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박사/ 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구원

[에듀인뉴스] 나이가 들면서 여기저기 결리고 아프며 때로 원활하지 못한 신체 기능을 느끼곤 하는데, 집도 마찬가지, 오래 된 아파트에 거주하다보면 이것저것 하자가 생겨 보수할 상황이 종종 생기곤 한다. 간단한 작업도 있고 의외로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공사도 당연히 있다. 

그런데 여러 경우를 종합해 보니 물이 새는 문제가 크다. 물은 당연히 아래로 흐르고 아파트의 특성상 윗집 배수관이 낡으면 피해는 아랫집이 입게 된다. 이웃 간에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누수로 입은 자잘한 피해는 패스하고 배수관 수리비는 당연히 윗집이 계산한다. 

소식을 들은 집주인은 관련업체에게 전화를 걸어 구두로 계약을 하고 계약금을 이체하고 공사를 시작하게 했다. 그런데 목욕탕의 벽과 바닥을 깨고 보니 그 새는 곳이 윗집 소유의 배수관이 아니고 아파트 건물 전체를 아우르는 관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 발견됐다면? 

그 집에 거주하는 세입자는 욕실을 못 쓰는 불편을 감수하며 빨리 공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데 여기에 공사비 지불 담당자가 누가 되느냐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에서는 관례에 따라 관리 범위 부분만을 지불하겠다 하고 주인은 최대한 많은 부분을 관리사무소에서 지불해주길 바란다. 

옥신각신 하는 와중에 공사 업체 사장은 어차피 계약서도 없다며 법대로 하라는 말과 함께 지불을 나 몰라라 하는 주인에 황당해하며 결국 시작했던 공사를 중단하고 세입자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상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해결해줄 곳을 물색하게 된다.

동서양의 역사와 발전 과정은 나름의 양상이 있겠고 그것들을 분석한 학자도 부지기수겠지만, 그 중 누군가를 통해 접하게 된 “서양의 법은 과학이고 동양의 법은 예술이다”라는 말을 떠올렸다. 

뜻인즉슨 서양의 법은 잘잘못을 가리고 책임의 주체와 분량을 명확하게 가린다는 것이고 동양의 법은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 간의 소통과 합의를 우선시 한다는 것이다. 

분쟁을 조절하고 서로에게 나쁘지 않은 윈윈의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예술의 경지라는 것이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다. 이렇듯 상반된 비교 대상의 비유로 인용될 정도로 과학과 예술은 전혀 다른 분야일까? 물론 분쟁이 아닌 범죄의 경우는 제외한다. 

과학자들은 자연에서 많은 법칙들을 이끌어내었다. 자연 현상의 체계를 관찰하고 이해하며 논리와 증명을 통해 최초의 이론을 정립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법칙의 명칭을 정하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인식하게 되면 그 법칙들은 일반상식이 되기도 한다(만유인력의 법칙을 생각해 보라). 그리고 그에 대해 아무도 반박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상식에 반박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고친다면 억지를 쓴다는 것이고 누구에게도 공감을 줄 수 없다. 그러한 법칙을 이루고 있는 자연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본다면 그들에게서 예술을 발견할 수 있다. 

우주와 인체, 자연의 신비를 통찰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굳이 현대적 첨단기기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느낄 수 있지만, 전자현미경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나노 세계서도 존재하는 온갖 것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결국 과학이란 자연의 어우러짐과 상호작용을 밝히는 과정이 아닐까?

보통 우리가 과학이란 단어를 지칭할 때 자연과학을 생각한다. 이는 ‘자연 현상에 대한 이해를 조직화한 지식의 체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광의로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다.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도 또한 인문과학이라 하지 않는가. 

나와 주변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종합해 볼 때 ‘법대로’라는 말을 하는 경우는 둘로 나눌 수 있다. 정말 억울한 경우거나 혹은 상대방의 약점 아닌 약점을 쥐고 이익을 취하려는 상황이다. 

전자의 경우 법에 의지하고자 하는 것이고 후자는 법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물론 혼재된 경우도 없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그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그 어감이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한다. 

사람이 만든 ‘법’도 결국은 사람 사이 상호작용의 인과를 규명(과학)하려 한 노력의 산물이일진대, 그것이 누구도 반박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일반상식의 수준이 된다면 그 결과물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작품의 다른 이름(예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대에는 과학과 예술이 하나였다고 한다. 세상이 복잡해짐에 따라 일상에서 생길 수 있는 트러블에 법이 끼어들고, 법의 성질이 과학 및 예술에 비유되었지만, 이는 달리 생각하면 동양이나 서양이나 인간 사회에 녹아들어간 보편적 사고, 공감할 수 있는 상식을 법이란 것으로 정리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단지 법이라는 딱딱한 단어를 사용하기보다는 원래의 속성 자체를 우선순위에 둘 때 조금 더 부드러운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과학은 논리적이고 논리적인 것은 아름답다. 예술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것은 설득력이 있다. 법이 과학이냐 예술이냐를 논하기에 앞서, 일상이 과학이고 일상이 예술이 되는 그저 단순하게 상식적인 세상을 꿈꿔본다. 

PS. 위의 저 분쟁이 어떻게 과학적이며 예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지는 독자여러분의 생각에 맡겨 봅니다.

이정은 
이정은

이정은=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석사를 거쳐 같은 대학 생화학 연구실에서 특정 단백질에 관한 연구로 생물학 박사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충북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고 충북대와 방통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복지관에서 세계문화와 역사교실 강좌를 담당하며 어린 시절 꿈이었던 고고학자에 한 걸음 다가갔다. 또 계간 '어린이와 문학' 편집부에서 함께 일하며 인문학에서 과학으로, 다시 인문학으로 넘나들면서 크로스오버적 시각에서 바이오필로피아를 담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