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와 청계천 사이에 있는 구한말 무렵 관수동의 한 가게 모습이다. 종로 일대는 많은 물건과 사람들이 모여들어 큰 저자를 이루는 거리였다>

종로는 시장의 거리다. 시장이 많으면 사람이 많이 모인다. 그러니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는 운종가(雲從街)라고 하지 않았던가. 앞서 소개한 대로다. 종로5가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이곳은 ‘배오개’로도 유명하다. 종로구 종로4가와 예지동에서 인의동에 걸쳐 있던 마을인데, 예전에 있던 이곳 고개는 한국 시골의 여느 마을 못지않게 각종 설화가 숨겨 있는 곳이었던가 보다. 이 배오개는 ‘배나무가 있던 고개’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보이지만, 다른 설도 있다. 제법 빽빽한 숲이 들어차 있어서 짐승과 도깨비가 많아 대낮에도 혼자 그곳을 넘기가 무서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 백 명을 모아 넘었던 고개라는데, 게서 유래한 이름이 백고개, 백재, 백채라는 것이다. 이 이름이 발음상의 편리를 취하기 위해 ‘배오개’로 번졌다는데, 글쎄 어느 것이 정설인지는 분명치 않다. 어쨌든 한자 이름이 ‘배나무’와 ‘고개’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는 ‘梨峴(이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원래의 고유 명칭 또한 ‘배나무가 있는 고개’에서 유래한 것 아닐까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곳에도 유명한 시장이 있었다. 지금 종각 인근의 ‘종루(鐘樓)’ 인근에는 앞의 ‘종로3가’ 편에 소개했던 ‘육의전’이 있었다. 정부가 공식 허가한 시장이라서 이곳은 ‘시전(市廛)’이라고 불렀다. 아울러 지금의 남대문시장에는 ‘칠패시장’이라는 곳이 있었다. 이 두 시장과 함께 배나무 고개에 있던 시장, 즉 ‘배오개시장’은 서울의 3대 시장이었다고 한다.

자료를 뒤적여보니, 이 배오개시장이 때로는 현재의 동대문시장으로, 때로는 현재의 광장시장으로 나온다. 정확하게 비정(比定)하기에는 필자의 역량이 부족이라. 전체적으로 보면 동대문시장과 광장시장이 크게 어울려 큰 상권을 형성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동대문시장이야 지하철 ‘동대문역’이 있으니 그때 별도로 이야기하면 좋겠다.

문제는 광장시장이다. 청계천을 북에서 남으로 넘는 다리인 광교(廣橋)와 장교(長橋) 사이에 있는 시장이라는 뜻에서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게 일반적인 주장이다. 그렇다면 광장시장의 한자 이름은 ‘廣長(광장)’이 옳겠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 시장의 한자 이름을 ‘廣藏(광장)’으로 적는다.

시장의 이름이라는 점에서 볼 때는 뒤의 ‘廣藏’이 좋다. 널리(廣) 품었으니(藏) 말이다. 달리 해석하자면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곳’이라고 풀어도 좋겠다. 그런 점에서 특히 먹거리가 풍부해 많은 사람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광장시장은 ‘廣長(광장)’보다는 ‘廣藏(광장)’이 제격이다.

그러나 종로구청의 홈페이지, 광장시장의 홈페이지를 뒤적여도 정확한 한자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서울지명을 연구한 자료나 백과사전에만 한자 이름이 ‘廣藏(광장)’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저기의 자료가 때로 일치하지 않아 가장 신빙성이 높으리라 여겨지는 종로구청과 광장시장의 자료를 봤는데도 영 석연치가 않다.

한자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고 있는 모양이다. 광장시장이라면 그냥 광장시장이라고 부르면 좋지, 왜 한자를 꼭 알아야 하느냐고 소리치면 별 대답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왕 이름을 한자어로 달았으면 그 곡절이나 의미를 제대로 새기는 작업은 꼭 필요하다. 그럼에도 종로구청과 광장시장의 홈페이지는 답을 주지 않는다.

요즘의 중국인은 티베트를 ‘西藏(서장)’이라 적고, 발음을 ‘시짱’으로 한다. 한자 ‘藏(장)’이 원래 새김인 ‘감추다’ ‘지니다’의 의미일 때의 발음은 ‘짱’이 아니라 ‘창 cang’이다. ‘짱’으로 발음할 경우에는 매우 좋은 뜻이다. 우선 무엇을 품고 있는 장소라는 뜻이다. 그 다음에는 불교의 핵심인 경(經)과 율(律), 논(論) 등을 지칭한다. 그래서 이 세 분야에 정통했던 인물이라고 해서 손오공(孫悟空)과 저팔계(豬八戒)가 등장하는 <서유기(西遊記)>의 또 다른 주인공 ‘삼장법사’를 중국인들은 ‘三藏(삼장)’이라고 적었다.

광장시장이 ‘廣藏(광장)’이라고 할 때 우리가 삼장법사의 ‘三藏(삼장)’까지 떠올릴 필요는 없겠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그곳에는 숨겨져 있는 듯하다. 맛있는 순대와 떡볶이, 비빔밥과 칼국수가 있다. 비록 부처께서 일러주신 고귀한 진리의 요체는 아닐지라도, 우리가 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소중한 일용의 음식이다. 종로5가 광장시장에는 그런 내음이 늘 가득하다. 그래서 종로5가역에 도착한 우리의 발길은 자연스레 그곳 시장으로 향하는지 모른다.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유광종 저, 책밭, 2014년 중에서-

유광종 기자  kj@newsworks.co.kr

*위 글은 뉴스웍스와 유광종 기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