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한 마디로 예상과 다른 결과에 실망하거나 또는 신뢰할만한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했다고 느꼈을 때 흔히 쓰는 속담으로 한자어로 지부작족(知斧斫足)이라 쓴다. 

우리 주변에는 평소 믿고 의지하는 신뢰와 존중의 대상으로부터 크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우리는 민주주의의 모델이자 상징이고 한국인의 아메리칸 드림 실현의 대상인 미국에 대한 실망이 매우 큰 상황이다. 

그래서 우리의 발등이 도끼에 찍인 듯 고통스럽다. 이젠 우리도 과도한 미국화로부터 탈피해야 한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이는 총체적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할 출발점이다. 

잠시 현재의 미국으로 시야를 돌려보자. 전 세계가 마치 전쟁을 치르듯 사투를 벌이는 코로나19 위기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느끼는 게 바로 우리가 품었던 미국관(美國觀)이다.

평소 우리는 미국이 뭐든 잘하는 나라인 줄 알았는데 그야말로 엉망임이 드러났다. 미국이 저렇게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 아닐까. 

일찍이 유럽은 미국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이 넓게 퍼져 있었다. 하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반미주의가 약한 나라, 거의 없는 나라가 한국이다. 어찌 보면 미국은 우리의 선망의 대상이고 우리가 앞으로 선진국이 된다면 따라가야 할 나라라고 믿었다. 

그러나 미국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제3 세계 수준의 삶을 산다. 게다가 현재처럼 생존과 생명 문제가 걸려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지켜줄 공공의료시스템이 없으며 사회시스템조차 미비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출처=노컷뉴스)

이런 미국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의 미국화(美國化)’란 연구로 학자들에 따라서 많은 결과를 도출하였다.

그중 현 서울시 교육감인 조희연 전(前)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잉 미국화’란 개념을 사용하였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도 ‘총체적 미국화’란 개념을 쓰고 있다. 이는 한국사회가 총체적으로 미국화가 되었다는 의미다. 

예컨대 한국의 거의 모든 제도가 미국식이다. 교육제도, 대학제도, 엘리트 대학시스템, 대학의 경쟁과 높은 대학등록금, 그리고 국회의 양당제, 대통령제도 등을 보라. 하지만 이런 일련의 것들이 유럽에는 없다. 엘리트 대학도 없고 대학 입시도 없고 학비도 없고 정치도 다당제, 내각제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은 미국이 결코 현시대의 세계적 표준(Global Standard)이 아니라는 데 있다. 심지어 독일의 전 헬무트 슈미트 총리는 “미국은 사회적으로 보면 지옥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필자의 주장은 한 마디로 이렇다. 우리는 이제 미국에 대한 인식을 바꿀 때가 되었다고. 지금껏 맹목적으로 미국을 추종해 왔다면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미국의 대응을 보면서 그야말로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결과가 되었다. 

그런 반면에 전 세계는 한국을 칭송하고 있다.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놀라운 잠재력과 가능성을 자산으로 소유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소위 우리에 대한 재발견이다. 이를 단지 오버(Over)한다고 웃고 넘길 것인가. 지난 대구⋅경북의 코로나바이러스 집단 감염 상황을 보라. 대구 시민들은 도시 봉쇄도 안 하고 이동 제한도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이동을 자제하고 성숙한 민주시민의식을 발휘하여 잘 극복해 내지 않았는가. 

그보다 앞서 2016년 촛불집회 당시로 돌아가 보자. 그때도 우리는 수백만의 인파가 모였어도 너무도 기품이 넘치는 집회의 모델을 보여주었다. 질서 의식과 쓰레기를 버리지 않음은 물론 배출한 쓰레기를 자발적으로 치우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때 세계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 하기도 했다. 

우리도 이젠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특히 외국에 거주하는 교포들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존재에 자부심을 느꼈다고 저마다 고백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유럽 국가를 복지사회의 모델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그들 또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라. 국가마다 집 밖에 나가는 것조차 통제하였다. 아이들은 생일 파티에 친구들을 초대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방역에서 제대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알았다. 그동안 우리가 국가적 역량을 스스로 과소평가하면서 살아왔음을. 우리가 당연시했던 선진국들이 결코 견고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한때 우리는 한국전쟁 후 전 국토가 폐허가 된 최빈국(最貧國) 상태였다. 그 속에서 영국 언론(The Times)이 조롱한 것과는 달리 대한민국은 ‘쓰레기통에서 활짝 피어난 장미꽃’이 되어 전 세계에 기적을 보여주었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 불렸다. 이는 변변한 천연자원 하나 없는 나라가 단지 교육열과 근면과 성실이란 국민성으로 이루어 낸 결과였다. 

지금은 세계에서 최초로 5G를 상용화했으며 K팝, K뷰티, K드라마, K무비 등으로 세계문화예술을 선도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먼저 한국의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다. 혹자는 우리의 자본주의를 ‘천민자본주의’라 칭하기도 한다. 오직 보릿고개를 넘어 배고픔을 벗어나고자 직진만을 해왔던 결과다. 지나치게 성장과 개발 위주이고 물질의 노예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크다, 

이것이 코로나19 사태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시대적인 성찰이다. 

어느 학자는 한국의 자본주의는 그냥 풀어놓으면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로 변질되기 쉽다고 말한다. 이를 독일에선 ‘야수자본주의’라 명명했다. 우리에겐 모든 것이 신자유주의의 경제 논리가 앞서고 여기엔 무차별적인 경쟁위주의 삶의 패턴이 지배한다. 

이젠 우리도 자본주의의 인간화를 추구하는 것이 요구된다. 또한 과잉 생산 단계로 넘어 온 ‘과잉 생산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과잉 경제는 높은 산재 사망률, 자살률, 저출산 등과 함께 자연을 피폐시켜 언제든지 코로나19와 같은 변종 바이러스를 불러올 수 있다. 

그래서 이젠 자본주의의 근본적이고 치명적인 한계를 알고 거기에 적절한 수정을 가하는 국가정책이 우선이다. 

최근에 데이비드 웰리스 웰(Wallace-wells, David) 저자의 <2050 거주불능지구: The Uninhabitable Earth>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30년내에 인간이 지구에 거주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란 끔찍한 예측은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우리 인류에게 과연 22세기가 존재할지 불확실하기만 하다. 

절망적인 지구의 운명을 거론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인 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는 이젠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감염병을 예방하는 것은 생태백신, 행동백신이 먼저여야 하며 이는 근본적으로 화학백신 생산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구를 살리는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한국형 방역모델, K방역을 기점으로 새로운 사고의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그중에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의 자본주의의 정책과 총체적 미국화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나친 미국화로부터의 탈피는 이젠 절대적인 과업이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스스로의 잠재적 역량을 믿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전반적인 영역에서 과감하게 총체적인 사고의 전환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반도 평화 구축은 주변 국가의 간섭과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새로운 역량을 요구하고 있다. 이젠 우리도 한국인의 존엄성을 지키고 새롭게 할 때다. 미국의 우산에 의지하여 굴종적으로 살기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높은 정치의식을 고양하여 당당하게 주변 강대국을 상대해야 한다. 

아울러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보여준 재난 자본주의의 위험을 경계하며 그동안 몇몇 재벌과 대기업들의 친자본주의의 악폐, 그리고 뿌리 깊은 관료들의 자본 중심의 사고에 주의를 환기하여야 한다. 

이제는 바야흐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만이 살 길이다.

인권 침해라는 우려를 불식하고 동선공개를 통한 투명한 정보와 상호 간의 신뢰를 통해 공동체적 안전과 생명을 지키려는 우리의 K방역이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처럼 그리고 최근엔 짧은 기간에 걸쳐 이룩한 온라인 수업의 정착을 통한 K에듀 역량을 기반으로 총체적 사고의 전환을 이루어 AC(After Corona) 시대에 맞는 새 역사를 창조하여 전 세계를 선도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