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치명적 오류 ‘인국공 사태’를 중심으로
일자리 선순환 위한 노동 기득권자 양보가 핵심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에듀인뉴스] 文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가장 취약한 비정규직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정책이다.

이 정책의 주 타깃은 월 300만원 버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이다. 정규직화로 증가한 인건비, 복리후생비, 연금 등 부대비용의 부담은 하층기업, 협력업체로 흘러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 부담은 오롯이 일자리 피라미드 맨 아래층에 위치한 비정규직에게 축적된다.

비정규직도 다양한 형태가 있고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위한다는 정책이 도리어 극단으로 나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하여, 결국 일자리 피라미드 맨 아래층에 위치한 비정규직을 사지로 내몰고 기회자체를 박탈한다는 것이다.

정규직 전환에 드는 비용은 세금으로 충당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더 취약한 계층이 열악한 일자리를 전전하며 낸 세금이다.

피라미드 상위에 있는 공공부문 근로자들을 부양하기 위해 이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는 것은 정의로운 일인가, 공정한 일인가. 이 불공정의 악순환을 다른 주체도 아니고 국가가 주도한다는 것은 말이 되는가.

모든 부분의 일자리가 줄고, 임금은 보장하기 어려운데 공공부문 일자리만 늘어난다면 그 울타리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질 것이다.

더구나 최근 ‘인국공 사태’는 자율경쟁이 아니라 기존 공공부문 근로자들에게 정부가 특혜까지 줘서 정규직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이러한 불공정한 상황이 수면 위로 명확히 드러났고, 청년들은 이를 정면으로 목도하며 분노하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아니라, 민간부문 비정규직이다.

월 300만원 받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처우개선도 중요하지만 최저임금, 아니 월 100만원도 벌기 힘든 비정규직, 일자리 시장에서 밀린 비자발적 영세 자영업자가 훨씬 더 많고, 훨씬 더 위급한 상황에 놓여있다.

경제적 평등과 사회적 안전망 강화를 중시하는 文정부가 구제하고자 하는 비정규직은 대체 어떤 비정규직인가. 예산이 있다면 맨 아래층에 위치한 이런 어려운 사람들부터 지원하고 도울 방법을 찾는 것이 먼저 아닌가.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일부 공공부문 근로자 처우 개선을 위한 정책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도리어 가장 취약한 비정규직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정책이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로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야기 한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어갈 수 없다.

진짜 문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이다.

특히 민주노총을 비롯한 기득권노조가 자신들의 지위를 2중, 3중으로 특권계층화 시켜놓고 위험하고 어렵고 힘든 일은 외주, 하청, 비정규직에게 몰아주는 형태가 반복되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다른 나라에도 정규직 형태가 자리 잡고 있지만, 우리나라 정규직이 가진 특권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우리 노동시장은 성 안과 성 밖으로 나뉘어져 있다. 현 정부 들어 일관되게 정규직의 권한과 혜택을 강화하며 성의 장벽을 더 높고 견고하게 쌓아왔다.

그 과정에서 성 안에 진입하지 못한 열악한 일자리를 전전하는 사람들, 경력이 단절된 사람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도태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수도권에 사는 중상위층 근로자를 위한 맞춤정부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제도에도 이들이 가장 많은 혜택을 누렸다.

‘인국공 사태’는 결국 성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해결되더라도 영향을 받는 것은 극히 일부의 사람들이다. 성 안과 성 밖으로 나뉘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제 2, 제 3의 ‘인국공 사태’는 반복될 것이다.

우리 노동시장에는 벽이 아닌 사다리가 놓여야 한다. ‘인국공 사태’가 이렇게 비화된 것도, 경직되고 폐쇄적인 노동시장의 문제가 곪아 터져 나온 것이다.

‘인국공 사태’가 해결된다고 해도, 우리가 처한 노동시장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보이는 불공정에 대해서만 분노할 것 아니다. 보이지 않는 불공정, 그 뿌리가 어디 있는지 찾고 뽑아내야 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는 많은 이해 당사자와 복잡한 경제 상황, 산업 시장이 얽혀있는 문제이다.

눈앞에 보이는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 이루어진다고, 비정규직이 제로인 세상이 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내 정규직 전환에 대한 것도 구체적 계획과 집행능력의 부재로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에서, 훨씬 더 복잡한 이해관계와 상황이 얽혀있는 민간으로의 확산은 요원한 상황이다.

우리가 선한 의도로 정책을 폈으니,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운동권식 요행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국정을 책임지는 이들이라면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만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이 어디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책임지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공정한 노동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선순환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노동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양보가 필요하다.

그렇게 유연화 된 노동시장 위에서 가장 취약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도 기회와 이동의 사다리가 놓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에서 지속가능한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논의도 진전시킬 수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과 같이 산업화 시기 만들어진 ‘고성장-평생보장 연공급형 정규직’형태만 강화해서는 우리 앞에 놓인 일자리 문제를 단 하나도 해결해갈 수 없다.

백경훈 청사진 공동대표
백경훈 청사진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