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원순 시장 애도 조희연·김승환·노옥희 교육감...그들의 성인지 감수성은?
교육감의 편향성과 둔감성 "교육이기에 더욱 조심해야"

[에듀인뉴스] ‘거침없이 교육’은 ‘나’의 입장에서 본 ‘교육’을 ‘거침없이’ 쓸 예정이다. 글은 자기중심적이고 편파적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글 중에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편파적이지 않은 글이 얼마나 될까? 객관적인 척 포장할 뿐이다. 차라리 나의 편파성을 공개하고, 조금 더 솔직해지고 싶다. 하지만 그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 잘 될까 모르겠다. 다루는 내용은, 교육과 관련된 거라면 가리지 않을 생각이다. 비판적 시각에서 쓴 교육 제도, 교육 정책, 교육 담론, 교실 이야기 등에 나의 편파성을 실어 나르리라.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에듀인뉴스] 구태여 나까지 보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무수한 명망가들이 박원순의 죽음과 관련한 자신의 감정을 절절히 표현했다. 한쪽은 박원순 편에서, 또 다른 한쪽은 피해자 편에서. 날선 비난과 분노의 불길 속에 고작 나 같은 졸필(拙筆)까지 끼어들 필요는 없어 보였다.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박원순 전 시장이 죽은 날, 에듀인뉴스에 그와 관련한 뉴스,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교육 전문 뉴스이기에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나, 이런 비극적 사건에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 몇몇 의미 있는 글들이 보인다.

둘째는, 몇몇 교육감들의 박원순에 대한 애도의 표현들이 다소 부적절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 또한 이곳저곳에서 이야기되고 있지만, 정리할 필요성이 있어 보였다.

장황하게 늘어놓고 싶진 않다. 몇몇 교육감들의 발언들에 문제는 없었는지 짚어보고, 짤막하게 내 생각 정리하고 마치려 한다.


박원순은 자신의 도덕적 엄격함 때문에 죽었나


조희연 교육감은, 박원순 전 시장 사망 후 7월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의 오랜 벗이자 존경하는 동지, 박원순이여...’로 시작하는 애도의 글을 올렸다.

박원순에 대한 그의 애끓는 마음이 느껴졌다. 충분히 그럴만하다. 박원순은 그의 사랑하는 벗이었고, 참여연대를 비롯하여 의미 있는 많은 일들을 함께 해왔으니 말이다.

게다가 박원순이라는 인물의 무게감은 시민사회계에서 너무 넓고 깊었기에, 꼭 조희연이 아니더라도, 그런 허망함과 슬픔을 가졌을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는 지식인이며, 서울시교육감, 즉 공인(公人)이다. 자신의 사적 친분, 또는 박원순의 공(功)에만 사로잡혀서는 안 되는 존재다. 아무리 슬프고 힘겨워도 그러면 안 된다.

조희연 교육감 페이스북 캡처.
조희연 교육감 페이스북 캡처.

그는 ‘그대가 고매하게 지켜온 삶의 무게에 짓눌려 고통스럽고 두려웠을 마음의 한 자락도 나누지 못하고 이렇게 비통하게 떠나보내 버렸’다고 했다. ‘세상에 둘도 없이 소중한 친구를 잃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나는 자신에 대해 가혹하고 엄격했던 그대를 기억하며 지금 당신이 없는 상황이 원망스럽기만 하다’고도 했다.

가장 문제가 됐던 부분은 ‘자신에 대해 가혹하고 엄격했던 그대’가 ‘원망스럽기만 하다’는 부분이다.

조희연 교육감의 말대로 하면, 결국 박원순 전 시장은, 잘못이 있어서라기보다, 자신의 도덕적 엄격함 때문에 죽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때는 더더욱 비서 성추행과 관련한 정보가 부족해서 뭐든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성추행 사건에 대해 고개를 돌리고 없는 사건인 양 취급하는 건 비겁하다. 만에 하나 사실일 가능성까지 생각하며 말해야 했다.

성추행 사건이 사실이라면, 박원순 자신의 도덕적 엄격함 때문에 죽었다는 식의 표현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적어도 이 당시 박원순에 대한 성폭력 고소는 확실히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진 상태였다. 그렇다는 건 곧 고소인, 즉 피해를 받았을지도 모를 여성 또한 있었다는 것이 된다.

확실하지 않기에 그 사건과 피해자를 없는 것으로 취급하기 보단, 그 피해호소인의 피해가 혹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진 않을까를 염려하며 걱정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

그렇다면 ‘자신에 대해 가혹하고 엄격했던 그대’가 ‘원망스럽기만 하다’는 따위의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게다가 글 전체에 피해호소인에 대한 염려나 걱정, 박원순의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성추행 행위의 부적절성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다. 여러모로 부적절한 글이었다.

그에 반해, 이제 그가 정신을 좀 차렸는지, 7월 13일 한겨레에 쓴 <조희연 "'40년 친구' 박원순을 기억한다">에는 나름의 균형 잡힌 시선이 있다. 그 글에는 이런 표현도 나온다.

“부디 이 절절한 애도가 피해호소인에 대한 비난이나 2차 가해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고인은 과거 각종 인권 사건을 변론하면서 ‘늘 피해자의 편에 서고 그 어려움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해왔다. 이런 그를 이해한다면 더 이상 피해 호소인의 신상 털기와 비난을 멈춰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 아래 문단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인간의 모순성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권변호사로서의 모습과 그와 상반되는 또 다른 모습이 한 인간에 공존한다는 모순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누군가는, 이 정도의 표현도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다름의 영역이다. 마음껏 비판하되, 존중하라.


애도‘만’ 있어서는 안 된다


김승환 전북교육감 역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7월 10일, 박원순 전 시장에 대한 애도의 글을 올렸다. 글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세상을 등지고 나자, 11년 전(前) 정권의 공격을 당하던 박원순 변호사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경향신문(2009.09.21)에 썼던 글이 생각났습니다.”

김승환 교육감 페이스북 캡처.
김승환 교육감 페이스북 캡처.

그러고선 그 경향신문에 썼던 과거의 글 일부를 가져왔다.

“법적 평가가 이러함에도 정권이 박원순 변호사를 상대로 무리수를 두는 속내는 무엇인가? 그것은 정권에 대해 비판을 하지 말라는 대국민 경고라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가 발전해 가느냐 죽어 가느냐는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이 열려 있느냐 닫혀 있느냐로 가늠할 수 있다. 정권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근거를 들어 반비판을 하면 되고, 그에 대한 최종적 판단은 주권자인 국민에게 맡기는 것이 민주주의의 정도이다.”

마지막으로 박원순 전 시장의 안식을 빌고 글은 끝났다.

대체 뭐하자는 것일까?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 혐의가 무죄라는 것일까?

어쩌면 김승환 교육감은 순수하게 박원순 전 시장이 과거 정권에 핍박받던 시절을, 그럼에도 민주주의에 헌신했던 박 전 시장과 자신의 올곧던 과거를 회상하고자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글에는, 맥락이라는 것이 따라붙는다. 아무리 봐도 ‘박원순 무죄’를 말하기 위한 글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그가 무죄임을 확증할 수 있는 단서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그가 성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 속에서(물론 이러한 단정 또한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글은 경솔했다.

그의 글 역시 박원순 전 시장이 성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 현재 불안에 떨고 있을 피해호소인에 대한 일체의 언급도 없다.

경찰에서 무혐의로 내사 종결한 고(故) 송경진 교사 성희롱 사건에서는, 그토록 무리하게 피해자의 입장(그 피해자들인 여학생들은, 교사의 처벌을 원치 않았고, 자신들이 피해 받은 게 없다며 탄원서까지 작성했다)에서 생각했던 그가, 이곳에서는 이토록 무신경했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 번이라도 진정으로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 걸까?

박원순 전 시장에 대한 애도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그에 대한 애도‘만’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노옥희 울산시 교육감이 7월 1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도 마찬가지다.

노옥희 교육감 페이스북 캡처.
노옥희 교육감 페이스북 캡처.

“울산시민 분향소에 아침 일찍 다녀왔습니다. 지난해 9월 서울시와 우리교육청이 행정혁신, 교육협력사업에 대한 협약을 체결하여 아직 할 일이 많은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시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의 글은 여기서 끝이 난다.

‘더불어 피해호소인에 대한 2차 가해가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관련 진실이 명명백백히 밝혀지길 바랍니다’ 정도의 한 줄이라도 덧붙였으면 어땠을까.

이재정 경기도교육감도, 도성훈 인천시교육감도, 민병희 강원도교육감도 모두 똑같았다. 그들의 페이스북 글에는 여지없이 애도‘만’ 있었다. 더 찾아보려다 그 내용이 그 내용일 것 같아 그만 두었다.


아픔을 치유할 시간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마치 내가 피해호소인의 입장에서만 사건을 바라보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피해자’가 아니라 ‘피해호소인’(누군가는 굉장히 불쾌하게 여길 명칭)이라고 칭하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나는 아직까지도 밝혀진 건 아무 것도 없으며, 함부로 속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각자에겐 각자의 입장이 있어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렇기에 서로가 상처 받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해호소인의 신상을 털고 참교육을 시킨다고 헛소리를 하는 것만큼이나, 고인의 장례식장에 가서 고성을 지르고 삿대질을 하는 것도 못할 짓인 건 마찬가지다.

보통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생각하기 쉬우나, 유족들에 대한 ‘2차 가해’는 과연 없었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를 하고,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중단하라’, 또는 ‘고인과 유족에 대한 2차 가해를 중단하라’라고 소리친다. 모두 자기 입장만 있다.

더 길게 얘기하고 싶지만, 부질없다. 어떻게 얘기해도 욕만 더 먹을 거라는 걸 알기에 여기서 그치련다.

다만 각 시도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감들의 편향성과 둔감함은,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그들의 편향성과 둔감함은, 교직원, 학생, 학부모를 포함한 교육관련 구성원들이 혹시라도 비슷한 사건에 처하게 되었을 때, 재수 없게도 화살이 되어 날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곽노근 경기 파주 적암초등학교 교사. "파주 깊은 산골 적암초에서 근무하고 있고, 초등토론교육연구회, 서울경기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이오덕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좇아 보려고 애쓰고 있으나 잘 되지 않음을 느낀다. 삶과 계급과 교육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되,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다."
곽노근 경기 파주 적암초등학교 교사. "파주 깊은 산골 적암초에서 근무하고 있고, 초등토론교육연구회, 서울경기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이오덕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좇아 보려고 애쓰고 있으나 잘 되지 않음을 느낀다. 삶과 계급과 교육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되,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다."