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출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자료 출처=사교육걱정없는세상)

[에듀인뉴스] 이제는 하나의 단어가 된 ‘수포자’. 이는 수학을 포기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학교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단어다. 

실제로 2015년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과 박홍근 국회의원이 실시한 학교 수학교육 관련 학생·교사 인식조사에 따르면, 고등학생의 69.0%가 수학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고등학교에서 수학은 문·이과 상관없이 상당히 중요하다. 그만큼 부담도 되고 문제도 많다. 중학교 때부터 한 학기이상 정도 수학 선행학습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하지 않는 사람도 거의 없다. 

대부분이 사교육을 통해 예습하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교과서에 있는 정도의 문제를 가지고 상대평가로 학생들을 줄 세우고 등급을 나눌 수 없어 특정 문제집을 교과서로 사용하며 문제집에나 있는 고난도의 문제를 출제한다. 

너무나 이상한 일이지만 너무나도 만연한 관습이고 당연시되어왔기 때문에 수학 학원에 다니지 않거나 인터넷 강의를 듣지 않는 학생들을 찾기 힘든 것이다. 

그렇다면 학원에 다니지 않는 학생들은 도대체 학교 수업을 어떻게 따라가야 할까? 

일반화할 순 없지만 대개 학교에서 수학 수업은 간단한 개념 설명 후 이루어지는 문제 풀이가 전부다. ‘거기서 무엇을 더 할 수 있겠어?’라고 말할 수 있지만, 학생들은 바로 여기서부터 수업을 놓치기 시작하여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그 차이를 좁힐 수 없어 결국 포기하는 길에 이르는 것이다. 

 (출처: YTN 사이언스)
 (사진=YTN 사이언스 캡처)

예를 한 번 들어보자. 이 수업은 교과서가 아닌 문제집으로 진행된다. 만약 원의 방정식에 대해 배운다고 하면, 먼저 개념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x - a)2 + (y - b)2 = r2 이나 x2 + y2 + ax + by + c = 0 등의 공식들을 설명한 뒤에도 ‘두 원의 위치 관계’, ‘두 원의 교점을 지나는 원 및 직선의 방정식’처럼 또 다른 공식을 요하는 개념들을 마구 배운다. 

그런데 개념 설명 후 바로 ‘x, y에 대한 방정식 x2+y2–2x+4y+2k=0이 원이 되도록 하는 자연수의 개수는?’과 같이 방금 들은 개념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문제들을 무작정 풀라고 하고, 이미 학원에서 이 내용을 배운 다른 친구들은 막힘없이 풀고 있다면, 그리고 친구들이 모두 보고 있는 가운데 칠판 앞에 나가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 이 학생이 받는 스트레스는 얼마나 클까? 

수학이 싫은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다. 

문제집을 사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게 교과서의 난이도와 수업, 혹은 시험의 난이도 사이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 또 사교육의 도움 없이는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다. 

즉, 공교육이 사교육에 끌려 다니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고등학교 3학년은 진도를 나가는 학년이 아닌, 복습하며 수능을 준비해야 하는 학년이기 때문에 1, 2학년 때에 고등학교 3년 과정을 모두 마치는 학교가 대다수다. 문제는 수포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이 수포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3학년 때부터 ‘AP CALCULUS’라는 미국 교육과정의 수업을 듣기 시작한 나는 교과서를 받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두께가 매우 두꺼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측정해보니 5cm 정도 된다. 

개념과 원리가 자세하게 적혀있으며 시험 문제도 교과서 속 문제들 위주로 출제된다. 미국과 한국의 커리큘럼이나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에 일일이 비교할 순 없지만, 수업을 들으며 느꼈던 것은 적어도 이 수업을 위해 학원에 다닐 필요는 없으며 이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잘 이해하고 문제만 잘 푼다면 시험에 크게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소수과목이라 1, 2점 차이로 등급을 산출하지도 않아서 수업을 듣는 친구들 간의 견제도 없고 오히려 같이 문제를 풀기 위해 힘을 합치고 협력하는 경우가 많다. 1, 2학년 때 수능을 위한 수학을 공부하던 때보다 부담도 덜하고 확실히 수학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었으며 오히려 수업이 즐겁다.

이제 아무 의미 없이 찍어내는 교과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아니, 이미 학교에선 외면 받고 있다.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공교육을 방관하는 허수아비 ‘교과서’. 정말로 범위를 줄인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수학 가형과 나형을 통합한다고 해결되는 문제일까? 

수포자는 자발적으로 생겨나는 것인지 다시 한 번 고민해봐야 한다.

고유진 인천국제고 3학년
고유진 인천국제고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