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하거나 다르거나

오늘은 마티스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천재화가’ 얘기가 나오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분입니다. 피카소와 손상기에 이어지는 새해맞이 특별편성이기도 합니다. 평소보다 다소 긴 내용이라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글은 가급적 많이 안 쓰려고 노력하는데요. 사진 때문에 분량이 많아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군요. 되도록이면 도판을 덜 활용하는 방식을 고민해보겠습니다.

마티스, 하면 꼬리표처럼 ‘야수파’가 따라붙습니다. 노파심입니다만, 앞으로는 무슨 파, 무슨 파... 하는 미술유파 호칭은 그저 단순참고사항 정도로만 여기시면 좋겠습니다. 그런 구분이나 호칭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답니다. 그렇다고 아예 없으면 약간 번거로울 상황이 생길 테니 뭐랄까, 교통신호 같은 거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편리하게 이용은 하되 너무 얽매이지는 말자!’ 이런 태도가 한결 여유 있어 보이고 좋겠지요? ‘교차로에 신호등이 없으니 신호가 더 잘 지켜지더라’는 실험결과가 실제로 있었듯이 신호는 그저 신호일 뿐이니까요. 

자, ‘야수’는 우리말로 ‘짐승’입니다. 야수파, 곧 ‘짐승파’의 기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정확하지 않은 의미에 대해서는 침묵해도 됩니다. 해서 뜻이 애매한 계파의 유래나 정의 따위는 빼고, 저는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맞수’인 두 작가를 비교하는 방식을 쓰겠습니다. 마티스의 맞수는 피카소입니다. 반대로 말해도 마찬가지고요. 피카소와 마티스는 상호우열을 가리기 힘든 지구촌미술계의 ‘양대 톱스타’들이지요.

피카소와 마티스가 서로 ‘절친’이자 ‘행복한 라이벌 관계’였다는 건 두루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미술전문기자는 ‘인파이터와 아웃복서의 대결’이라는 식으로 재기발랄하게 표현했더군요. 기사전문은 너무 길어서, 간략한 출처와 사진자료를 올립니다. (모바일 화면에선 글씨가 잘 안보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경제. 생글생글 318호. 2011년 11월 21일.

<세기의 라이벌. ‘앙리 마티스-파블로 피카소’ /색채 對 형태...서로를 디딤돌 삼아 '전위의 탑' 쌓다>

한 사람은 정장 차림으로 낮에 그림을 그렸고 다른 한 사람은 캐주얼 복장으로 밤에 작업했다. 한 사람은 여인을 단지 작품의 모델로 삼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모델과 사랑을 나누고 그를 통해 영감과 창작의 에너지를 얻었다. 20세기 전반 미술계 최대의 라이벌인 앙리 마티스(1869~1954)와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무나 달랐다. 그래서 둘의 관계는 어떤 게임보다 흥미를 끈다. 그러나 스타일이 너무 다른 라이벌의 대결은 관객이 원하는 격렬한 매치로 이어지기 어렵다. 인파이터와 아웃복서의 대결처럼 말이다. 마티스와 피카소의 대결은 그래서 피를 보고야 마는 패권지향적 라이벌이 아니라 서로를 선의의 경쟁자로 인정하고 상대의 장점을 취하면서 상호 발전을 도모해 나가는 호혜적 라이벌 관계다...(하략)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미술사학 박사 sukbumj@hankyung.com)”

다른 이야기를 하기로 했으니 저는, (워낙 유명한) 피카소 대신에 비교적 덜 알려진 마티스의 또 다른 절친 한 명을 소개하겠습니다. ‘마르케’라고,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그쪽동네서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선수’지요. 백과사전의 도움을 받겠습니다.

“마르케(Albert Marquet 1875~1947). 관련인물 : 모로, 마티스. /프랑스의 화가. 보르도에서 출생. 파리의 미술 학교에서 배우고 모로에게 사사하여 마티스ㆍ루오ㆍ플랑드랭과 함께 야수파(野獸派 : Fauves)의 한 사람으로서 출발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온아한 작품을 보이고, 차츰 고요한 정취에 찬 독자적인 화풍을 이뤘다. 여행을 즐기고 르아브르(Le Havre)ㆍ나폴리ㆍ함부르크ㆍ보르도ㆍ됭케르크 등 각지 항구의 연작을 많이 그렸다. (네이버지식백과. 인명사전, 2002.1.10., 민중서관)”

그림을 한번 보실까요.

마티스의 초기그림과 아주 비슷하지요? 하나 더 보겠습니다.

1898년 작품이라니 23살 정도에 그렸겠군요. 마티스가 69년생이니 6년쯤 후배가 됩니다. 마르케나 마티스나 한창 그림공부에 몰두할 무렵입니다. 그림에 나오는 저 화실에서, 마티스가 학생시절에 그린 누드그림이 한 점 있는데 웹에서는 못 찾았습니다. (제가 가진 오래된 일본판 도록엔 있는데요. 그 도록을 어디 뒀는지, 또 못 찾아 소개를 못 드립니다. 아쉽습니다. 저는 자랄 때 그 누드그림을 무척 좋아했거든요.^^)

피카소도 그렇지만 그림대가들은 묘사력이 아주 뛰어납니다. 눈이 그만큼 좋다는 뜻이겠지요. 그림은 묘사력이 기본입니다. 묘사가 전부는 (당연히) 아니지만, 뭣보다 묘사를 제대로 할 줄 알아야 됩니다. 

쉽게 축구로 또 비유하겠습니다. 축구선수라면 공을 제대로 차야 되겠지요? 체력과 스피드, 기술도 꼭 필요하지만 우선은 공을 정확하게, 충분한 힘을 실어 찰 줄 알아야 되듯이 화가는 일단 실제모습과 똑같이 그리는 게 기본입니다. 그런 다음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그리면 됩니다. 계속 똑같이 그리든, 뭐가 뭔지 모르게 그리든, 아무 것도 안 그리고 ‘개념적으로 떠들든’... 다 자유지요.

그림공부를 갓 시작한 어린 제게 (아까 말씀드린) 마티스의 누드화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사실묘사에 충실하면서도 형체를 자신이 편한 방식으로 부수어 대충 슥슥 그려놓았더랬지요. 그렇게 그리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건, 그려본 한 사람은 다 압니다. ‘풍경, 정물, 인물’ 가운데 누드가 특히나 어렵습니다. 이다음에 혹시 기회가 되면 누드가 왜 그리기 어려운지 따로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아쉬운 대로 마르케가 그린 또 다른 누드를 한번 보겠습니다.

하나 더. 1904년 작입니다. 앞그림과 비교하면 사실적인 면모가 꽤 흩어져(또는 줄어들어) 나타납니다. 그래도 인체에서 중요한 건 하나도 안 빼놓고 다 그려내고 있습니다. (보기는 쉬워도 막상 이처럼 그리려면 꽤 어렵답니다.)

화가들의 초기작품을 살펴보면 뜻밖의 재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대성할 싹’이랄까, 그런 걸 찾아내는 즐거움은 그림을 보는 또 다른 매력이지요. 마르케가 그린 사실풍의 그림을 몇 점 더 보겠습니다.

풍경화에는 ‘룩셈부르크식 정원거리’란 제목이 붙었네요. 프랑스 파리의 센강변을 따라 서쪽으로 에펠탑을 향해 가다보면 만나는 곳입니다. 이 그림은 마티스의 다음 그림과 느낌이 퍽 비슷합니다. 제목은 ‘브르타뉴 풍경.’

꼭 그리다 만 것 같은데 일부러 저렇게 하는 거랍니다. 대가들은 원래 저렇지요. (다만 ‘대가연(大家然)하다’는 표현처럼, 내용 없이 그저 흉내만 낸다면 오히려 창피를 당하겠습니다만^^) 마티스가 그린 풍경화를 하나 더 보시지요. 화풍이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애초 출발선에서는 마르케를 비롯한 화실친구들끼리 서로 엇비슷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마티스는 이런 식의 그림에서 재빨리 빠져나와 자기만의 독창적인, 장식풍의 그림세계를 만들어갑니다. 그 씨앗이, 그가 그토록 사랑한 니스해변에서 서서히 싹이 트지요. (아래그림은 해안풍경과 화실정경 2점을 나란히 이어붙여 만든 자료사진입니다.)

아래사진은 니스해안의 실제 모습. 그 유명한 ‘칸영화제’가 열리는 곳입니다.

저는 10여 년 전 파리는 슬쩍 갔다 온 적 있습니다만, 니스는 아직 못 가봤습니다.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죽기 전엔 가게 될지.^^;;)

아무튼 점차 변신을 시도한 마티스와는 달리 마르케는 계속 같은 스타일로만 풍경을 그립니다. 특히 바닷가 모습을 많이 그립니다. 자세한 연유는 모르겠지만, 여행과 여인과 햇살과..... 이런 게 너무 좋았나 봅니다. 골치 아프게 형식실험이니, 새로운 예술창조니 하는 따위는 자기 적성에 안 맞았던 게지요.

아직은 1차세계대전도 일어나기 전입니다. ‘폭풍전야’라는 말처럼 큰 사단이 벌어지기 직전엔 대개 고요한 평화가 깃드는 법이라 그랬을까요. ‘세기말’이란 시대분위기와 겹친 유유자적한 흐름에 아마도 그는 오롯이 몸을 푹 맡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느긋한 기분을 잘 보여주는 그림을 몇 점, 보시지요. 위에서부터 아래로 그림제목은 모래하역선, 해변, 비오는 날, 해변의 여인.

모래사장에 벌거벗고 앉아있는 저 여인은, 지금 온 몸 가득 지중해의 환한 햇살을 받고 있네요. 바라만 봐도 기분이 절로 느긋해 집니다. 눈부시고 편안한 행복감이 솨, 파도처럼 밀려오는군요.

풍경화와 더불어 마르케는 누드화를 유별나게 많이 그립니다. 그 중에서도 여성들끼리 서로 애정을 나누는 모습을 많이 그렸지요. 외설시비가 일어날지 모르니 많이는 안 되고, 그 중 견딜만한 것으로 몇 점만 소개합니다. ‘19금’스럽긴 하나, 이 느긋한 작가의 그림실력을 함께 가늠해보자는 차원이니 혜량바랍니다. (바로 아래그림의 제목은 두 친구. 드로잉 2점은 따로 제목이 없음.)

색을 칠한 그림이 아닌 나머지 2점은 흔히 ‘스케치’라고 부르는 밑그림용 소묘(드로잉)인데, 인체의 특징과 움직임을 잡아내는 솜씨가 날카롭습니다. 그림 속 인물들이 금방이라도 꿈틀, 움직일 듯이 느껴집니다. 선 하나로 이런 표현이 가능하려면 상당한 공력을 쌓아야 됩니다. 끝으로 풍경화를 한 점 소개해 드리지요.

제목은 ‘낚시’입니다. 작가의 무르익은 필력이 잘 나타난 그림이네요. 언젠가 신문기사에서 이런 대목을 읽었습니다.

“김정희..... 그는 칠십 평생에 벼루 열 개를 밑창 내고 붓 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고 스스로 말했다. (한겨레 2014. 11. 15. 서해성 칼럼. ‘난잎으로 칼을 얻다’)”

무릇 ‘쟁이’라면 귀담아 들어야 되는 말입니다. 저는 마르케가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다고 봅니다. ‘할 만큼 했다’는 뜻으로 이해하시면 좋겠군요. ‘20세기 불후의 작가’로 통하는 ‘대(大)화가 마티스’와 어릴 때 그의 화실친구였던 마르케. 나중엔 감히 비교조차 못할 만큼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행복은 꼭 세속적 성공만으로 가늠하는 건 아니겠지요.

아무리 높고 멋진 봉우리라도 오를 사람은 오르고, 남을 사람은 남고..... 그런 거 아닐까요? 나이는 마티스가 여섯 살쯤 많은데도 살기는 외려 7년쯤 더 살았습니다. 뭐 그래도 둘 다 살만큼 살았네요. 마티스는 85살, 마르케는 72살. (같은 마씨끼리 그것으로 된 거 아닐는지요.ㅎㅎ)

그럼 이것으로 특집 마씨 연대기, (아차!) ‘마티스와 절친 편’을 모두 마칩니다. 긴 시간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