흘러넘친다. 습도가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강줄기가 향하는 모습과 그 물이 넘치는 현상을 보면서 강북을 陽(양), 그 강남을 陰(음)으로 봤던 것이다.

그 점에서 따져보면 조선의 수도를 漢陽(한양)으로 적고 부르는 것에는 유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강은 중국의 강과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한강은 서쪽으로 흘러 서해로 흘러들어간다. 강의 남북을 보는 시선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조선 내내 우리 할아버지들은 이곳을 한양으로 부르고 적는 데 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조선 500년의 역사가 모화(慕華)의 틀을 벗어나지 못해 전전긍긍했던 점을 생각해 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그러니 서울은 서울이 좋다. 이 말을 잘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나라와 민족의 힘을 키우고 가꾸는 일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중국의 기준에 따른 명칭이라고 漢陽(한양)과 漢城(한성)의 한자 이름을 경시할 필요는 없다. 그 역시 우리가 지나온 역사의 궤적을 설명해주는 좋은 안내자다.

가장 큰 고을, 즉 수도(首都)를 뜻하는 옛 한자는 적지 않다. 우선 도읍(都邑)이다. 마을(邑)의 으뜸(都)이라는 의미다. 적을 방어하기 위해 쌓는 게 성(城)이다. 이 城(성) 가운데 가장 으뜸인 것을 우리는 도성(都城)이라고 했다. 이 역시 수도를 일컫던 옛 명칭이다. ‘서울’이라는 새김을 달고 있는 한자 京(경) 또한 수도를 의미한다. 이 뒤에 城을 붙이면 경성(京城)이다. 일제는 서울을 京城(경성)으로 적었다.

중국 옛 수도 가운데 가장 많은 왕조가 자리를 잡았던 곳이 長安(장안)이다. 하도 유명한 곳이라서 ‘수도’를 가리키는 일반적 명칭으로 정착하기도 했는데, 우리도 그런 영향을 받아 서울에서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장안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어”라며 수군거리기도 했다.

한자 세계에서 수도를 일컫는 또 다른 단어는 京兆(경조)인데, 과거 조선에서도 서울을 이렇게 일컫기도 했다.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수도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은 京師(경사)다. 그 京(경)은 원래 높은 성채를 가리키는 글자였다가, 수도 또는 황제, 또는 최고 권력자가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를 얻었다.

京師(경사)의 나중 글자 師(사)는 ‘무리’ ‘대중’ 등을 가리킨다. 그래서 京師(경사) 또한 수도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나저나 이것저것 아무리 들춰보아도 서울은 역시 서울이다. 서울은 서울이 좋다. 역시 서울은 아름답다. 그 이름이 서울이라서 더 그렇다.

<지하철 한자 여행-1호선>, 유광종 저, 도서출판 책밭, 2014년 중에서.

유광종 기자  kj@newsworks.co.kr

*위 글은 뉴스웍스와 유광종 기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