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매뉴얼 찾는 것은, 학교생활 설명서 필요가 아닌
민원 가득 학교 현장에서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수단

[에듀인뉴스] “선생님, 이런건 어떻게 하나요?” “매뉴얼을 보세요.”
 

조만간 이런 수업이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지속적인 민원 때문이다.

학교에는 생각보다 많은 매뉴얼이 있다. 교권보호 대처 매뉴얼, 학교폭력 발생시 대처 매뉴얼, 성폭력 매뉴얼, 성적관련 매뉴얼, 생활기록부 기재 매뉴얼 등. 학교에서 숙지해야 할 몇몇 분야는 매년 가이드북이 제공된다.

코로나 시대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돌발상황들이 발생하자 코로나 대응 매뉴얼들이 세세하게 만들어졌다. 점심시간 전에 학생들의 체온을 체크해야 한다거나 평가나 생활기록부 기록가능한 활동에 대해서 안내하거나 심지어는 에어컨사용에 대해서도 매뉴얼을 만들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학교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나름의 매뉴얼을 갖추고 운영한다.

특히 교사들은 수업 이외의 분야에 자세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매뉴얼을 필요로 하고 그것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코로나 방역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학교에 매뉴얼이 늘어나고, 또 교사들도 그것을 바라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된다.

매뉴얼이 생겨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의 재량권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재량껏 잘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매뉴얼이 존재하지 않는다. 

매뉴얼이 가장 많은 곳이 군대다. 군대는 재량권을 발휘하기에는 위험한 일들이 많다. 군대에서 자주 사용하는 FM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Field Manual의 약자로 야전교범을 뜻한다. 군대는 상명하복의 체제가 갖춰져있고, 필요에 의해 매뉴얼이 자세하게 만들어져있다.

매뉴얼의 장점은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매뉴얼은 사용설명서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우리가 처음 하는 것에 대해 설명서를 읽고 조작법을 익히듯, 매뉴얼 역시 처음 하는 일들에 대해 절차와 방향성 등을 안내한다. 학교의 많은 업무들은 대부분의 교사가 처음 겪기 때문에 매뉴얼이 있으면 좋다.

그러나 본래 교육에 설명서가 필요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교사는 수업을 하고, 학생은 학습을 하는 공간이 학교다. 수업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매뉴얼은 수업 이외의 영역에서만 필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수업마저 점점 매뉴얼이 필요한 시대가 되어간다.

 

전남 담양의 한 고등학교에서 기술가정 선생님이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임신과 출산 단원을 가르치며 콘돔 끼우기 시연을 하기로 했다가 민원을 받고 계획된 수업을 취소했다고 한다. 심지어 학교 교장은 “학교장으로서 해당 교사에게 주의를 주겠다“고 한다.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수업에서도 이제는 교사에게 재량권이 없어진다.

민원이 들어올 법한  내용을 다 빼고, 민원이 들어올 법한 방법마저 다 빼고 나면 수업에는 무엇이 남는가? 수업마저 이럴진대 다른 업무에서 교사들은 소극적이 되어가고, 경직될 수 밖에 없다.

교사들이 매뉴얼을 찾게 되는 것은, 학교생활에 설명서가 필요해서가 아니다. 민원이 가득한 학교 현장에서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민원사항에 매뉴얼대로 했으니 문제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수많은 교육담론들이 나오고 있다. 많은 얘기들이 타당하고 옳다. 그러나 이 논의들의 전제는 학교와 교사가 재량권과 자율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학교의 상황은 점점 암울해져만 간다. 학교가 변하려면, 학교와 교사들에 대한 인식도 변해야 한다.

김승호 청주외고 교사/ 에듀인리포터
김승호 청주외고 교사/ 에듀인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