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나는 1980년, 그 해를 살았다. 그게 역사가 된 것은 훨씬 뒤에 알았다. 나는 2020년을 살고 있다. 올해가 새로운 역사가 되리라는 예감이 강렬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육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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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 대학에 가는 길은 정시와 수시 두 갈래다.

뼈대만 간추린다면, 정시는 ‘성적’을 정량평가해 학생을 뽑는 전형이고 수시는 ‘성장’을 정성평가해 학생을 선발하는 전형이다.

그런데 수시의 대표라 할 만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서 학교생활기록부가 차지하는 위치는 절대적이다.

교육부는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교사가 ‘관찰’할 수 있는 것만 기록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대면교육이 어려워지자 교사가 학생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줄어들면서 학생부 기록에 문제가 생겼다. 이는 재수생과 재학생의 불평등만이 아니라, 재학생 사이에서도 대면교육의 격차가 커서, 학종의 공정성에 대한 새로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코로나 이전에 규정된 ‘성장’의 개념을 코로나시대의 학생선발에 계속하여 적용할 수 있느냐 하는 지적이 그것이다.

많은 이들이 학종의 평가요소로 작용하는 ‘성장’에 대한 재정의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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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코로나 시대 ‘성장’의 개념을 재정의하라

코로나시대 이전의 근대교육체계가 정의한 ‘성장’은 ‘중심-다수자’라고 요약할 수 있다. 주변이 아니라 중심이 되는 것, 소수자가 아니라 다수자가 되는 것이 성장이라고 했다.

중심이 되어 다수자의 포즈를 취할 수 있는 것이 성장이고, 이러한 성장이 곧 성공으로 이어진다고 가르쳤다.

학교에서 진학상담을 하다 보면, 성장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학생들에게도 널리 퍼져 있음을 절감한다.

“대학 어디 갈 거야?”, “인 서울!”. “꿈이 뭔데?”, “CEO!”.

많은 학생들이 이렇게 대답한다. 그들에게 서울은 중심이고 다수자가 사는 기회의 땅이다. 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것도 버거운 이 땅에서, 최고경영자를 소망하는 것은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하는 환각인지 모른다.

이런 이야기를 서울 친구에게 했더니, 그곳 학생들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그들도 여전히 ‘중심-다수자’라는 틀에서 성장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다른 게 있다면 그들이 생각하는 중심은 서울이 아니라 ‘뉴욕’이고, 그들이 생각하는 다수자는 ‘꿈도 영어로 꾸는 그런 메인 스트림에 편입하는 것’이란다.

친구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았다.”

코로나19는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의 민낯을 여과 없이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 코로나가 걸리면 돈이 없어서 죽는다고 할 정도로 그들의 의료 인프라는 형편없었고, 마스크를 쓰는 사람을 이상하게 볼 정도로 그들의 의식 수준은 저열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변질된 개인주의에 사로잡혀 우리의 방역 시스템을 비난했고, 그러다가 코로나가 창궐하자 도시를 봉쇄하며 허둥댔으며, 그러다 조금 나아지기만 하면 다시 경제를 재개한다며 코로나파티를 열었다.

그들에게 ‘사람’은 없었고, 늘 ‘돈’이 그 자리를 그악스레 대신하였다. 더 이상 그들은 우리에게 중심이어서도 안 되고, 중심일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쌓아온 오랜 성과를 단숨에 뭉개 버리겠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매우 선진적이리라는 환상은, 코로나사태를 계기로 산산이 무너져 버렸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의 민낯도 함께 보게 되었다. 서양우월주의, 특히 문화사대주의에 함몰되어 온 우리의 부끄러움과도 마주한 것이다.

그것은 충격이었지만,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정신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는 측면에서 아픈 기회이기도 했다. 코로나19는 세계와 함께 우리 자신을 냉철하게 보게 한 계기로 작용한 셈이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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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에게 요구하는 ‘성장’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라

정답이 사라지면 오답도 사라진다. 코로나사태로 미국이라는 정답이 사라지면서 우리 사회가 도달한 결론이다.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말이 조롱거리가 되면서, 우리는 ‘케이 팝’, ‘케이 방역’과 함께 ‘케이 에듀’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성장’이라는 개념을 ‘중심-다수자’라는 틀로 바라보던 시각에 대한 반성과 함께,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성장 개념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시작되었다.

교육부는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교육적 인간상으로 ‘1. 자주적인 사람, 2. 창의적인 사람, 3. 교양 있는 사람, 4. 더불어 사는 사람’을 표방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선학교에서는 교육부의 이런 지침을 보며 학생을 가르치지 않는다. 학생들도 교육부가 제시하는 이런 인간상에 의거하여 자신의 성장을 기획하지 않는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말은 비극이지만 우리에게는 현실이다.

우리의 학교교육은 입시가 교육을 흔든 지 오래다. 믿기지 않으면, 시험이 끝나면 모든 게 끝나는 고3 교실을 한 번 가서 보라. 그러면 바로 알게 된다.

학생부종합전형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교육부의 훈령’보다는 ‘대학의 평가요소’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여 연세대, 중앙대, 경희대, 한국외대, 건국대, 서울여대 등 서울 6개 대학이 공동으로 연구하여 '학생부종합전형 공통 평가요소 및 평가항목'(2018)이라는 자료를 내놓았다.

이 자료에 있는 ‘학업역량, 전공적합성, 인성, 발전가능성’ 등 4개 평가요소와 16개의 평가항목에 따라, 학생들은 자신의 성장을 기획하며 학종을 준비한다.

이런 현장의 사정을 알고 있다면, 교육부는 지금이라도 나서야 한다. ‘서울대’와 ‘고려대’ 등 많은 대학이 함께 참여한 ‘학생부종합전형 공통 평가요소 및 평가항목’의 재정비에 앞장서길 바란다.

‘교과서’보다 ‘EBS 연계교재’의 위력이 더 큰 교육현실에서, 학종의 당락을 결정하는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평가요소 및 평가항목’을 정비하는 것은, 코로나 이후의 교육방향을 설정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클 것이다.

그렇다고 대학에서 내놓은 기존자료를 폐기하자는 말은 아니다. 이 자료에는 ‘인성’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필요한 바람직한 사고와 행동’으로 정의하는 점 등, 꼭 살렸으면 하면 항목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매우 선해 보이던 종교집단’이 코로나시대를 통과하면서 ‘사회적으로 지독하게 질타 받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주목하게 된 항목이다.

우리나라에는 2015년 7월에 제정된 '인성교육진흥법'이라는 게 있다.

그 법에서는 ‘개인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개인적 차원)과 ‘타인·공동체·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타인·공동체·자연과의 관계 차원)을 함께 포함하는 개념으로, 인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학생부종합전형 공통 평가요소 및 평가항목'에서는 이와 전혀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 성품에 해당하는 ‘도덕성, 성실성’ 등과 더불어, 미래사회에서 요구되는 핵심 인성역량으로 인식되는 ‘협업능력, 나눔과 배려, 소통능력’을 포괄하여,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필요한 바람직한 사고와 행동’이라고 인성을 규정한 것이다.

‘인성’을 개인적 차원에서 바라보지 않고, 공동체의 차원에서 바라보겠다는 발상이다.

이렇게 변화된 규정 하나를 가지고 학생들에게 접근해 보면, 아이들의 태도가 크게 달라진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끔찍한 범죄자를, ‘착한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이웃들도 있던데, 도대체 왜 이럴까?”하는 토론주제를 학급회의에 부치면, 참 놀라운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가 여부가 도덕성의 기준’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이 스스로 깨치기도 하는 것이다.

학종의 평가요소를 바탕으로 학생들과 활동하다 보면, ‘나비효과’라는 말이 교육에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유대인들은 예전에 아이가 젖 뗄 무렵 율법 책에 꿀을 발라 핥게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 달콤함에 이끌려 율법을 가까이 하던 아이가, 키가 자라면서 “그 말씀 제 입에 꿀보다도 답니다”(시편 119편 103절)라는 고백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학생들도 점수 때문에 시작한 봉사활동이지만, 진지하게 활동에 임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성장한다. 그러다가 아이들은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놀라운 인식에 이르기도 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공동체라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학생부종합전형이 학교교육을 통해 기획하는 ‘학생들의 성장’도 이와 같다.

그런데 갑자기 닥친 코로나사태는 기존의 성장 개념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 놓았다.

‘나와 너’라는 관계 맺기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성장을 기획해야 하는가. 살얼음판 위에 있는 듯이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는 코로나사태를, 어떤 이는 환경이 준 재앙이라고도 하던데, 학교는 이런 상황에서 성장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 필요한 논의는, 또 미뤄야 할 것 같다. 코로나 시대에, 아니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교육부는 학생들에게 어떤 성장을 요구해야 하고, 교사는 교실에서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어떻게 땀 흘려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다음에 다시 이어나가겠다.

박용성 '학교생활기록부를 디자인하라' 저자. 대한민국 학생들을 가르치며 사는 ‘대한민국 교사’다. 지금은 여수에서 고교 3학년을 가르치고 있지만, 새로 발령을 받으면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생활기록부를 디자인하라’, ‘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1·2)’, ‘스토리텔링, 스토리두잉으로 피어나다’ 등 열 몇 권의 책을 썼다. ‘학교생활기록부를 디자인하라’는 티스쿨원격교육연수원에 영상강의로 올라가 있다. ‘시에서 꺼낸 토론수업주제 30’과 ‘대한민국 국어수업 시리즈’(가제)로 ‘대한민국 문법’, ‘대한민국 문학’, ‘대한민국 독서’ 등 또 다른 책을 쓰고 있으며, 유튜브 탑재를 함께 준비하고 있다.
박용성 '학교생활기록부를 디자인하라' 저자. 대한민국 학생들을 가르치며 사는 ‘대한민국 교사’다. 지금은 여수에서 고교 3학년을 가르치고 있지만, 새로 발령을 받으면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생활기록부를 디자인하라’, ‘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1·2)’, ‘스토리텔링, 스토리두잉으로 피어나다’ 등 열 몇 권의 책을 썼다. ‘학교생활기록부를 디자인하라’는 티스쿨원격교육연수원에 영상강의로 올라가 있다. ‘시에서 꺼낸 토론수업주제 30’과 ‘대한민국 국어수업 시리즈’(가제)로 ‘대한민국 문법’, ‘대한민국 문학’, ‘대한민국 독서’ 등 또 다른 책을 쓰고 있으며, 유튜브 탑재를 함께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