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영 국회 교육위 미래통합당 의원 '학력 저하의 진단과 처방' 포럼 개최
김승호 교수, PISA 성적 계속 하락 이유는 어휘력 감퇴..."지식 없이 창의성도 없다"
전광진 교수, 국어사전 속 어휘 60~70% 한자어..."한자어 교수학습법 제시로 학력 증진"

(사진=배준영 국회의원실)
(사진=배준영 국회의원실)

 

서울의 한 자사고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는 40대 여교사 전 씨는 수업을 진행하기가 힘들다. 영어가 아니라 국어가 문제다. ‘offset’의 뜻을 ‘상쇄하다’로 해석해줬더니, 학생 대부분이 ‘상쇄’의 뜻을 몰랐기 때문이다. 전씨는 ‘상쇄하다’의 뜻을 한참 동안 설명해야 했다.

같은 학교 국어교사도 비슷한 상황. 영어교사가 수업 진행의 애로점을 털어놓자 국어교사는 “‘주옥같은 글’에서 ‘주옥’의 뜻을 대부분 몰라서 한참 설명했다”라고 말했다. 전씨는 “사자성어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어휘를 몰라 난감할 때가 많다”며 “영어시간에 국어 단어의 뜻을 설명하느라 상당 시간을 할애한다”라고 했다.

일반고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서울 성북구의 A고교 영어교사의 말이다. “고3 영어 지문에는 깊이 있는 내용이 꽤 나온다. 생각하면서 영어 읽기를 해야 하는데, 생각하며 읽기는커녕 단어에 해당하는 우리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영어 지문을 해석해줬는데도 이해를 못 하는 거다. ‘기인한다’ ‘본질적’ ‘관행’ ‘임의의’를 모르는 학생도 상당수다. 아이들이 거침없이 ‘그게 뭔 소리예요?’라고 물으면 숨이 턱 막힌다. 이런 기본적인 어휘를 모르니 수업을 정상적으로 이어가기 힘들다.”

서울 마포구 B고교의 과학교사 역시 상황이 비슷하다. “과학책에는 한자어가 많기 때문에 단어 설명에 애를 먹는다. 물질의 상태변화 하나만 해도 ‘승화’, ‘기화’, ‘액화’, ‘용해’, ‘용융’, ‘융해’등 한자어를 기본으로 하는 단어 투성이다. 입시 위주의 공부를 하느라 학생들이 책을 잘 읽지 않은 데다 영어와 수학 공부에만 매달려 국어 공부를 소홀히 하다 보니 전 과목에 걸쳐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에듀인뉴스=지성배 기자] “지식과 인성은 학교교육의 두 축이다. 어느 하나를 중요시하거나 경시해서는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한국교육의 문제는 지식교육을 경시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한 어휘력 하락이 특히 큰 문제다.”

지식 교육을 경시해서는 한국교육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국어 어휘력 부족이 기초 기본학력 저하 원인으로 지목됐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미래통합당 배준영 의원이 13일 오전 개최한 ‘학력 저하의 진단과 처방’ 포럼에 발제로 나선 김승호 세한대 초빙교수는 “지식교육이 중요한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경시하고 있는 분위기”라며 “이는 우리 교육수준과 한국 학생들의 학력수준이 세계 최고라는 잘못된 믿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과거에는 세계최고 수준 학력을 자랑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국제 학업성취도 비교평가 결과 동북아시아에서 꼴찌”라며 “어느 나라도 한국교육을 우수하다고 평가해 주시 않는다”고 지적했다.

(표=김승호 교수)
(표=김승호 교수)

김승호 교수는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국제학업성취도평가) 순위를 근거로 학력 저하의 심각성을 주장했다.

PISA 2000에서는 읽기 7위, 수학, 3위, 과학 1위로 상위 수준을 보인 후로 꾸준히 3위 또는 4위를 기록했으나 2012에는 읽기 5위, 수학 5위, 과학 7위로 이과 분야 학력이 하락한 후 2015에서는 읽기 7위, 수학 7위, 과학 11위로 전체적으로 하락했다. PISA 2018에서는 읽기 9위, 수학 7위, 과학 7위로 집계됐다.

(출처=http://www.oecd.org/pisa/publications/PISA2018_CN_KOR.pdf)
(출처=http://www.oecd.org/pisa/publications/PISA2018_CN_KOR.pdf)

그는 특히 읽기 평균 성적 하락을 문제 삼았다. 우리나라는 2000년 525점에서 2006년 556점으로 최고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2018년 514점을 받았다.

김 교수는 “우리는 선두그룹에서 탈락했을 뿐만 아니라 성적도 무시했던 미국(505점), 영국(504점)과 비슷한 학력 수준이 되고 말았다”며 “교육부와 진보교육이 주도하는 시·도교육청들은 최근 10여 년간의 PISA 성적 결과 추이를 객관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있으며, 학업성취도 하락을 인정하거나 이에 책임지려는 의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승호 교수는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교사, 교과서, 학생 간 의사소통과 언어 이해 정도에서 찾았다.

그는 “많은 교사들은 학생들이 교과 관련 주요 개념이 아닌 기본적인 어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수업 하기 어렵고 학업성취도도 낮게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며 “교사들은 일상적 어휘의 경우 학생들이 당연히 알 것으로 전제하고 수업을 진행했는데 학생들이 그 뜻을 물어 당황하기도 하고 심지어 수업이 끝나고 난 다음에야 학생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기본적인 어휘를 이해하지 못해 책을 읽어도 뜻을 모르고, 교과 용어를 이해하지 못해 수업 중에 잠을 자지 않을 수 없는 안타까운 교실 모습이 일상화되어 있다”며 “지식 없이는 창의성도 없고, 모든 국민이 기본적인 문해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안전할 수 없다. 국어사전 활용 수업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광진 성균관대 교수가 13일 배준영 국회 교육위 소속 미래통합당 의원이 주최한 '학력 저하의 진단과 처방' 포럼 발제에 나서 우리말 어휘력 향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사진=자유교육미래포럼)
전광진 성균관대 교수가 13일 배준영 국회 교육위 소속 미래통합당 의원이 주최한 '학력 저하의 진단과 처방' 포럼 발제에 나서 우리말 어휘력 향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사진=자유교육미래포럼)

두 번째 발제로 나선 전광진 성균관대 교수는 “국어사전에 수록된 어휘 중 60~70%는 한자어다. 서면언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훨씬 많다“며 “한자어에 대한 의미 파악이 문장의 뜻을 푸는 열쇠 역할을 하는 것으로 그러한 노력 없이 수학 능력을 높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교육 당국의 한자어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이에 대한 교수학습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력 저하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며 “새로운 교수학습법을 개발함에 있어 학습자의 언어력 증진이 가장 기본이며, 언어력 증진을 위해 가장 중요한 문제가 곧 어휘력 증대임을 선행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교수학습법 활용 사전이 있으면 어려운 한자어를 쉽게 익혀 전 과목 수학능력을 높일 수 있고 자습(自習)을 습관화하다 보면 어려운 한자 공부도 쉽게 할 수 있어 학력이 증진될 것“이라며 “우리 현실에 부합하는 어휘 학습법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그동안 우리 교육은 제대로 된 진단을 통한 처방에 미흡했다. 정세만 본 대증요법만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했다"며 "우리말, 한자어 등 어휘의 뜻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부터 학력이 증진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도교육청 단위에서 교육특색사업 등으로 선정해 아이들의 학력을 높일 방안을 강구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