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어떤 부류의 사람인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컨대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무엇을 할까 생각하며 이내 펼쳐질 하루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설레는가? 아니면 오늘도 지겨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고 한숨부터 나오는가? 또는 별다른 감응이 없이 그저 시간이 주어지는 대로 어제의 삶처럼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가는가? 말이다. 

분명 자신이 이중에 어느 부류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지 스스로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유형에도 대부분 공통적으로 떠 올리는 하나의 삶의 지혜가 있다. 이것은 바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뜻대로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삶의 의욕을 다지기도 한다. 

그리고는? 대부분 잠시 후에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저 무의식적으로 익숙하게 반복되는 행동으로 회귀한다. 

최근엔 이렇게 거의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삶이 흔하게 나타난다. 바로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내지 생활 속 거리두리가 생활화 되면서 어쩌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행동의 반경이 좁아져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는 게 답답하고 지루하며 그저 시간을 때우고 세월을 막연히 흘려보낸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이다. 이른바 코로나 블루라는 정서적 감응이 점차 우리의 삶을 억누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잠시 요즘 우리 학생들의 경우를 보자.

무언가 해야 할 행동에 대해서 “생각은 해봤어?” 하고 물으면 “아뇨. 생각하기가 귀찮고 피곤해요.” 또는 “아뇨. 저는 그냥 다른 애들 따라서 하면 되요.” 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왜 생각하기를 기피하고 피곤해 할까? 그리고 자기의 생각 말고 남의 생각만을 따르려고 할까? 그들은 생각하기를 귀찮아한다. 주체적인 판단과 행동으로 자신의 삶을 운영하기보다는 수동적이고 남이 생각하고 마련해 놓은 길만을 편하게 밟고 지나려 한다. 

마치 음식점에서 “무엇을 먹을래?”하고 물으면 “아무거나요” 또는 “같은 걸로요”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심각한 생각의 결핍증이나 수동적인 삶의 자세로 일관하는 아이들에 대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대개 이런 아이들은 꿈 많은 청춘이란 호칭이 무색할 정도로 꿈이 없고 또한 꿈꾸기조차 두려워한다.

그러니 늘 사는 대로 생각하고 무개념의 돌출행동이 등장하여 집단에 민폐를 끼치기 다반사다. 이런 청소년들에게는 삶의 과정에서 강력한 의식의 전환을 위한 계기가 필요하다. 여기에 필자는 한 가지 간단한 교육적 처방을 제시하고자 한다.

독일의 어느 대학 철학과에서 실험을 했다. 학생들에게 백지를 주고 10분 동안 목표를 적어보라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다 되어도 학생들은 한숨만 쉴 뿐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 교수가 말했다. “여러분의 생명은 1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버킷 리스트를 써보세요.” 그러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학생들이 백지를 채웠다.

교수가 앞서 말한 목표와 버킷 리스트는 비슷한 개념인데 왜 결과가 달랐을까? 단어 하나의 차이에서 비롯된 심리적 반응 때문이다. 

영화 ‘버킷 리스트’에서 주인공이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는 장면.
영화 ‘버킷 리스트’에서 주인공이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는 장면.

2007년 잭 니콜슨·모건 프리먼 주연 영화 ‘버킷 리스트’가 상영된 후부터 ‘버킷 리스트’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죽음을 앞에 둔 영화 속 두 주인공이 한 병실을 쓰게 되면서 자신들에게 남은 시간동안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고, 병실을 뛰쳐나가 이를 하나씩 실행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살면서 한 일들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들’이라는 영화 속 메시지처럼 버킷 리스트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다가려는 목적으로 작성하는 리스트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비상시국이다. 이러한 때에 발맞추어 모든 것이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것 같은 우울한 정서로부터 호전시킬 단호한 처방이 필요하다. 청소년에게도 이와 같은 의식으로부터 전환이 필요하다. 

여기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맞춤식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직은 어린 나이지만 그들에게 하얀 종이를 펼치게 하고 1년 뒤에, 아니 한 달 뒤에 죽는다고 가정하고 가장 하고 싶은 일에 몰입시켜 보자. 

절박감 속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떠올릴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의지엔 남다른 투지와 열정이 동반된다. 나이는 어려도 사람은 죽음을 생각하면 삶의 우수리가 남겨지기 때문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외침은 단지 철학적 사상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항상 죽음은 우리에게 실존적이다.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